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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r 14. 2021

통계 자리 잡는 KBO, 낭만 시대 그리워하는 MLB

과한 수비 시프트는 과연 옳은가?

  KBO리그에 세이버메트릭스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구단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수준을 넘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 MLB는 시프트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옛 야구로의 회귀를 꿈꾸는 모양새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연습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 야수진이 선보인 수비 시프트.

   지난 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 간의 연습 경기에서, 한화는 6-0으로 완승을 거뒀다.  평범한 연습경기일 뿐이었다. 시범경기조차도 정규시즌과의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판국에, 연습경기에서의 승리는 그보다도  못한 가치를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KBO리그 팬들은 이날 한화의 승리에 열광했다. 그야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현란한 수비 시프트를 선보이며 상대 타선을 꽁꽁 묶은 끝에 거둔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좌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3루수 노시환은 유격수 자리로 이동하고 유격수 하주석이 2루 베이스 옆으로 이동했다. 우타자가 나오면 반대로  1루수가 1-2루간에 서고 정은원이 유격수 쪽으로 이동했다. 평소대로였다면 내야를 갈랐을 타구가 야수의 글러브 앞으로 굴러가며  아웃 카운트가 늘어났다. 이정후를 제외한 모든 키움 타자가 시프트를 공략하지 못했고, 한화의 타자들은 착실히 점수를 뽑아 승리를  거뒀다.

  수베로 감독은 이날 경기의 승리에 대해 "우리가 가진 데이터를 통해 상대가 우리의 시프트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라며, "이제 우리 팀이 좋아지려는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1위 NC에 38.5게임 차로  뒤진 꼴등에 머물렀던 한화가 이러한 데이터 야구로써 좋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프로야구단 하나의 성적이 좋아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KBO리그는 202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데이터 야구가 '뉴노멀'이 되려 하고 있다. 2010년대의 MLB와 같은 길을  걸어가려 하고 있다.




● KBO, 데이터 야구 완전히 자리잡다


   세이버메트릭스 KBO리그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물론 각 구단에서 약 5~6년 전부터  통계수치 활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맞다. NC 다이노스는 구단을 창단할 당시부터 세이버메트릭스 전문가를 영입했다.  2016년 겨울 박석민을 4년 총액 96억 원에 영입할 당시 "WAR 등 분석 결과, 국내 야수 중 최정상급 성적을 꾸준히  냈다"라고 이야기하며, 데이터 활용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몰 마켓 팀으로서 한국 프로야구계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 키움 히어로즈도 마찬가지. 지금은 옥살이 중인 이장석 전 대표이사부터 웬만한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자로 알려져 있으며, 2015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함으로써 세이버메트릭스 활용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2018년경 KBO리그 최초로 트랙맨(TrackMan)을 정식 도입하며 데이터 야구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등의 구단들도 2010년대 중반부터 전략분석팀이나 스카우터팀이 세이버메트릭스를 학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구단 차원에서 통계 야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현장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통계 자료 활용보다는 자신의  직감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하는 감독들도 많았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데이터 야구에 관심을 가졌던 NC와 넥센은 아이러니하게도  '올드 스쿨' 스타일의 감독과 코치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한현희, 조상우, 임창민 등의 투수들이 혹사 끝에 수술대 위로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각 구단에서 앞다투어 도입한 트랙맨, 랩소드 등의 트래킹 데이터 시스템은 현장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코칭 스태프들은 구장에 출근하자마자 데이터 공부를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를 곧바로 실전에  활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세이버메트릭스를 비롯한 통계 데이터가  본격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오늘날에 와서이다. 지난 시즌 창단 이래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NC의  우승 비결에는 '데이터 활용'이 있었다. 2018년 10월 '구시대식 야구'의 대표 주자였던 김경문 감독이 물러난 뒤, 데이터  활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동욱 감독을 선임했다. 한편 비선수 출신 통계 전문가들이 모인 데이터 팀과 선수 출신이 모인 전력분석팀을 통합했다. 이로써 NC는 세이버메트릭스를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지난 시즌 공격적인 수비 시프트를 구사할 수 있었다.

