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일상이 되었다
습관이란 게 무섭다. 좋은 습관은 일부러 습관 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문제는 나도 모르는 습관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이런다고?'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내게는 나도 몰랐던 그러니까 당연히 주위 사람들도 모르는 습관이 있다. 바로 '눈치보기.' 도대체 얼마나 눈치를 보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으면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만 하면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리며 어디론가 숨고 싶다. 동시에 몇 십 년 고착화된 이 습관을 벗어던지고 싶지만 그게 너무 힘든 나 자신이 안쓰럽기만 하다.
내 눈치의 기원은 아마도 가정환경 때문이리라. 경상도 남자의 나쁜 점만 골고루 가지고 있는 무능력한 아빠는 폭군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같이 사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정도만 알고 있고 오히려 그의 친구들은 '호탕한 사람' 내지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안과 밖에서의 사람됨이 달랐으니까.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왜 이런 사람이랑 결혼했을까? 어릴 때는 엄마가 아빠에게 폭언이나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자주 보았고 나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이혼하라'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지금 같았으면 그런 장면에서 나도 같이 화를 내고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어떤 조치를 취했겠지만 그 당시는 엄마도 나도 동생도 주눅 들기 일쑤였다. 무능력한 아빠는 능력 있는 엄마를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집안 살림하는 가정부로, 자신의 가족을 위한 시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엄마는 당하고만 살았을까. 우리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엄마는 점점 아빠의 눈치를 보며 모든 것을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아빠는 몰라야 한다며 어떤 일이든 숨기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몸은 자동 긴장되고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심리적 종속자가 되었고 지금은 아빠보다도 더 나서서 예전의 아빠 같은 말과 행동을 하며 아빠의 실드를 쳐주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화도 나고 가끔은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런 부모 밑에서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고분고분한 아이. 그러다 보니 정말 그런 아이가 되긴 힘들고 그런 척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내 의견 표시는 참으며 하지 않고 겉으로는 '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 공부를 하는 척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 부모의 심기를 거스를까 내 방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대화 소리, 헛기침 소리 그리고 한숨 소리에 예민해져야 했다. 이런 것들이 습관이 되다 보니 밖에서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생활을 할 때 자동적으로 그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투와 몸짓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그리고 내가 알아서 움츠리며 타인에게 맞춰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결혼하고 나서 내게 늘 사랑을 주는 남편 앞에서도 눈치를 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다. "난 화낸 적 없는데 왜 내 눈치를 봐?"라고 남편이 말하는 순간 울고 싶었다. 나는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못났지. 게다가 딸의 말투와 숨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심기를 살피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내가 무서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러고 싶지 않아. 왜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해자 취급하는 거지? 남편과 딸은 내가 이런 줄 알면 얼마나 억울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나서부터는 당당해지려고 노력했다.
당당해지기. 내 생각 잘 말하기. 내 감정 표현하기.
이 세 가지만 잘해 보자. 적어도 남편과 딸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반겨줄 것이 확실하다. 나만 용기를 내면 면된다. 그렇게 해도 나는 미움받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죄인 취급받지 않는다. 당당해지자. 설사 내가 잘못할지라도 그게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사람은 모두 잘못을 저지르면서 사니까. 그러니 용기를 내자. 괜찮다. 괜찮다. 내 생각을 말해도 괜찮고, 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다. 알아서 기지 말고 알아서 움츠리지 말자.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용기를 내자.
물론 아직 쉽지 않다. 아직 엄마나 아빠 앞에서는 뭔가에 눌린다. 좋은 척해야 하고 잘하는 척해야 하고 괜찮은 척해야 한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해야 한다. 아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 아프면 자신들보다 젊은 애가 아프다고 핀잔 들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그래도 아주 조금은 이제 내 생각과 마음을 말한다. 용기를 내서 "그렇게 말하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이렇게 말하면 좋겠어."라는 식으로 말한 적도 있다. 덜덜 떨면서. 하지만 내가 이러는 줄 그 두 사람은 꿈에도 생각 못할 것이다. 이런 안순환을 어떻게 끊어내야 할까. 내가 나를 더 사랑하고 용기를 내는 수밖에 없을까.
딸을 생각하자. 남편을 생각하자.
그들을 위해서 내가 당당해지자. 같이 행복할 사람은 이 둘이니까. 엄마니까 용기를 내보자. 용기를 내보자. 그래.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