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모범이 되어 주자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은 작은 일도 일어나는 것이 두렵다. 그 일로 인해서 평화로운 일상이 깨질 것 같고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다. 그래서 일을 벌이지도 않고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속편 하다.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안일한 인식을 믿으며 나름 자신은 평화주의자이며 모범 시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사회에 동요를 일으킬 최소한의 요소에 보태지 않으니 이 얼마나 모범 민주 시민인가.
내가 그랬다. 내 의견이라곤 없었다. 경상도 집안에서 자라서 경상도 출신의 특유한 근거 있는 자신감과 비교 우월감이 있었다. 경상도 사람들의 적은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아니 적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비천하고 무식하고 성질만 더러운데 무모한 주장만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초등 시절 일어났던 광주 민주화 운동도 언론의 보도만 믿었고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말만 믿고 자랐다. 그들이 잘못했고 나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근간을 흔드는 악의 축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란 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의 선거에 나가지도 않았거나 부모가 하라는 대로 무조건 '1번'만 기표했다. 그러면 부모에게 잘 자란 아이라며 칭찬을 받았으니 그런 가스라이팅에 복종하는 인간이었다. 이명박을 찍었고, 노무현 대통령에겐 관심도 없었다. 엄마나 이모가 누군가를 '노빠'라며 너는 그렇지 않지라며 물어볼 때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박근혜 탄핵 때는 약간의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 말고 누군가가 나서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촛불집회엔 나갈 생각도 안 했다. 이때도 엄마가 너는 그런 데 안 나가지라며 물었고 나는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응'이라고 소심하게 대답하며 착한 딸을 유지하려 했다.
강남에 사는 경상도 사람. 뭔가 완벽한 조건을 갖춘 것 같았으니 얼마나 편협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킥을 하고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고 싶다. 좋게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나의 자아를 찾고 내 생각을 확실하게 갖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치는 모든 방면에서 너무도 복잡하고 어렵다. 학문의 분야에서 벗어나면 그 실전은 모든 분야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방면의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심리, 철학, 역사 같은 기본적인 인문학에 대한 기반도 튼튼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니 진심으로 국민을 대변하며 생각하고 그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안위보다 국민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와 야, 좌와 우, 경상도와 전라도, 보수와 진보 이런 편을 가르는 것에 익숙함보다 국가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쪽의 일방적인 이익보다는 국민 전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서 극소수 아니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이 눈에 띈다. 80%에 가까운 국민은 그들의 국민이 아닌 것이다. 공감과 배려심, 이해심은 한 두 사람에게는 무한대로 발산할 뿐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느냐며 이해를 하는 그런 마음으로 국민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우성치는 마음을 이해하면 좋겠다.
요즘 들어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체주의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폭압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개인과 사회가 단절되고, 냉소와 무관심이 퍼질 때 전체주의의 씨앗이 싹튼다고 봤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라며 체념하고, 허구를 진실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와 정보 과잉은 이런 흐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거짓 정보가 난무하고, 진실을 가리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불신하며 중요성을 잃어간다. 이런 환경에서는 민주주의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해답은 간단하다. 진실을 지키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책임감을 가진 시민으로 사는 것. 전체주의는 멀리 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는 현재의 문제이다. 깨어 있는 우리가 만들어 갈 미래는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