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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Nov 20. 2024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삶의 이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물었다. 준비도 없이 받은 질문이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은 물론이고 심장 박동까지 빨라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나? 왜 그런 생각을 하지?"

그 사람이 무척 걱정되기 시작했다. 직접 얼굴을 보고 받은 질문은 아니었다. 밤늦게 갑자기 날아든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걱정 섞인 나의 짧은 대답에 그 사람은 한참 답이 없었다. 그리고 아침을 맞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그냥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삶의 이유에 대해 궁금하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요즘 그 사람의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것을 알았기에 말 그대로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동시에 '나는 왜 사는 거지?'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이유를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은 모른다고 할걸."이라고 답했고,

"원대한 목표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연 그럴까. 깊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럴까. 원대한 목표가 있어야 사는 의미가 있는 걸까. 

"이유가 있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삶의 매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라는 짧은 답을 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목표'라고 말하면 어떤 의미의 성공이나 성취를 생각하고 설정한다. 큰 시험에 합격하는 것,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 승진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는 삶의 목표는 될 수 없다. 오히려 살아가는 과정의 성취이다. 그들이 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잠시의 기쁨과 허무함이 몰려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살아가는 이유가 없게 되니 방황을 하기도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과연 살아가는 이유가 될까? 오히려 행복하기, 작은 것에 만족하며 긍정적으로 살기, 건강하기 같은 추상적인 목표들이 삶의 의미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느낌이다. 




크고 작은 성취들은 삶의 과정일 뿐이다. 과정은 긴 여정의 어디에라도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인생이 하나의 긴 선이라면 과정은 그 모든 순간들을 잇는 수많은 점들이다. 선의 시작은 완전히 내 의지일 수 없고 끝 역시 대게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다. 하지만 양 끝 사이의 점들은 작건 크건 내 의지로 찍으며 이을 수 있다. 어떤 점은 희미하고 작을 수도 있고 어떤 점은 크고 또렷할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은 없다. 그것들은 내 삶의 흔적이고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내 삶이 다채롭게 하는 활력소다. 각각의 점들은 그 모양이 같은 것이 없기에 내 선, 내 삶의 끈은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 그러니 내 선이 초라하다고 가늘고 흐느적거린다고 함부로 폄훼하지 말자. 내가 만드는 내 삶의 선은 사회라는 세상이라는 큰 옷을 짓는 씨줄이고 날줄이다. 옷을 단단하게 여미는 단추를 붙드는 실일 수도 있고 옷을 더 아름답게 수놓은 실의 일부일 수도 있다. 나라는 실, 긴 실이 하나 없어지면 이 옷은 어딘가에서부터 올이 풀려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작은 구멍이 되고 점점 커져 옷의 기능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이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다. 하나라도 없어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나 또한 살아가는 이유를 말하기가 어렵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김상용 시인은 "왜 사냐 건 웃지요."라고 그의 시에서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큰 야망이나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즐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마음 편하게 사는 것,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임을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 삶의 의미는 처음부터 있어야 하는 것도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고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이 삶의 이유이다. 



반대로 생각해 봐도 좋다. 사는 이유가 없다면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지금 내 삶 자체가 죽도록 힘든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다면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수만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내가 못나서, 바보 같아서, 잘하는 것도 없고 찌질해서, 나만 멍청하고 게으른 것 같아서...... 이 모든 대답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든 대답들의 앞에 '남들보다'라는 수식어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왜 내 인생의 이유를, 가치를 밖에서 찾는가? 내 삶의 이유는 내 안에 있어야 한다. 남들보다 못났다는 점에 '내' 인생의 잣대를 댄다는 것은 내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어제보다 더 나아지지 못한 점을 반성하자. 그렇다면 더 나아지려고 마음먹고 노력하면 된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인생의 가치를 나의 가치를 내 안에서 찾자.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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