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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Aug 26. 2024

마침내 테니스 치는 쿨한 언니들을 만났다

저..테니스 클럽에 가입하고 싶은데요

테니스 친지 올해로 2년째. 레슨은 월, 목 오전 6시 40분에 듣는다. 시간은 20분씩이다. 레슨을 들은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테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고작 20분(?) 하겠지만, 코치님이 던져주는 공을 받다 보면 전력질주로 단거리 달리기를 한 듯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리고 만다.


전에 다니던 클럽에서 나온 뒤로 한동안 테니스를 향한 마음도 한풀 꺾이는 듯했다. 그런데 남자친구 엽이가 매일 새벽 레슨 후 테니스를 치고 난 후 전화를 걸어오면 목소리가 그렇게 신나 보일 수 없었다. 출근하는 직장인의 목소리에서 그렇게 신난 목소리는 나올 수가 없는데 목소리의 톤이 한껏 상기되어 "긍정아~뭐 하니~”하고 물어오면 그게 참 이상했다. 나도 얼른 그 신난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엽이의 친구 화니에게 부탁해 평일 테니스클럽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새롭게 들어간 클럽은 세 번 정도 게스트로 참여하면 클럽원들의 동의 후에 정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세 번 안에 클럽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만한 사람인지 판가름하는 듯했다.


평소에는 비슷한 구력의 상대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곳에는 나보다 높은 3-4년 차 구력대의 나이 많은 왕언니와 동생들로 가득했다. 언니들은 대부분 40대였다. 처음 온 내가 어색하지 않게 “의정부 어디 살아요?”하고 묻고는 "시내 근처예요"하고 대답하자마자 바로 게임에 투입시켰다. 그대로 여섯 게임을 내리뛰었고, 저녁 7시에 갔는데, 게임이 끝나니 시계는 어느덧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탈탈 털린 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 맨날 이렇게 뛰는 건가.. 테니스에 미친 사람들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언니들 마음에 들었는지 신발을 갈아 신고 가는 내게 "클럽에 가입할 거죠? 다음에 또 와요~"하는 플러팅을 받을 수 있었다.


언니들은 내게 코트 위에서 서브를 잘한다며 시원시원하게 "서브 나이스!" 하며 목청 높여 칭찬을 갈기기도 하고, 어이없이 공을 놓치면 코트 위에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맛있는 간식을 가져오는 날에는 "저녁 먹었어?" 하며 물으며"이것 좀 하나씩 먹어"하며 도넛이나 사탕 같은 걸 챙겨주었다.


간혹 서브가 잘 안 되는 날이면 ‘더블폴트’를 내 실점을 계속했다. 그런 날이면 게임 내내 파트너를 향해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쳤다. 게임이 끝나고는 풀이 죽었다. 왕언니는 "지금 서브 좋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만 해~"라며 위로했다. 못해도 괜찮다며 안심시켜 주는 사람들이란 걸 깨닫자 어느새 긴장감이나 부담감을 내려놓고 테니스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클럽에 들어간 뒤로 출근하는 평일이 즐거워졌다. 월수금이면 테니스를 치러 갈 생각에 전날 잠들 때부터 신이 났다. 언니들과 같이 공을 주고받는 랠리도 자주 하다 보니 실력도 늘었다. 공 꽤나 쳐본 언니들 틈에 껴서 남자공처럼 빠른 공도 받아보고,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넘겨주는 공을 받다 보면 전에는 못 받았던 공도 달려가 받게 되는 신비한 경험도 한다.


전에 비해 자신감도 붙어 긴 랠리 끝에 위닝샷을 쳐 게임을 멋지게 끝낼 때는 주변에서 ”오~“하는 감탄사나 박수도 받는다. 그럴 때면 쑥스러워 “감사합니다”하고 고개 숙이지만, 속으로는 “오.. 이런 나 좀 멋진 듯?”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온몸에 땀을 흥건하게 흘리면서 흥미진진한 게임을 할 때면 온몸의 세포가 춤을 추는 듯 깨어나있는 감각을 느낀다.


게임을 하다 보니 언니들과 10살 넘는 나이차가 희미해지고, 마치 동네 친구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이없는 실수로 점수를 따기도 하고, 돌아가며 그날 컨디션 좋은 사람이 코트 위를 날아다니는 기량을 펼치기도 한다. 한 게임을 끝내고 나면 다 같이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본 듯 어느새 가까워진다. 몇 마디 말은 나누지 않고 같이 땀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관계가 넓고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한 달 중 컨디션이 최상인 날이 한 번씩 있다. 이런 날은 상대가 친 공이 갑자기 느려 보이고, 공이 날아올 때 몸이 스르륵 그곳으로 따라간다. 발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위치한 곳으로 움직이고 쉽게 게임에서 점수를 따 이기기만 한다. 초보 때는 이런 때가 내 진짜 실력이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보통 때의 내 경기력이 내 실력임을 안다. 그런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테니스 코트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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