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직접 축사, 축가 한 이유

마침내 결혼했습니다

by 이긍정

마침내 결혼식이 끝났다. 지난해 3월 초에 부랴부랴 예식장을 잡고, 11월 24일 결혼식을 끝냈다. 보통은 1년 전부터 예식장을 잡는다는데, 나와 엽이는 한번 예식장이나 가볼까? 한 김에 들른 예식장 두 곳을 비교해 보고는 바로 예약했다.

결혼 준비 내내 편집한 식전 영상
셀프로 만든 식전 영상 Olivia Dean - Dive(acoustic)

결혼식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축사와 축가였다. 평소 지인들의 결혼식에 다니면 아쉬운 점이 보였다. 주인공인 신랑신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꾸벅꾸벅 인사하다 보면 어느새 보며 식이 끝나 버렸다. 간혹 지인들이 하는 축사나 축가를 신랑신부가 바라보기만 하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건데 정작 둘에 대해는 모르고, 뷔페 음식만 기억에 남는 게 아쉬웠다.


“틀에 박힌 결혼식이라면 하고 싶지 않아” 그가 얘기했다. 나는 그 제안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었다. 처음 결혼을 준비할 때 엽이는 모든 절차와 과정을 파괴하고 싶어 했다. “화촉점화는 왜 해?”, “단체 사진은 꼭 찍고 싶어?” 등 그에게는 모두 허례허식처럼 느껴졌는지 형식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라면 다 거부했다. 내 일은 전통을 따르는 양가 엄마들과 엽이의 급진적인 의견 사이에서 조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단 절충하기로 했다. 둘 다 동의하는 건 넣고, 둘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빼기. “우리 결혼식이니만큼 우리가 가장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각자 직접 축사를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축가를 직접 부른다면 더 의미가 있겠다 싶어 각자 한 곡씩 부르기로 했다. 마지막은 하객들을 웃기기. 결혼 전 갔던 몇몇의 결혼식에서 많이 웃을수록 기억에 남았다는 점을 참고했다.

당당하게 셀프 축사하는 모습

축사는 결혼식 수개월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막막했다. 수십, 수백 명 앞에서 내 글을 읽는 건 처음이라 떨리는 동시에 설렜다.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인데, 그것도 수백 명 앞에서 내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라니!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에 힘을 잔뜩 준 글이 완성됐다. 몇 번의 초고를 뒤엎고, 마침내 그를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의 설렜던 그때의 마음을 적어내려 갔다. 몇 번 상엽이와 사회를 도와주는 친구 철이 앞에서 읽어보고는 감동이라는 피드백 끝에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셀프로 촬영한 웨딩 스냅 포토 테이블

축가는 그를 혼자 좋아하던 시절의 마음을 담은 곡 장범준의 ‘고백’을 준비했다. 평소 엽이와 코인 노래방에 갈 때마다 불러 연습했다. 엽이 몰래 혼자 보컬 학원에 가서 원데이 레슨을 받기도 했는데, 자주 축가를 부른다는 보컬 쌤이 몇 가지 중요한 축가 팁을 알려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축가를 부를 때는 웃으며 박자에 맞춰 어깨를 양쪽으로 흔들기(진지한 표정으로 부르니까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축가 부르기 전에 꼭 물 한 모음 마시기(목이 건조하면 삑사리가 난다) 등이었다.


엽이가 가장 즐거워했을 때는 결혼식의 배경음악을 고를 때였다. 70-80년대 펑키한 팝송을 좋아하는 그는 곡을 고르고, 축사로 사람들을 웃길 생각에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처럼 신나 했다. 내 ‘발가락 양말’ 스토리에 꽂힌 그는 그의 축사를 답가처럼 발가락 양말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초고를 썼다. 사회자인 친구가 “발가락 양말 내용은 좀 줄이고, 미래의 다짐에 대해 적어보면 어떨까?”하는 조언을 듣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신랑, 신부 행진 떄 준비한 댄스(?)
소소한 율동에도 박수쳐 준 하객들 최고...

결혼식 당일에는 너무 신이 났다. 그간의 고단했던 웨딩 준비가 수많은 선택과 협상을 거쳐 마침내 끝이 난다는 게 좋았다. 게다가 준비한 축사와 축가, 뚝딱이는 춤까지 준비한 대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을 설렘이 압도했다. 엽이가 떨리지 말라고 준 약 기운 때문인지, 평소에는 떨릴 때면 목소리가 염소처럼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떨지도 않고, 또박또박 준비한 축사를 낭독하고, 밤마다 연습한 노래를 마칠 수 있었다.

결혼식 최초 신부 먼저 입장(?), 뚝딱이는 엽이와 나

어릴 적에는 결혼식이 마냥 허례허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준비해 보니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과, 고마운 이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으로 인생을 함께할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인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늘 장난기 넘치는 그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 그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적어 내려 간 축사에는 내가 모르는 진지한 모습과 그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이걸로 우리의 관계 또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글, 사진 브런치 작가 이긍정



결혼식 풀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어요

https://youtu.be/_TnMCJk_D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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