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불빛 아래 오래된 물건들은 반짝였다

YES24 <버리지 못하는 물건> 에세이 투고

by 이긍정

나의 본가에는 비슷한 생김새와는 달리 극단의 성격을 지닌 구성원이 함께 산다. 바로 나의 엄마 미영과 두 살 터울의 오빠 준이다. 미영은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는 맥시멀리스트고 준은 눈에 보이는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물건을 모두 버리고 마는 미니멀리스트다. 미영은 한 번 사면 버리지 않는 반면에 준은 철마다 안 쓰는 물건은 정리하기 때문이다. 준이 보기에 쓸데없는 살림살이를 바깥에 내놓고 오면 미영은 “이 아까운 걸 누가 버렸데?” 하면서 들고 오는 모습이 흡사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


준이 집안 인테리어를 셀프로 손보기 시작하면서 미영이 1990년도에 혼수로 장만한 가구는 자리를 잃었다. 결혼 선물로 받았다던 이국적인 문양의 카펫은 까슬거렸고, 봉황이 그려진 부채는 지나치게 구시대스러웠다. 비싼 돈 주고 산 짙은 고동색의 장롱은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겼다. 4개가 한 세트였던 장롱은 협상 끝에 한 개만 남겨졌는데 나는 그런 장롱이 한 켠을 차지하는 내 방에서 잠들기가 무서웠다. “어쩐지 귀신이 붙어있을 것 같다니까?”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미영과 그녀의 동생 희영는 합창을 하듯 동시에 “그런 소리 하지도 마!”하며 말을 잘랐다.


미영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25년 전 갑작스레 떠나보낸 그녀의 남편을 떠올리는 데는 집안의 물건이 한몫하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살았던 시간은 비록 5년으로 짧았지만, 그녀 곁에는 그와 함께 쓰던 물건들이 남았다.

사 오지 말래도 기어코 사 왔다던 체크 패딩에는 그의 아내 사랑이, 혼수로 장만 해온 장롱에는 둘만의 신혼 생활이, 그가 참치 캔을 따다가 실수로 흠집을 낸 수저에는 집념이 담겨 있었고 그것들은 그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한 물건들이었다. 미영은 그의 손길이 머문 물건들을 내가 만질 때면 “옛날에 너희 아빠가~”로 시작하는 돌림 노래 같은 돌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 테이프는 늘어나지도 않는지 그녀는 매번 같은 이야기를 같은 음량과 같은 억양으로 반복했다. 미영은 늘 했던 얘기를 또 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는데 대화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이 물건들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들일지도 몰랐다. 때마다 그와 즐거웠던 추억을 더듬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그녀가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는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미영이 어느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곤 했다.


혼수로 장만한 물건들은 아들 준이 엄마 미영의 놀고 있는 방을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에어비앤비를 시작하면서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옷을 사도 색깔 별로 모으기 좋아하는 준은 옷 입을 때 활용하던 감각을 살려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메인 컬러가 고동색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포인트 컬러를 핑크 또는 오렌지 컬러로 잡고, 그에 어울리는 소품을 배치했다. 노란 전등에 갓을 씌워 분위기를 더하는가 하면 오래된 오디오에 감성적인 음악을 mp3에 담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준이 여자친구와 함께 감각적으로 꾸민 방은 어느새 불티나게 예약이 들어찼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까지 예약이 차기 일쑤였다. 준은 후기가 좋은 호스트에게만 주어지는 ‘슈퍼 호스트’의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그가 세심히 고른 감성적인 소품들이 낡은 그녀의 가구들과 만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 그윽한 불빛 아래 오래된 물건들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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