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파인 생추어리에서 느낀 자연과의 공존.
얼마 전 호주 브리즈번에 다녀왔다. 남자친구 엽이의 은행 계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주를 가야 했는데, 어차피 가는 거 여행겸 다녀오자며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가 10년 전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곳이 브리즈번이었다.
브리즈번 공항에 내리자마자 청명하고 깨끗한 하늘이 보였다. 한국의 계절과는 반대인 가을이라서 우버를 기다리는데 바람이 스산했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하니 호주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호스트 마크와 게일의 동네는 미국 영화에서 본 듯이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 마을에 있었다. 브리즈번은 신기한 도시였다. 건물 사이사이 울창한 야자나무가 곳곳에서 보이는데, 일상에서 자연을 만끽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여행에 오기 전 검색창에 브리즈번 여행이라고 검색해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코알라와 캥거루를 보러 생추어리에 갔다. 처음엔 한국의 놀이공원에 있는 동물원을 상상하곤 가고 싶지 않았다. 동물은 관심사가 아니거니와 굳이 동물을 보러 돈을 내고 관광을 하는데 흥미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황선우, 김하나 작가님의 여행기 <퀸즐랜드 자매로드:여자 둘이 여행하고 있습니다>에서 두 작가님이 생추어리에 다녀온 기록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황선우 작가님은 생추어리의 규모와 그 유래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김하나 작가님은 얼마나 코알라가 귀여운지에 대해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기에 궁금증이 생겼다.
론&파인 생추어리는 내가 생각했던 동물원과는 다른 곳이었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곳곳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호주 칠면조가 눈에 띄었다. 생추어리(Sanctuary)의 뜻이 보호구역, 피난처라는 뜻에 맞게 정말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만큼 부지가 넓었다.
지도에 각 구역마다 동물이 있는 위치를 보고 한 바퀴 빙 둘러보았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동물이 유리관 앞에 전시되어 있거나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둬져있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 간혹 동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 없기도 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만큼 동물권이 존중된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이곳은 코알라 털을 수출하던 1920년대 야생 코알라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생추어리 간판에도 코알라 캐릭터가 있었고, 생추어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 코알라 안기 체험이 기대되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코알라를 안는 데 45$을 쓰다니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했지만, “코알라의 온기를 느껴보는 경험이 동물권과 나아가 환경에 대한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 난 뒤 어느새 코알라를 안기 위해 대기 줄을 서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코알라는 보송보송한 털과 까만 콩 같은 눈, 실험에 망한 어느 과학자처럼 귓속에 흰색 털이 나 있었다. 느릿느릿 걸어 다니거나 유칼립투스를 오물오물 먹거나 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는데, 품에 안아보니 갓난아기같이 따뜻하고 묵직했다. 프로그램은 훈련사들이 직접 사진도 찍어주는 게 포함이었는데, 디지털카메라로 찍힌 사진에는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나와 엽이 사이에 코알라가 아기처럼 안겨있었다. 코알라는 다행히 하루 30분만 일한다고 했다. 코알라 안기 체험을 위해 쓴 돈은 생추어리의 야생동물들을 위해 쓰인다고도 했다. 생추어리에 다녀오니 왜 호주의 많은 기념품 샵에 코알라 인형이 그리 많은지 이해가 됐다. 한국에서는 자연과 동물 이런 것들이 멀게만 느꼈는데, 먼 호주에 와서야 자연과 동떨어져있지 않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