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가는 길
슬로베니아 류블라냐에서 출발하여 크로아티아의 명소 플리트비체 국립호수공원으로 가는 길. 청명한 하늘과 푸릇푸릇한 창밖 풍경은 여행 내내 나의 기분을 맑게 해주는 1등 공신이었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첫째와 20주가 막 지난 둘째를 뱃속에 품고 함께한 이번 여행은 출산 후 처음으로 아시아를 벗어난 여행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뱃속의 둘째를 위한 태교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왔기에 더 특별했을지도 모르겠다. 육아만 하던 일상을 탈출하여 이렇게 맑은 공기의 콧바람을 쐴 수 있다니! 아직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힘든 점도 많았지만, 이를 모두 덮어주는 게 바로 여행이 지닌 특별한 힘이었다.
렌터카를 운전하는 남편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첫째와 동요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겨울의 플리트비체는 어떤 풍경일까 상상하면서 가는 길,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이 우리에게 차를 멈추라고 손짓했다. 동양인이 운전하는 차가 의심스러워 보여서 검문하려는 건가? 여행 중 렌터카를 운전하다가, 길을 걸어가다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검문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싶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 창문을 여니 2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경찰이 다짜고짜 벌금을 내라고 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경찰은 더듬거리는 영어로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잘 못 알아듣는 남편과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여러 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벌금을 내야 하는 이유를 찾느라 마치 탐정이 된 듯했던 우리는 마침내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잡힌 이유는 바로 차량 전조등을 안 켰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실제로 이해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유를 알자마자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니 전조등을 켠 차도 있었고 켜지 않은 차도 있었다. 이 경찰은 내가 외국인이라 만만해 보이나?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며 실제로 그런 법규가 있냐고 물으니, 이번에는 경찰 신분증을 눈앞에 떡하니 들이밀었다.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는 결의가 가득한 얼굴로. 여전히 벌금을 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경찰 뒤에는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리는 차가 또 한 대 지나가고 있었다.
“전조등을 안 켜고 달리는 차들도 있는데 왜 우리한테는 벌금을 내라고 하는 거죠?”
스마트폰을 꺼내 크로아티아에 이런 교통법규가 있는지 찾아보면서 재차 물어보았다. 검색 결과 부끄럽게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낮에도 전조등을 켜야 하는 법규가 실제로 있었고, 우리를 잡은 경찰은 전조등을 켜지 않은 차를 숨어서 적발하는 임무를 지닌 듯했다. 아마도 크로아티아 법규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한 외국인이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리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눈에 띄었나 보다. 설명을 포기하고 집요하게 벌금이 150쿠나라고 반복하는 경찰은 우리에게 벌금을 받아내는 것이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된 듯했다.
그래, 교통법규를 위반했으니 벌금을 내는 것이 맞고, 난 크로아티아에서 여행자 신분이며, 어린 첫째뿐만 아니라 뱃속의 소중한 생명인 둘째도 함께하고 있으니 일을 크게 만들지 말아야지. 경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벌금을 내기 위해 지갑을 꺼냈는데, 아 맞다, 현금이 없지!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며칠 동안 여러 번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하는 바람에 카드를 사용하며 여행하던 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카드로 벌금을 지불해도 되냐고 물으니 무조건 현금만 된다고 답하는 경찰. 현금이 없으면 근처 ATM에 가서 뽑으면 된다며 나한테 차에서 내리라고 손짓한다. 나는 본인 옆에 타야 한다며.
그렇게 한국에서 온 20주 임산부는 마치 범죄에 연루된 인질처럼 크로아티아 경찰차 조수석에 앉아 마트에 있는 ATM까지 끌려가게 되었다. 경찰차를 타는 태교여행이라니. 불과 몇 분 전까지 미세먼지 한 점 없는 크로아티아의 맑은 날씨를 만끽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건만.
마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서 ATM이 여기 있다며 손수 인도하는 경찰은, 내가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까지 옆에서 바싹 붙어 지켜보았다. 이쯤되니 뭐가 어쨌든 간에 자신의 본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노력이 매우 가상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끝까지 임무를 해내겠다는 이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현금 인출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동안 여행 갈 때마다 잘 사용했는데 크로아티아에서는 왜 안 되는 건지.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혹시나 신용카드로 인출할 수 있을까 싶어서 시도해 보았더니, 곧 ATM은 경쾌하게 지폐를 세는 소리를 내고는 내 눈앞에 현금을 툭 내뱉었다. 이렇게 크로아티아 돈을 갖게 될 줄이야!
돈을 건네받자마자 쌩하고 사라진 자리엔 경찰차를 뒤따라온 남편의 렌터카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드디어 상황 종료인가.
“전조등 안 켜고 다니다가 언젠가는 걸렸겠지 뭐ㅡ 하하하!”
이제서야 마음이 놓인 우리는 이번 해프닝을 웃어 넘겼지만, 차만 타면 무조건 전조등부터 확인하는 우리의 모습은 더 우스웠다. 이 사건 이후로 차를 렌트할 때마다 반드시 해당 국가의 주요 법규를 확인하게 되었으니, 150쿠나로 배운 소중한 교훈이었다.
크로아티아는 2023년부터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자국 화폐였던 쿠나 사용이 종료되었다. 그럼 유로로 내는 벌금은 얼마일까?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30유로라고. 7유로나 저렴하잖아? 역시나 할인가로 배운 교훈이었어!
그나저나 어떻게 신용카드로 현금 인출이 됐을까. 찝찝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보니 은행에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현금서비스 이율은 최고 24%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내 인생 첫 현금서비스를 크로아티아 경찰한테 벌금을 내기 위해 받다니! 평생 잊지 못할 150쿠나의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