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질 때
아침은 조용히 시작된다. 눈을 뜨고도 바로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옆으로 옮긴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닿아 있다. 어제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정확히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차이를 오래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잠시 그대로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느끼고 나서야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엌으로 가는 동안 집 안은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다. 물을 끓이기 위해 주전자를 올려놓고, 컵을 하나 꺼내 식탁 위에 둔다. 물이 끓는 동안 창가에 선다. 맞은편 건물의 창문 몇 개가 열려 있다. 그중 하나에서 커튼이 조금 흔들린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람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 장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둔다. 그 사이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읽다 만 책이 있다는 기억, 밀어 둔 집안일 하나. 생각은 이어지지만, 순서까지 정해지지는 않는다.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한다. 새로운 소식은 많지 않다. 화면을 한 번 넘기고, 다시 한 번 내려 본다. 딱히 볼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컵에 담긴 물이 식어 간다는 걸 느끼고 나서야 컵을 집어 든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생각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닌다. 방금 떠올렸던 일은 흐릿해지고, 대신 오늘 하루의 리듬이 몸에 스며든다.
오전 내내 집 안은 비교적 조용하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책을 펼친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집 안에 울린다.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같은 문단을 다시 읽게 된다. 눈은 글자를 따라가지만 의미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책갈피를 끼워 두고 덮는다. 다시 펼칠지 잠시 고민하다가 노트북을 연다.
어제 쓰다 만 글이 화면에 남아 있다. 커서를 옮기고, 문장을 하나 고친다. 고친 문장을 다시 읽고, 또 고친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손본다.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웠다가 다시 쓰기도 한다. 저장 버튼을 누르고 창을 닫는다. 그 과정이 낯설지 않다. 익숙한 흐름이다.
점심 시간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식탁 앞에 앉는다. 혼자 먹는 식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은 채로 밥을 먹는다. 씹는 동안에도 생각은 멀어졌다가 돌아온다. 아까 읽었던 문장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고치다 만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도 한다. 다 먹고 나면 설거지가 남아 있다. 물을 틀고 접시를 씻는다. 물이 손에 닿는 감각이 반복된다. 그 시간 동안에는 특별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후가 되면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달라진다. 다시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 앞에 앉는다. 글이 잘 써지는 순간도 있다. 손이 멈추지 않고 문장이 이어진다. 그런 순간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는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잠시 다른 창을 열어 통계를 확인한다. 숫자를 확인한 뒤에도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다시 문장으로 돌아오면, 아까 쓰던 말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루는 빠르게 옮겨 간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은 계속 이어진다. 잠시 쉬려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도,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의식하게 된다. 책을 읽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 사이에서 마음은 몇 번 자리를 옮긴다. 어느 쪽에도 오래 머물지 못한 채로.
해가 기울 무렵, 방 안의 빛이 달라진다. 낮과는 다른 색이 스며든다. 그제야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알게 된다. 커튼을 조금 더 열어 둔다. 저녁을 준비하고 다시 식탁 앞에 앉는다. 하루 동안 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지만, 장면들은 순서 없이 흩어져 있다.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감각들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밤이 되면 집은 더 조용해진다. 불을 하나씩 끄고 다시 책을 펼치거나 글을 읽는다. 오늘 하루 동안 머물렀던 자리들이 몇 군데 떠오른다. 오래 머문 곳은 많지 않다. 다만 잠시라도 멈춰 있었던 순간들이 남아 있다.
가끔은 아주 사소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물이 끓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시간, 문장을 고치다 손을 멈추고 있던 공백, 설거지를 하며 느꼈던 저녁 공기의 온도 같은 것들이다. 그 장면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감각만 남긴다.
하루 안에 있었던 장면들 중에는 충분히 머무르지 못한 채 지나간 것들도 있다. 잠시 멈추어 서면 다시 떠오르는 감각들이다. 그 감각은 잠깐 머물렀다가, 어느 순간 다른 장면으로 옮겨 간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얼마나 채웠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오늘 중에 잠시 멈춰 있었던 순간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본다. 많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쯤 떠오르면 충분하다. 불을 끄고 그대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