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주체는 나다. 그래서 같은 일이라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 자주 비관적이고 더 자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한 인간이 있다. 그는 본인이 지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의 반사적으로 외부에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다고 그가 늘 남 탓만 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왜 그럴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무기력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일단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력하게 이렇게 믿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부모 때문이야.'
부정인간, 비관인간이 된 배경
사랑이 가득한 집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백수나 마찬가지인 이 인간의 아빠는 엄마가 벌어온 돈으로 생색을 내고 다녔다.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시고 본인 입으로 술집에 돈을 뿌리고 왔다고 자랑하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 잘못된 남성관의 소유자임은 확실하다. 거기에서 그치면 양반이겠지만 한 술 더 떠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부인에게 폭력까지 행사했었다. 언젠가는 크리스털 재떨이를 던져 온돌 바닥이 패인 적도 있었고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부인은 병원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장남인 그 사람의 아래로 줄줄이 딸린 형제자매들이 사고를 치면 그의 부인은 돈으로 수습했고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돈을 꽤 잘 벌었던 부인을 돈 나오는 자판기나 화수분으로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시집살이도 엄청나게 했다고 한다. 잘 나가는 직장인을 가난한 집 시골 촌구석에서 며느리로 들였으면 귀하게 모셔야 하는 게 이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긍정인간이 되고 싶은 이 사람의 엄마는 사랑이란 걸 모른다. 그걸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주는 법을 모르는 불행한 삶의 이 여인은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상처를 줬다. 특히 장녀에게 화풀이를 하기 일쑤였다. 아직 중학생이었던 '인간'은 집이 조금이라도 어지럽혀져 있으면 퇴근한 엄마에게 신세 한탄이 섞인 비난을 듣기 일쑤였다. 반대로 집안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으면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청소를 했었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고등학생 때는 집안이 시끄러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공부할 저녁이면 그의 부모는 티브이 소리를 시끄럽게 해 놓고 각종 프로그램을 보았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란 것이 나오지 않았을 시절이었기에 그는 그냥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독서실도 학원도 보내주지 않아서 온전히 집에서 했고, 역시 부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삶의 목표는 없었다. 막연한 목표조차 없었다. 그런 걸 세워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숨 쉬니까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대학에 가서는 수업도 잘 들어가지 않았고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캠퍼스의 낭만을 느낄 마음의 공간도 없었고 늘 눈치보는 삶을 살았다. 남편 눈치 보느라 미리 자식에게 손쓰는 불쌍한 여인을 엄마로 둔 덕에 이 사람도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지배했다. 대학생들 대부분이 하는 고민도 할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먹고살 수는 있을까? 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의욕도 없이 낮 동안 침대에 누워서 음악만 며칠 들은 적도 있었으니까. 살다 보니 이런 인간도 있더라. 이런 인간은 어떻게 나이들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인간의 삶은 바뀔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