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결핍되었던 것
"나는 좋은 엄마가 되겠어"라고 결심한다고 바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이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서 가장 결핍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딸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엄마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을 모르니 어떻게 자랐는지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바닷가의 마을에서 풍족하지 않았었고 공부는 잘했지만 아들 하나만 대학에 보내고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잘 나와서 직장 생활을 했고 진짜 사랑했는지 의심은 되지만 아빠랑 결혼을 했고 그 이후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시댁살이는 심했고 딸린 형제와 자매들을 돌봐야 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자존심만 살아서 윗사람에게 굽실대지 못하니 좋은 직장도 떄려치우기 일쑤였고 엄마는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부터 시작하여 집안을 일으킨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머리 좋은 엄마는 경제적 능력이 뛰어났고 운도 따라줘서 금전적으로 남부럽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아빠가 뺴먹고 그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들어가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엄마를 존중하지 않았고 정신적인 학대까지 해서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의 관계가 돼버렸다. 엄마는 자신이 그렇게 변한 지도 모르고 이제는 앞장서서 나르시시스트의 편을 들고 앞길을 쓸어주고 있으니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이제는 '화'만 남았다.
엄마의 이런 세월 속에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 되었다. 아니 '돈벌이'였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돈은 잘 버냐? 많이 벌겠네?", 사위가 야근을 한다고 하면 "수당 많이 받겠네?", 시아버지께서 은퇴를 하시고 집에 계시니까 너무나 순수한 얼굴로 웃으며 "집에서 놀면서 뭐 하시냐"는 식으로 말한 기억이 있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나르시시스트가 되어버렸다. 자식들을 손에 쥐고 흔들려하고 입에선 머리에서 걸러지지 않은 말들이 나온다. 가끔은 그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받지 못한 한 여자의 안타까움을 알면서도 그걸 나는 온전히 다 이해하고 받아주질 못한다. 나 역시 엄마에게는 에코이스트였고 지금은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지만 걸음마 수준이니까.
내게 좋은 엄마란,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요리를 잘하는 엄마도 아니다. 오랜 대화를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엄마, 나의 사소한 관심사와 일상을 공유할 마음이 생기는 엄마, 내가 전화하고 싶은 엄마, 자꾸 보고 싶은 엄마이다. 옆에 있으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엄마, 내가 기분 나쁘면 표현할 수 있는 엄마이다. 가끔은 나와 말다툼을 해도 딱히 화해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엄마이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내게는 이것들 중 하나도 없다. 내게 엄마는 이 모든 것들의 정반대에 서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딸에게 이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직장을 그만둔 지 오래인 내가 경제적인 능력은 없어도, 손끝이 야물지 못해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어 주거나 요리를 예쁘게 잘해주지는 못해도 옆에 있으면 좋은 엄마이고 싶다. 재잘재잘 함께 수다를 떨면 한두 시간은 쉽게 지나가고, 좋아하는 아이돌과 노래를 이야기하며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속상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누군가의 험담도 하며 같이 화를 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지금 그 중간 선상에 서 있다.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은 한다. 모든 생각이 일치할 수 없으니 서로 화를 내더라도 돌아서면 "밥 먹자", "배고파"라고 말하며 방에서 나오기도 하고, 투덜거렸다가도 상대의 침대에 갑자기 털썩 앉으며 "뭐 해?"라고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딸이 내게 "엄마 안아줘."라고 할 때, 말없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며 손잡자고 할 때이다. "엄마니~"라고 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나를 부를 때이다.
이렇게 상처 많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딸이 있어서 고마울 뿐이다. 시험 끝났으니 "엄마랑 어디 가지?" 하면서 놀자고 하는 딸이 사랑스러울 뿐이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와서 옆에 누우며 뒹굴거리는 다 큰 딸이 귀여울 뿐이다. 내 정신적 트라우마는 언제 극복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의 엄마의 정신적 굴레에서 언제 어떻게 벗어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가끔 용기를 내본다. 그리고 계속 되뇐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말자. 내겐 언제나 내 편인 남편과 딸이 있잖아." 그래도 아직 엄마의 전화가 오면,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나는 아직 멀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