   한화는 2021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데이터 야구를 이끌고 있다. 그간 도입했던 최신 장비를 통해 축적했던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 수비 시프트를 펼치고 있다. 출루율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적극 강조 중이다. 스포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볼넷 없이 안타만 서른 개인 타자보다는 안타가 없더라도 볼넷이 마흔 개인 타자를 기용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올  시즌 개막 전에 영입한 조니 워싱턴 타격 코치 또한 출루율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상황. 최원호 2군 감독은 국제 학술지에  '야구 오버핸드 투구동작에 대한 운동 역학적 분석'과 '시각차 운동훈련에 따른 대학 야구 투수들의 근 활성도 증가'라는 논문을  실었다. 1군 사령탑이 원하는 스타일로 2군을 운영할 수 있는 인재다.

   롯데 자이언츠는 2019년 말 성민규 前 시카고 컵스 스카우터가 단장으로 선임된 이후 인프라 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타자의 스윙 스피드, 각도 등을 세부적으로 분석해주는 '블라스트모션',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 피칭머신 '핵어택', 신체 역학  데이터를 수집한 뒤 선수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드라이브라인' 등을 도입했다. 최신 장비들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한 뒤 효율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이다. 한화와 마찬가지로 출루율 또한 강조하고 있다. 성민규 단장이 부임한 뒤 사직야구장 전광판에는 타자 이름 옆에 아예 타율 대신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가 표시된다. 퓨처스리그 타자들에게는 경기 고과에 OPS를 반영하겠다고 공고했다.

  키움은 선수단이 트래킹 데이터에 친숙한 편이다. 정삼봉 전력분석원은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전력분석팀에 많이 찾아온다"며 "데이터, 특히 트래킹 데이터를 보러 온다. 지금 어떤 존을 치고 있는지, 어느 공을 어느 방향으로 많이 치는지, 어떤 강도로 타구를 생산하고 있는지 등 많은 것을 본다"고 이야기했다.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정후, 공의 무브먼트를 강점으로 갖고 있는 양현과 김재웅 등이 전력분석팀 단골 손님이다. 

   물론 최신 세이버메트릭스 자료를 찾아보는 학구파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1년 중 단 한 달만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휴식 기간조차  없는 선수들에게 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찾아보고 수비 시프트를 시도하며 출루율에 신경 쓴다. 지금  당장 야구팬들에게는 큰 감흥이 없을지라도, KBO리그에 있어서는 커다란 한 걸음이다.



● 그런데 이건 '야구'가 맞을까?

남발하는 수비 시프트를 보며 "이건 야구가 아니야"라는 명언을 남긴 2010년대 MLB의 간판 타자, 크리스 데이비스 (이미지 출처 : 게티 이미지 NA)

   이처럼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데이터 야구가 정착하고 있는 KBO리그이지만, 막상 MLB에서는 데이터 야구의  '뉴노멀'화에 피로해하는 눈치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남발하는 수비 시프트와 이에 무너진 강타자들, 그리고 이를 파훼하기 위해  자리 잡은 '뜬공&눈야구'가 야구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2012시즌부터 잠재력이 폭발하며 4년 동안에만 159홈런을 쏘아 올렸던 크리스 데이비스는, 2015년에 47홈런을 쳐내며 리그  통합 홈런왕의 자리에 오른 직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6시즌에는 마흔 개에 가까운 홈런을 쳐내면서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했지만, 2할 6푼대였던 타율은 2할 초반대로 주저앉았고 장타율도 1할 넘게 떨어졌다. 이듬해에는 12개 줄어든 26개, 그다음  해에는 10개 덜 친 16개, 2019시즌에는 더 적어진 12개의 홈런을 쳐냈다. 그리고 결국 작년에는 단 하나의 홈런도 쳐내지  못했다. 믹리그를 대표했던 홈런왕이 리그 최악의 타자로 전락하는 데에는 단 5년이면 충분했다.

  크리스 데이비스가 드라마틱한 추락을 겪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수비 시프트'일  것이다. 47홈런을 쳐냈던 2015년, 크리스 데이비스는 네 번 중 세번꼴로 시프트가 걸려 있는 상태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반면  2016시즌에는 열 번 배터박스에 들어가면 아홉 번은 시프트가 걸려 있었다(같은 해 메이저리그의 좌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시프트가 걸려 있을 확률은 30%였다).

