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속도가 이미 정해져 있는 사회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마음은 이미 분주한 쪽으로 기울어 있다. 오늘이 어떤 하루가 될지 생각하기도 전에,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감각이 먼저 움직인다.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미 하루의 속도는 정해진 듯하다.
휴대폰을 집어 드는 일은 특별한 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고, 뉴스와 소셜 미디어, 메신저 알림들이 자연스럽게 시야를 채운다. 누군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누군가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 장면들은 짧은 문장과 이미지로 정리되어 도착한다. 그 모든 것이 요약된 문장과 사진으로 전달되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일종의 계산이 시작된다. 내가 한 일, 내가 이룬 것, 내가 놓친 것들이 저절로 정렬되기 시작한다. 아침이 깊어지기도 전에 이미 비교는 시작된 것이다.
경쟁은 생활의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특별히 비교하려는 마음이 없어도, 비교는 여러 경로를 통해 계속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의 성과는 요약된 문장이나 짧은 화면으로 전달되고, 그 장면들은 조용히 각자의 하루 옆에 놓인다. "좋겠네"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의 상황을 검토하게 된다. 상대의 성공을 기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재는 일이 일어난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도, 이미 한 번 스친 기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스크래치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다.
우리는 그 기준을 곁에 둔 채 하루를 보낸다. 스스로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려 애쓴다. 모임에서 할 말은 없을까, 지난달보다는 발전했을까, 나이 또래는 지금쯤 이 정도를 이루지 않았을까. 명확한 형태로 떠오르지 않는 질문들이 감각처럼 남아 있다. 그 감각은 하루의 선택들을 조용히 조종한다. 어떤 책을 읽을지,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누군가의 초대에 응할지 말지. 작은 결정들이 쌓이면서, 하루는 점점 다른 누군가를 향한 증명처럼 변해간다.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시간의 질을 재는 잣대는 여전히 외부에 있다.
성과와 효율의 언어는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일을 이야기할 때뿐 아니라, 휴식과 관계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말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오후를 설명하는 방식이 되었다. "일과 삶의 균형"은 마치 두 가지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의 문제처럼 여겨진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가 곧 태도를 말해준다고 느껴진다. 바쁘다는 말은 책임감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진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가장 먼저 나누는 인사말은 "요즘 어때?"가 아니라 "요즘 바빠?"가 되었다. 바쁜 것이 정상이고, 그것이 성실함의 증거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듯하다. 그렇게 하루는 촘촘해지고, 여백은 점점 줄어든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삶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일의 총량으로만 평가받는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 온다. 그리고 그 순간은 대체로 밤이 깊을 때다.
말해지는 것 너머에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결과들은 자주 언급되지만, 오래 걸린 과정이나 머뭇거린 시간들은 쉽게 건너뛰어진다. 성과로 이어지지 않은 선택들은 굳이 돌아볼 이유가 없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 사이에서 사람의 마음은 종종 뒤로 밀린다. 천천히 자신을 잃어간다. 그것을 알면서도 달리할 방법을 잘 모른다.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성과가 아닌 감정을, 속도가 아닌 방향을 나누는 대화들이 점점 희귀해진다. 사람들은 모두 분주해 보여야 한다고 느낀다. 혹은 분주할 자격이 있어 보여야 한다고. 그래서 내면의 혼란이나 작은 성취, 별것 아닌 기쁨들은 말해질 기회를 잃는다. 경쟁과 비교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은 채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든다.
경쟁에 익숙해진 몸은 조용히 반응한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먼저 떠올린다. 아무 계획도 없는 날을 앞두고 이유 없는 긴장을 느낀다. 휴가 며칠 전부터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쉬고 있는 순간에도 다음을 준비하는 감각이 남아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새로운 취미를 배운다.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깊숙이 살펴보면 그 시간마저도 일정한 기준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자기 개발, 자기 계발, 셀프 브랜딩. 휴식도 성과로 전환되는 세상에서, 참된 의미의 쉼은 점점 사라진다. 하루는 계속 이어지지만, 하루 안에서 숨을 고르는 지점은 희미해진다.
비교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빠르게 정리한다. 각자의 사정과 맥락은 간단히 생략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 남는다. 한 사람의 삶은 그토록 복잡하고 다층적이지만, 한 줄의 성공담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누군가의 성취는 곧바로 하나의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은 말없이 자리를 차지한다. "저 정도는 돼야 성공한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위치가 상대적이 되어버린다. 관계는 점점 간결해진다. 간결해진 만큼 많은 이야기를 잃는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의 성과만 보게 된다. 친구를 만날 때도, 동료와 대화할 때도,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도. 우리가 정말로 상대방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의 현재 위치만 확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대체로 외로움으로 시작된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도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 속에 머물 때다. 성취를 논하지 않는 대화, 무엇을 하고 있는지보다 어떤 기분인지를 묻는 질문, 그리고 그 답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 그런 순간들은 대체로 크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반복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는 자신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듯한 감각이 남는다. 그런 관계 속에서만 사람은 자신의 외부 평가나 객관적 성취와 무관하게, 자신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지 깨닫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얼마나 깊숙이 경쟁의 세계에 잠겨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경쟁을 지워내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는 일이다. 모든 성과가 삶의 방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속도가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얻은 불안감이 정말 자신의 현실을 반영하는지, 아니면 부분적인 정보만 본 결과인지를 자주 물어야 한다. 누군가의 성공이 자신의 실패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그저 다른 선택일 뿐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준을 잠시 내려놓는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에서 비로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들린다.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속도가 무엇인지가 보인다.
하루를 얼마나 채웠는지보다, 하루에 어떤 감각이 남았는지를 돌아보는 일.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주 들여다보는 일. 경쟁이 늘 곁에 있는 시간 속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남들의 목소리를 잠깐 내려놓고, 자신의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그 짧은 시간들이 모여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경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여백을 지키는 선택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성과로 환산되기 어렵고, 간단한 말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그런 선택들이 쌓이면서 삶은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회복한다. 누군가의 성공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무엇을 지나쳐 왔는지를 조용히 돌아본다. 그 질문을 품은 채 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이 시대를 건너는 하나의 방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