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잔재, 순응의 습관

사라진 듯 보이는 힘이 관계 속에서 계속 작동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지나
ChatGPT Image 2025년 12월 29일 오후 10_41_55.png 저녁 식탁에서 한 사람이 말을 이끌고 나머지가 조용히 듣는 가족의 장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권위와 순응의 분위기

권위는 사라졌다고들 말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가족 안에서도 예전처럼 목소리를 높이거나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장면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말투는 부드러워졌고, “각자 생각이 있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일상의 표면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권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채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잔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대화의 방향이 정해진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의 의견이 기준이 되고, 그 이후의 말들은 그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이 길어질수록, 다른 가능성은 점점 작아진다. 굳이 반대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말하지 않는 쪽이 더 편한 공기가 조용히 자리를 채운다. 아무도 침묵을 요구하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선택이 가장 무난하다는 감각은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이런 장면은 특별하지 않다. 가족 모임에서도, 오래 이어진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늘 같은 사람이 결론을 내리고, 나머지는 그 결론을 따라간다. 질문을 던지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대화는 정리된다. 반대 의견을 내지 않는 태도가 배려처럼 여겨질 때, 생각은 자연스럽게 접힌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순응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다.


권위의 잔재는 종종 배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괜히 분위기 흐리지 말자”는 말은 상대를 위한 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관계를 유지하려는 선택이기도 하다. 갈등을 피하는 태도는 성숙함으로 포장되고, 불편한 질문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한다. 지금 이 관계를 흔들 이유는 없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문제는 이런 선택이 반복될수록, 판단의 기준이 점점 외부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가 중요해지고, 어떤 생각이 필요한지보다,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우선이 된다. 권위는 명확한 얼굴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래된 순응의 감각이다.


가끔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그 감각이 드러난다. 메뉴를 고르는 자리에서, 이미 결정된 듯한 흐름에 맞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메신저 창에서 누군가의 말에 굳이 이견을 덧붙이지 않고 대화를 끝내는 선택. 그때마다 우리는 편안함을 얻지만,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놓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더 쉬웠는지.


권위의 잔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낮고 안정적인 톤으로 일상에 스며든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순응은 저항보다 훨씬 조용하고, 그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생각은 조금씩 닳아간다. 말하지 않는 선택이 반복될수록, 말해야 할 순간을 알아차리는 감각도 함께 흐려진다.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자유롭게 말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적다. 권위는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습관을 통해 유지된다. 그리고 그 습관은 대부분 아주 일상적인 선택에서 만들어진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큰 저항이나 분명한 선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한 번쯤은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보는 일. 이미 정해진 결론 앞에서, 조심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떠올려 보는 일. 그 작은 어긋남이야말로, 오래 남아 있던 권위의 잔재를 흔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일지 모른다. 순응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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