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마음이 조급해지는 날이 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루 전체가 불안으로 채워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다. 해야 할 일을 잊은 것도 아니고, 큰 실수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마음은 이미 앞서 달리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 감정이 정말 나에게서 시작된 것인지 묻게 된다.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이, 내 삶의 크기와 정확히 맞는 감정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요즘의 불안은 자연 발생적인 감정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 조성된 상태에 더 가깝다. 내가 선택하기 전에 도착해 있고, 내가 의식하기 전에 몸에 먼저 남아 있다. 마치 공기처럼 퍼져 있어 피하려 해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감정이다.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되기보다, 이미 형성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감정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 화면에 먼저 닿는 것은 밤사이 쌓인 소식들이다. 숫자로 정리된 전망과 분석, 서로 다른 목소리의 예측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온다. 그 안에는 늘 ‘앞으로’라는 말이 붙어 있다.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 앞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말, 앞으로 선택을 미루면 안 된다는 말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처럼 전달되는 동안, 오늘의 상태는 자주 건너뛰어진다.
불안은 이제 설득의 언어가 된다.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암시,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기류,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이 말들은 직접적인 위협의 형태를 띠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 수 있는 온도로 전달된다. 불안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더 안전한 선택, 더 확실한 대비, 더 나은 상품. 불안은 소비로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이 사회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광고는 늘 지금의 상태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고, 지금보다 더 준비되어야 하며, 지금보다 더 갖추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그 바탕에는 언제나 불안이 깔려 있다. 놓칠 수 있다는 감각, 뒤처질 수 있다는 예감,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불안은 결핍을 만들어내고, 결핍은 선택을 재촉한다.
언론의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에도 여러 번 ‘위기’, ‘붕괴’, ‘경고’라는 단어가 화면을 채운다. 복잡한 문제는 자극적인 문장으로 요약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이미 시작된 현실처럼 묘사된다. 뉴스를 보고 창을 닫은 뒤에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오후가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문장은 없는데, 불안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불안은 점점 집단의 감정이 된다. 모두가 비슷한 기사와 광고를 보고, 비슷한 전망을 공유하며, 비슷한 긴장을 몸에 지닌다. 불안을 느끼지 않는 쪽이 오히려 무감각한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도 생긴다. 그렇게 불안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상태가 된다.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 불안이 쉽게 수익으로 환산된다는 점이다.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더 자주 검색하고, 더 많이 비교하며, 더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보다, 일단 안전해 보이는 쪽을 택한다. 불안은 판단을 단순하게 만들고, 단순해진 판단은 소비에 유리하다. 이 구조 속에서 불안은 해소되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유지되어야 할 상태처럼 다뤄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책임을 개인의 감수성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끊임없이 불안을 호출하는 환경 속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일은 개인의 의지 만으로는 버거운 과제가 된다. 불안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 애쓰는 일은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출처를 의심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 감정이 정말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이익과 속도를 위해 조율된 것인지 잠시 멈춰 묻는 시간.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왜 이 사회가 이렇게까지 불안을 필요로 하는지 바라보는 시선이다.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나의 것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흔들릴 때, 그 흔들림에서 한 발 물러나 감정을 바라보는 선택은 가능하다. 불안을 그대로 소비하지 않는 태도, 그 작은 거리 두기에서 집단의 감정은 다시 개인의 감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불안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연료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하게 하는 하나의 신호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