  타구를 즐겨 날리는 코스에 늘 야수들이 포진해 있다. 아무리 잘 잡아당긴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도 시프트 위치를 잡고 있던 야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간다. 크리스 데이비스로서는 커다란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시프트로 인해 장타 하나를 도둑맞은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한탄했다. "이건 야구가 아니야(This isn't baseball to me)"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MLB 최고의 스타성을 지닌 브라이스 하퍼도 한때 집요한 시프트로 부진한 바 있다. (사진 출처 : ZIMBIO)

   위에서도 언급했든, 2016시즌 ML 전체 좌타자들은 열 번 중 세 번꼴로 시프트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야만 했다.  과거 리그 최고의 강타자를 상대로만 발동되었던 시프트가, 데이터 야구가 완전히 정립된 오늘날날에 와서는 모든 타자를 공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비어 있는 코스로 공을 날릴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타자는 자신의 강점을 잃고 밸런스를 잃는다.

   결국 타자가 극심한 시프트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은 한정되어 있다. 야수들의 수비망을 뚫을 정도로 공을 높이 띄워 올리거나(뜬공  혁명), 아니면 보다 많은 볼넷을 얻어 나가거나. 세계 최고의 통계 전문가가 포진한 MLB는 그렇게 발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플레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팬들은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맞춘 공이 그라운드 위를 구르는 상황에서의  드라마를 원한다. 타자가 볼넷을 얻어내 걸어 나가거나, 삼진을 당하거나, 홈런을 쳐내거나 셋 중 하나인 한정된 경우의 수를 원하지  않는다. 마치 투고타저 리그에서 유일하게 1 이상의 OPS를 기록한 16홈런 출루왕보다, 홀로 30홈런 이상을 쳐낸 2할 9푼  타율의 홈런왕을 더욱 기억하는 것처럼.

  이를 우려한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도 수비 시프트를 제한하려 하는 중이다.  ESPN에 따르면 마이너리그는 오는 2021시즌부터 내야수 4명이 반드시 외야 잔디로 나갈 수 없도록 하며, 2루 베이스를  기준으로 야수가 반대편에 가서 수비를 하는 것 또한 금지한다. 이전에도 수비 시프트에 대해 여러 번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바  있는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이번 개정에 대해 "인플레이 타구를 늘리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KBO리그가 본격적인 데이터 야구에  들어서려 하는 순간, MLB는 옛 야구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 그럼에도 KBO리그는 진보해야만 한다.

흔히들 2000년대 후반 KBO리그를 '낭만 야구'의 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 시절 야구 수준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더쿠)

   그렇다면 KBO리그가 이대로 2010년대 MLB의 길을 걸어간다고 했을 때,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가 고착화되고 잇따라 출루  야구와 플라이볼 혁명이 발생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 프로야구계는 흥행 부진에 시달리게 될까? KBO리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수비  시프트를 규제하는 방안을 생각해야만 할까? 팬들이 앞으로 KBO리그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극심한 호불호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벌써부터 시프트를 규제할 생각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결국 이 또한 구시대 야구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야구가 진보해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 '개꿀잼 시절 KBO리그' 같은  제목으로 올라오는 사진이 있다. 2000년대 후반 8개 구단 프로야구 감독(좌측 상단부터 김성근, 김경문, 제리 로이스터,  선동열, 김인식, 조범현, 김시진, 김재박)들의 사진을 모아놓은 이미지다. 대부분 그 시절에는 경기 전 인터뷰만 봐도 빵 터졌다며  웃고 넘어가는 반응을 보이지만, 진지하게 그때의 야구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이버메트릭스, 데이터 따위는  일절 고려되지 않았던 KBO리그로 회귀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 야구의 명과 암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수많은 선수들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선진화된 야구를 꿈꿔왔고, 그랬기에 오늘날의  KBO리그까지 오게 된 것이니까.


  희생 없는 역사의 진보는 없다. KBO리그 또한 그럴 것이다. 앞으로 더욱 변화할 한국 프로야구계를, 그럼으로써 늘어날 프로야구 관련 일자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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