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서 연인이 되기까지
오랫동안 좋아한 그에게 편지로 마음을 표현했다. 어느새 너를 좋아하게 돼버렸다고. 여행을 가면 너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나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적었을 때 내 마음은 그와 이미 사귀는 단 꿈을 꾸고 있었다.
3일을 고쳐 쓴 편지를 주기로 결심하고 그를 만나러 나갔을 때 나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검은색 나시를 입고 그 앞에 섰다. 그가 친구라는 선을 넘어 내게 오기를 바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윽하게 비추는 불빛 아래 앉아 그를 기다렸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타코 음식점에서 우리는 단둘이 만났다.
그는 멀끔한 반소매 티셔츠에 페인팅이 독특한 데님 팬츠 거기다 짙은 갈색 가죽 워커를 신고 내 앞에 앉았다. 두 번 접어 올린 티셔츠 아래 검게 그을린 팔뚝과 그 위에 매력적인 타투가 반짝였다. 타코와 나초칩 그리고 맥주를 들이키며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지난밤 나눴던 얘기를 이어갔다. 그에게 빌려준 소설이 재미있다고 그는 말했고 내가 읽어봤으면 하는 책을 빌려준다고 챙겨 왔다고 했다. 술을 끊었다고 말하던 그는 맥주를 연달아 세 잔을 마셨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화를 따라 나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달아오는 술기운 때문인지 좋아하는 그를 마음껏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지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배도 부르고 술도 마셔서 알딸딸한 상태에서 음식점을 나섰다. 이른 저녁이었는데 헤어지기 아쉬워 그에게 도산공원 산책을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우리는 수영장 속을 걷는 듯한 습기 속에서 도산공원을 세 바퀴 돌고 나서야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란히, 약간의 간격을 두고 앉았을 때 편지와 함께 손수건 선물을 건넸다. 그는 세 번 접힌 편지를 보더니 “편지가 꽤 기네”하고 답했다. 나는 마음을 들킬까 겁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집에 가는 길에 읽어봐도 돼?”하더니 고맙다며 선물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불쑥 그의 입술은 어떤 감촉일까 궁금해 그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집으로 가는 길 승강장 반대편으로 향하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가 빨리 편지를 읽고 답해줬으면 하고 바라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 지났을까. 그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더 궁금하고 자꾸 생각난다고. 이런 말은 만나서 해야 하는데 편지를 읽으니 지금 편지에 답장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는 감정에 눈을 깜박이며 몇 번을 곱씹어 그의 말을 되뇌었다. 그가 내 일상에 들어온 첫 번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