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오해하게 만드는 시대의 감정에 대하여
며칠 전, 동네 놀이터를 지나가다가 오래된 벤치 앞에 멈춰 선 적이 있다. 그곳에는 작은 신발자국들이 겹겹이 찍혀 있었다. 비가 그친 뒤 마른 흙 위에 남은 자국들은 금세 지워질 흔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서로 다른 크기의 발자국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뛰어다닌 것인지, 누군가 잠시 머물렀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겹침이 오래 바라보게 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발자국 사이에는 작은 돌멩이가 굴러 있었고, 누군가는 그 돌을 건드리려다 말았는지 흔적만 남아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는데도 마음이 한동안 거기 머물렀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어떤 길을 걷는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한다. 누군가의 옆에 서 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조금 멀어지고, 같은 걸음을 걷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서로 다른 속도를 견디고 있을 때가 있다. 놀이터의 흔적들은 그런 마음을 조용히 떠올리게 했다. 조금 앞서 나간 사람, 잠시 멈춰 선 사람, 방향을 바꾸려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사람. 그 자리에서 나는 한동안 누구의 것도 아닌 걸음들을 바라보았다.
요즘 사회를 생각하면 그 흔적들이 자꾸 떠오른다. 사람들은 나이를 구분하면서도, 정작 그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비슷한 요구를 건넨다. 잘해야 한다는 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자신의 성과와 타인의 시간을 비교하게 만드는 구조.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느리게 걷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차이를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누구의 걸음이 빠른지, 누구의 걸음이 늦었는지 숫자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다시 말로 남긴다.
누군가의 성취는 축하보다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출발선이 어디였는지, 운이 있었는지, 그 운이 정당한 것인지. 실패한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고, 이유 속에서 결함을 찾으려 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도, 남녀가 서로를 향해 던지는 말들도, 세대 사이에 생긴 오래된 감정들 역시 이런 판단의 구조에서 자라났다. 사람들은 말로서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 말들이 마음에 닿지 못하면 또 다른 벽이 된다.
불안은 이런 틈 사이에서 더 쉽게 자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마음이 자꾸 조급해지고, 어떤 날은 아무런 이유 없이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일. 나도 그런 날을 지나온 적이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함이 오래 머물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감정은 실패나 부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계속 다그쳤다.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도 쉽게 하지 못했다. 말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놀이터의 신발자국을 바라보던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 서로의 걸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발자국만 보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는지도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삶도 그런 모양이었다. 앞서간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뒤에 있는 사람을 속단하는 말 사이에서, 사람들은 점점 서로의 사정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향한 말은 점점 단단해지고, 마음은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닫힌다.
나는 벤치 옆에서 오래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발자국들은 곧 흙먼지에 섞여 사라졌겠지만,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어느 방향으로 걷든, 어떤 속도로 움직이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사정을 품고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뒤에 있는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오히려 서로를 향한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각이다. 경쟁의 구조가 만든 결과라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지나야 하는 어떤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길에서 누군가는 잠시 멈추고, 누군가는 계속 걷고, 누군가는 돌아보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때때로 지치고, 때때로 숨을 고른다. 그 사정을 조금만 더 이해하려 한다면 지금의 사회도 다른 모습으로 보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견디고 있다. 앞서가는 사람의 마음에도 흔들림이 있고, 뒤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에도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덜 단단한 말들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판단보다 이해가 먼저 떠오르는 마음, 누군가의 흔들림을 오래 바라봐주는 마음. 그 마음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