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긍정 Jun 28. 2021

무엇이 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긍정의 서재 책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얼마 전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대부분 졸업 후 일한지 3년차쯤 된 친구들이 많았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여럿이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막 취업한 사람의 총기와 윤기가 얼굴에 묻어있었다.

 친구 철희는 요즘 무슨 운동을 하는지,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물었다. 이제 어엿한 회사에 들어갔으니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려는 것처럼 그랬다. 대화는 남자 친구들 특유의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말장난으로 한바탕 웃었다가 다시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오는 패턴이었다. 철희는 여자친구와 함께 바디 프로필 찍기에 도전한다거나, 요즘 주목하고 있는 주식 종목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깃들어 있는게 성공한 사람 특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운동과 취미를 가져야한다고. 그런 이야기가 계속됐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요원한 건강한 직장인의 삶을 갈망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철희는 헬스를, 여자친구는 싸이클을 탄다고 했다. 나는 요가를 하고, 글을 쓰는데 어쩐지 내 운동과 취미는 거대한 자기계발의 세계에선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대단한 게 있어야할 것만 같아 가만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그런 대화가 내내 이어지는 게 불편했다.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어' 같은 말들이 주는 자괴감이 익숙했다. SNS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편집해서 공유하는 사진을 보는 기분이랄까. 화려한 모습이 신기해 자꾸만 눌러 보지만 확대할수록 내 안의 불안감을 자꾸만 건드렸다. 사진 속 친구의 화려한 모습이 무미건조해 보이는 내 모습과 비교돼 자존감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철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스마트폰 스크린 너머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조직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고 그로인해 슬럼프를 겪은 후 였다. 인사평가와 함께 크게 온 번아웃 때문에 한동안 깊은 우울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런 푸념섞인 이야기는 어쩐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았다. 푸념이 주는 어떤 부정적인 뉘앙스가 실패한 사람의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런 고민은 혼자있을 때도 충분히 하니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만큼은 마냥 즐거운 얘기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는건 모두의 내면에 자리한 고민을 외면하고 싶다는 반증일지도 모르니까.


 가끔 자기계발 책과 재태크 분야의 책을 읽곤 하지만, 그런 책을 읽을  느끼는 감정은 주로 불안감이었다. '언제까지  일을   있을까',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걸까'하는 생각이들면 문득 불안해졌다. 주변 사람들은 경쟁하듯 지출 규모를 늘려나갔고, 그걸 자랑스레 SNS 전시했다. 호화로운 호캉스 휴가와  신발과 , 소비는   규모의  또는 사는 곳으로 이어졌다. 현재 삶에 대한 만족은 없고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소비, 그리고 그런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한다는 무언의 메세지와  날의 대화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하는 불안이 한층 커진 기분이었다.

 최근 읽은 책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은 잡지기자로 일해온 작가가 도서관 예술 서가에서 고흐의 그림을 소개하는 책을 만난 뒤 그림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다. 작가는 휴가 때면 북유럽으로 미술관 여행을 다녔고, 그 시간 동안 그림을 통해 얻은 자신의 깨달음을 책에 담았다. 뻔한 해석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명화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작가의 시선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명화를 통해 전하는 메세지보다 더 크게 와닿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내 안의 불안이었다. ‘나도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글을 그러모아야하지 않을까’, ‘주기적으로 글을 올려야 구독자도 더 늘어난다는데 브런치를 좀 더 전략적으로 운영해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의 레이더가 발동했다. ‘나도 작가님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안감이 자극됐다. 눈은 글자를 읽는데 머리는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곤했다. 작가님은 어디서 일하는지, 어떤 책을 낸 사람인지 더 자세한 정보를 캐기위해 온라인을 뒤적거렸다. 이직이 마음대로 안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글쓰는 일에서 조그만 성취라도 해야하는 게 아닐까 고민스러웠다. 무엇이 되야한다는 거 말고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순 없는걸까. 어떻게 마음 속에 내재한 불안을 다스려야 일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떠오른 수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https://g.co/kgs/UaMTst 

Cover Photo by Patrik Carlberg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