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12월의 어느 날 아침, 본가인 남양주 부엌에서 노트북을 켰다. 온라인으로 출근 체크를 하고 메신저로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엄마가 팔팔 끓는 물에 찜기를 넣고 호빵을 쪄왔다. 호빵을 한입 베어 물면서 엄마는 재택근무하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옆에서 이모는 “그 마우스는 모야?”하고 물으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남자 친구가 사줬다고 하자 이모는 “엽이 A형이니? 이렇게 섬세한 건 A형인데..”하고 덧붙였다.
마우스는 다름 아닌 버티컬 마우스였다.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마우스로 딸깍거리며 일하느라 어깨가 아프다고 했을 때 남자 친구인 엽이 내게 필요한 건 버티컬 마우스라며 핸드폰으로 금세 찾아내더니 선물한 물건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공대생으로 숨길 수 없는 테크놀로지 덕후였다. 내가 대체로 불편함을 참고 살기를 견디는 편이라면 그는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일상에 녹여낼 수 있을까 하며 궁리하는 사람이었다. 작년에 생일 선물로 받은 스마트 시계인 미밴드도 쓰지 않자 중요한 메시지가 오도록 알림을 설정하더니 내 팔목에 채워주었다. 그 이후, 잘 차고 다니는 나를 보며 “어때? 알림 오니까 좋지?” 하면서 뿌듯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가 최근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집안의 전등이었다. 사람이 직접 불을 켜고 끄는 게 비효율적이라면서 스마트 오디오인 구글 홈 미니를 당근마켓을 통해 들여왔다. 전등을 뜯어 전선과 조그마한 기기를 연결해 조립하더니 말만 하면 오디오 비서가 집안의 모든 불을 켜고 꺼주는 스마트 홈을 완성했다. 그는 곧 자랑스레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는데 그가 “오케이 구글! 방 불 켜줘”하고 말하면 구글이 “네”하고 대답하며 전등이 켜졌고, “방 불 꺼줘”하면 신기하게도 방 불이 딸깍 소리를 내고 꺼졌다.
문제는 그가 어떤 것에 집중하면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재밌는 일에 빠지면 메시지는 물론이고 전화를 해도 “지금 좀 바쁜데 10분 뒤에 다시 전화할까?”하고 물었다. 그럼 나는 기운이 빠져버리고 말았는데 그가 집중한 것이 게임도 술도 아니기에 딱히 무어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새로운 무언가 만들고 나면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받자마자 의식의 흐름을 따라 대화를 시작했다. “이걸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떨 것 같아 보영아? 응?” 쏟아지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그가 한창 신이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기술이 필요한 곳을 발견하면 영화 <맥가이버의> “딴딴딴딴~”으로 시작하는 음악이 들리는지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기술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양주 본가에 갔을 때 일이었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는 오빠 준은 저녁이면 마당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웠다.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만들기 위해 야외 전등을 켜 두었는데 이 등은 손님들이 방에 들어가고 나면 수동으로 꺼야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곧 핸드폰으로 멀리서도 자동으로 켜고 끌 수 있다며 이것만 주문하면 설치하는 건 해주겠다며 오빠에게 사야 할 제품을 일러주었다.
기기가 도착하고 나서 그는 설레 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나의 본가 남양주에 나를 태워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오빠에게 공구들을 빌리더니 자동으로 등이 켜지고 꺼질 수 있도록 설치해주었다. 지난 주말에는 영하 9도의 날씨에도 패딩을 입고 전선을 요리조리 둘러보며 마지막 작업을 마쳤다. 또다시 뿌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를 보며 “그거 다 네가 즐거우려고 하는 거지?” 하고 물으니까 “어떻게 알았지?” 하며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마우스를 기꺼이 선물하고,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움직이는 그를 보면서 이건 아마도 그가 표현하는 사랑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