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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아이는 정말 착한 걸까?

착한아이 콤플렉스

by 지나

내가 일상에서 눈치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그것을 인지할 때마다 되뇌었다. '당당해지자. 나는 죄지은 것 없다. 내가 항상 착하고 바른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괜찮다.' 온갖 단어들을 끌어들여 내게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다시 '나는 왜 이렇게 눈치를 볼까?'라는 의문에 봉착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도 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 (Nice guy syndrome)

위키백과에서는 이를 '타인으로부터 착한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이렇게 성장한 어른은 '착한여자', '착한남자', '좋은사람' 등으로 바뀌어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처음에는 부모로부터 착한아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그 어린 나이부터 생존 본능을 뽐냈는데 그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좋은사람이라는 말로 대체된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 다행인 것은 나는 '착한여자'에 대한 바람은 크지 않았던지 이런 시기가 20대 때 잠깐 있다가 사라진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삶 속에 나의 다른 페르소나처럼 존재하고 있는 '착한사람'은 조용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제는 부모가 아닌 타인에게서 듣는 '좋은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정말 좋은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겁이 많은 내 성격을 조금씩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해서이지만 사랑하는 내 딸에게 좀 더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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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함은 배려가 아니다

타인 공감과 이해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착함은 필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마음씨 착한 주인공은 마지막 회까지 악한 이들의 진실을 숨기며 자신이 묵묵히 참고 잘 살아간다. 온갖 불행을 몸과 마음으로 겪다가 나중에야 그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주인공을 도와주고 주인공은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현실은 늘 드라마 같지 않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과 생각, 억울함 등의 내면적 요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참는다고 눈감아준다고 다가 아니란 말이다. '언젠가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자.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는 있어도 반드시 알려야 할 생각과 상황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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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현해서 당장에는 핀잔이나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잠시일 뿐이다. 누군가가 나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기분 나쁘게 한다면 2차 가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사전 차단하자. "이건 좀 기분 나쁜데?"라는 한 마디면 된다. 상대방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이 거슬린다면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오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해보자. 평소에 늘 상대의 눈치를 보고 그에 맞춰주며 착한사람이 되려 했던 사람에겐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눈 질끈 감고 말해보자. 당장엔 그 사람이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 있지만 다음엔 그런 일이 줄어들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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