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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갱년기 너는 사춘기

창과 방패

by 지나

갱년기는 폐경 혹은 완경이 오기 10년 전부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춘기는 보통 11세 경부터 시작해서 18세 경이면 끝난다고 한다. 하지만 사춘기는 어른이 되려고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시기라 뇌의 뉴런의 가지치기 등의 작업과 전두엽의 휴식과 발달 시기 등을 고려하면 20대 초반까지도 간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사춘기라고 부르는 기간은 그것이 가장 극에 달하는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갱년기나 사춘기나 사람마다 시작과 끝의 시간이 다르고 양상도 천차만별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인생에 적용된다면 사춘기 때 너무 조용히 보내거나 자신을 표출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갱년기 때 이 모두를 하게 된다. 나 역시 극심한 사춘기를 보낸 것이 아니라 갱년기에 접어든 지금, 그 총량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중이다.



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내 아이를 낳은 일의 그 아이는 나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많고 짜증 내고 분노하는 일도 많은 이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중학교 시절이 지났어도 갱년기에 안착한 나는 감정이 일정하지 않고 불안함을 느낀다. 예민한 모녀이지만 예민함의 방향이 다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모든 것을 받아주고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평소보다 더 긴장된 상태가 된다. 아이가 학업과 진로 결정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고민을 감정 개입 없이 듣고 대화를 이어나가면 아이는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 또한 어렵다. 요즘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고 정시 볼 거야."라든가 "자살각이다."라는 식의 극단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충격을 받고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분 나쁨과 분노, 화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추임새 같은 비속어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누가 내 심장에 칼을 꽂는 아픔을 느낀다. 평생 나도 써 본 적 없고 주위에서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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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갱년기에 접어든 나는 아이가 고등학생이라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해서 한층 더 예민해져 있기에 아이의 모든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열심히 하면 될 텐데, 왜 해보지도 않고 우회 방법을 찾으려 하지?'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박여 있어서 아이가 무심히 한 이야기도 잘 들어주지 못하고 방어적이 되며 그건 아니라고 말하게 된다. 아이는 아이대로 날카로워져서 말투가 부드럽지 않고, 나는 나대로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다그친다. 아이는 짜증 내며 전화를 끊고 나는 한숨을 쉰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내가 너무 방어적이었나. 아이의 생각을 미처 다 듣지도 못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느낌이 든 건 아닐까. 엄마라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을 텐데 내가 너무 속이 좁았나 보다.'



아이의 입장은 이랬을 것 같다.

- 엄마는 왜 내 말에 다 부정적으로만 대답해?

- 엄마는 내가 계속 스마트폰만 본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고민하느라 그래.

-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싶은 거야. 그래서 같이 의논하고 싶었어.

- 나도 힘들어서 그래. 엄마 한 테니까 편하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 그러면 난 아무한테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거네?


내 입장은 이렇다.

- 내 생각과 반대의 답을 네가 원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늘 우회로나 핑계를 찾으려고 하는 너한테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어.

- 스마트폰 보는 건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 회피하는 거잖아. 생각하기 싫으니까 뇌를 멍하게 두는 거 아니야?

- 학교에서는 내가 볼 수 없으니까 열심히 한다 안 한다 할 수 없어. 하지만 집에서 네 모습을 보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확실해. 어떤 방법을 찾든 너는 거기에서 또 부정적인 걸 발견하고 안 하고 다른 걸 찾으려 할 것 같아서 솔직히 믿음이 가질 않아.

-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한 사람에게 오히려 말을 더 신중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사람이 너의 감정의 쓰레기통은 아니잖아.

- 그렇게 말하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잖아. 다른 방법으로도 네 감정을 말할 수 있어.



나와 내 아이의 입장을 멀리 떨어져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둘의 생각을 나눠 보았다.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데, 나는 엄마이고 더 살았고 세상을 좀 더 아는 어른이니까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막상 부딪히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걸까. 갱년기의 호르몬 변화로 내 감정을 더 조절할 수 없으니 혼자 앉아서 한숨도 쉬고 눈물도 흘려 본다. 그러다가 격한 운동도 해 보고 글로 이렇게 이런저런 말을 하며 다스려 본다. 앞으로 1년 남은 아이의 고등학교 생활에 내가 심적으로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이는 아직 사춘기의 끝, 성장 기간이니 먼 훗날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아니 오지 않아도 좋다. 그냥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어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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