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라는 세계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by 이긍정
Photo by Unplash @Roberto Sorin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8월 초 무렵이었다. 주말 내 몸살처럼 아팠고, 생리를 안 한지 이 주가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주말 점심에 친정에 들러 가족들과 모처럼 소고기를 구워 먹는데 이상하게 고기가 역하게 느껴졌다. 다들 맛있다고 먹는데 혼자 세 절음을 집어먹고는 속이 안 좋다며 드러누웠다. 엄마가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하고 묻는데 “에이~ 설마”하고 웃어넘겼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집 근처 내과를 찾았다. 생리를 안 한지 2주쯤 되었다고 언급하니, 우선 부인과를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 후에 약을 복용하라며 해열제를 처방해 주었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으면서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몇 달 전에도 임신테스트기를 한 적이 있었더랬다. 그때는 회사를 다니던 중이었고, 올해 안에 임신한다면 올해 말까지만 회사를 다니고,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조급한 마음에 입덧 증상이 있던 날부터 매일 새벽 5시쯤 깨 얼리 임신테스트기로 확인을 했다. 임신이면 두 줄이라는데, 줄곧 한 줄만 선명했다. 임신 극초기 증상에 대해 수십 번 검색해 보고, 내 증상과 비슷하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신나게 이야기했지만, 얼마 뒤 민망하게도 생리를 시작했다.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임신이 될 거라는 친구의 말이 와닿았다.


photo by Unplash @Laurynas Me

그게 결혼 후 두 번째 임신 시도였다. 주변 친구들이 난임센터에 다니는 걸 보면서 ‘역시 임신은 쉽지 않은 거구나’ 생각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구나. 게다가 나는 정신과 약도 복용 중이었다. 조급한 나는 매번 갈 때마다 여쭤보았다. “언제쯤 단약 할 수 있나요?" 내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을 한 번으로 줄이고, 그러다 3알씩 먹는 약을 하나씩 줄여가는 거예요”라고 했다. 결국 장기적으로 일 년은 복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 정신과 병명은 적응 장애와 불안 장애였는데, 이것도 금세 나아지지는 않는구나. 남편 하고는 일 년쯤 뒤에나 아기를 갖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아이를 갖기 한 달 전쯤 먹고 있던 정신과 약의 용량을 증량했었는데… 걱정스러웠다. 심지어 임신한 시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신고 후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어하던 때였다. 때때로 출퇴근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씩 들었을 무렵이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있었을 때 배 속에 아기가 찾아왔다.


임신테스트기의 세 줄을 확인하고서(요즘은 세 줄짜리도 나온다)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다음날 산부인과를 찾았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양성이 떠서 왔다고 했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초음파를 볼 예정이라며, 의자에 치마를 겉어 올리고 앉으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오늘 뭐 보는 거예요?”하고 물으니 간호선생님은 “초음파 보러 오신 거 아니에요? 임신테스트기 양성이면 초음파 보는 거죠”하고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대답하셨다. 그리고선 바로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해 주었다. 초음파를 보는데 내 자궁 속 작은 구멍이 보였고, 그 안에서 새싹 하나가 피어오른 모양이 보였다. 아기 심장 소리까지 들려주시는데, 두 눈이 동그래졌다. 준비 없이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