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사 생활을 공유하려는 이유

한국에서의 나 이야기

by 정긍정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왜 벨기에 회사 생활에 대해 연재해 나가고 싶은지 말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의 나는 조선소에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선소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조선해양공학도였다. 졸업 후 여느 누구처럼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희망했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품질 검사를 하는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처음 일을 하며 현장의 쓴맛 단맛을 겪었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텃세에, 무시에, 젊은 여자에게 따라오는 근거 없는 소문들에 속상해했던 적들도 있었지만, 현장과 고객을 이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는 품질검사 업이 너무 좋았다. 텃세 부리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더 괄괄해지는 내 성향도 잘 맞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더 좋은 기회가 생겨 조선소와 컨소시엄을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테크니컬 코디네이터 역할로 이직을 했다. 이 일도 너무 좋았지만, 내가 맡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중요 미팅에는 나를 참여시키지 않는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에 넌덜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어느 순간 한계가 보임을 느꼈던 것 같다. 내 성격 그대로 살기에는 이 남초 산업에서 나는 너무 모났고 드셌다. 그리고 부모님 집에 살고 있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도 집에서 밥 먹기 힘들 만큼, 일 끝나고의 내 스케줄은 더 빡빡했다. 다행히도 음주가무를 잘 즐겼지만, 사회생활의 일부분임을, 이 생활패턴이 나를 망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석사를 하고 싶었고, 마침 오래 롱디를 유지하던 벨기에 남자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누구 하나는 큰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기에, 오래 생각 않고 벨기에로 떠났다.


내 경험은 조선소라는 특별함이 있긴 하겠지만, 다른 산업에서 근무하는 내 주변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여자 친구들의 경험들도 모두 녹녹지 않았다. 남녀노소 없이 많은 이들이 회사 구조 속에서 간간히 버티고 있는 듯했다. 말하면 입만 아픈 야근, 회식들, 임신과 동시에 경단녀가 되는 여자들과 경단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육아 휴직을 내며 먹는 눈칫밥들 등등. 언제부턴가 회사 생활이라 하면 고단함의 대명사가 된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이제 고작 1년 좀 넘게 벨기에에서 일을 했지만, 가끔 생각을 많이 들게 하는 차이점들이 보였고 그것에 대해서 단순히 적어 나가고 싶었다. 벨기에가 모두 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규정들이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고, 어떻게 일하기에 워라밸이 맞아지고, 여성들의 경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동료들이나 국가에서 어떻게 돕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졌다. 나 또한 그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하기에 이 곳에 적으며 함께 좀 더 나은 일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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