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먼저 유통되는 것들에 대하여
기사를 읽다 보면, 이 문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자주 놓친다. 누군가의 발로 밟은 현장에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이미 여러 번 옮겨 적히며 매끈해진 문장인지 분간이 어렵다. 제목을 읽고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움을 만나기 전에 익숙함부터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도착했다기보다, 이미 정해진 방향의 감정에 먼저 도착한 기분이 남는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신문 한 면이나 저녁 뉴스가 여론의 중심이던 시절은 분명 지나갔다. 사람들은 각자의 화면에서, 각자의 알고리즘이 골라준 방식으로 세상을 접한다. 정보는 더 빠르고 더 많이 흘러다니지만, 그만큼 가볍게 소비된다. 그런데도 전통적인 언론은 여전히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영향력은 줄었지만 태도는 바뀌지 않은 상태, 그 불균형이 기사 곳곳에서 느껴진다.
취재의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발행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보다 먼저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기사로 정리되고, 그 기사는 다시 다른 기사로 옮겨진다. 출처는 흐려지고, 맥락은 생략된다. 이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도, 정정은 조용히 지나간다. 기사는 이미 충분히 읽혔고, 감정은 이미 소비되었다는 전제 아래서.
인터넷을 채우는 기사들을 천천히 바라보면, 정보보다 정서가 먼저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분노를 자극하는 표현과 의심을 유도하는 문장이 반복되고, 사건은 설명되기보다 특정한 태도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배열된다. 기사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것은 사실이라기보다 감정의 방향이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전에,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가 먼저 제시된다.
이 변화 속에서 독자의 위치도 달라졌다. 이제 독자는 읽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인지 확인해야 하고, 다른 출처를 찾아야 하며, 기사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메워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요구는 현실적이지 않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한 상태에서, 기사 하나를 두고 여러 번 생각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판단을 맡긴다. 많이 보이는 기사니까, 여러 매체에서 다루니까,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은 빠르고 단단하다. 한 사람의 이름이 특정한 감정과 함께 묶이고, 그 감정은 군중 속에서 증폭된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사실처럼 유통되고, 개인은 설명할 기회 없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달라져도, 이미 형성된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가 얼마나 무거운지와는 무관하게, 언론은 다음 기사로 이동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기자가 쓴 글인데 근거 없이 썼겠느냐고, 아무 일도 없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올 리 없다고.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문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 훨씬 정교해진 시대다. 아무 일도 없는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은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연기의 실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느냐이다.
문제는 책임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언론은 여전히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사용하면서도, 그 힘이 만든 결과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여론은 만들어지지만, 책임은 흩어진다. 권력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해 감정을 조정하고 방향을 유도하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는 대부분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독자 역시 이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판단을 외주화하는 순간, 생각은 서서히 외부로 이동한다. 스스로의 의견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제목과 문장에서 빌려온 감정일 수 있다. 군중 속에서 형성된 판단은 개인의 사유처럼 느껴지지만, 그 시작점은 대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충분히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거리에서 생긴다. 한 발 물러나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언론이 만들어 놓은 감정 위에 그대로 서 있는 한,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내가 선택한 생각이라고 믿지만, 그 생각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라기보다 태도의 변화에 가깝다. 언론은 자신이 가진 힘의 무게를 다시 인식해야 하고, 독자는 감정을 즉시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생각하지 않는 대가는 늘 누군가가 대신 치른다. 그 사실은 반복해서 확인되어 왔고, 그 반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