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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Sep 25. 2024

긍정인간이 되어야 했다(2)

나도 엄마가 되었다.

긍정인간이 되고 싶은 인간은 결혼도 원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주위에서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이 사람이랑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늦게 결혼한 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부담 돼서, 자신이 없어서 출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혼과 마찬가지로 출산에 대한 거부가 강하지 않았고, 부모가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을 해서 그렇게 돼버렸다. 쉽게 아이를 가졌고 비교적 쉽게 출산을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산모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낳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거나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아이가 내 아이야?' 하는 감정 정도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했다. 무감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반면 남편은 사진에도 남아있지만 아이가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다. 눈빛에서 얼굴 표정에서 사랑의 레이저가 뿜어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결심하지 않아도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마음이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랑이 표현된다. 어색하지도 않다. 가족 분만실에 있던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기는 어쩌면 태어나서 우는 소리도 그렇게 예쁠까? 다른 아기들은 우앵우앵하고 시끄럽게 우는데 우리 아기는 응애응애(최대한 귀엽고 예쁜 소리를 흉내 내며)하고 울었어.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이 눈, 코, 입 좀 봐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데 있을 게 다 있지? 코도 오뚝하고 눈도 크고 이렇게 예쁠 줄 알았어. 


남편은 지금도 그 순간을 이야기하면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2박 3일 동안 병원에 머물렀을 때도 늘 아기 옆에 있으면서 안아주고 웃어주고 들떠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인간은 병원에서도 산후조리원에서도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만 했고 심지어 방으로 일을 가져와서 하기도 했다. 물론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직은 실감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인간의 사례로 보면 모성애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집은 부성애가 선천적인 느낌이었다. 



남편은 직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뀐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이 인간을 위해 남편은 과감하게 6개월의 육아 휴직을 감행했다. 그 덕에 이 인간은 밤잠을 잘 수 있었고 남편은 오히려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많았다. 아이의 목욕도 매일 시켜 준 것도, 자주 안아준 것도 남편이었다. 유모차가 필요 없었다. 늘 안고 다니고 앞으로 메는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늘 몸에 부착시켜 다녔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만큼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아내가 힘들어하지 않게 모든 것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사랑받는데 익숙하지 못하고 사랑해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이 인간이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랬다. 이 인간이 잘못했어도 늘 져주는 남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면서 억지를 부리기도 우기기도 했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남편은 늘 먼저 사과하고 웃어주고 미안하다고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기적이고 못된 시절을 오래 지냈다. 남편이 상처받는 것도 모르고, 자신만 상처받는다고 믿었다. 자신이 인생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이 인간에게 남편은 을이라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도 그랬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좀 생각을 깊이 했는지 늘 이런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나는 아빠는 될 수 없으니 적어도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아니 사랑을 잘 표현하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고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무조건 자식을 탓하고 몰아가지 않고 내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지. 자식은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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