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 오주원, 김태훈 중에서
키움 히어로즈 부동의 마무리 투수 조상우가 좌측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복귀까지 약 12주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2월 10일부터 1군 복귀까지 12주가 걸린다고 가정해도 5월 4일에나 돌아올 수 있다. 실전 감각을 키우는 기간까지 합하면 개막 2개월 뒤에나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조상우와 비슷한 구속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안우진은 구단 차원에서 선발투수로 밀어줄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원기 감독은 "양현과 오주원, 김태훈이 (마무리) 후보군에 있다"고 언급했다.
아쉽게도 김태훈과 양현, 그리고 오주원 세 명 모두 조상우의 빈자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들은 고우석이나 오승환 같은 '강속구 투수'도, 정우람처럼 정밀한 제구력을 가진 투수도 아니다. 그러니 본 포스팅에서는 한 달 전 작성했던 글을 통해 찾아낸 KBO리그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조건을 세 투수와 비교함으로써, 누가 더 마무리의 자리에 어울리는지를 찾아보도록 한다.
당시 찾아낸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143km/h 이상의 평균 구속. 둘째, 8 이상의 K/9(Strikeouts per 9 innings pitched, 9이닝당 삼진 비율). 셋째, 확실한 제2구종.
2014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7년간 1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던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구속을 구한 결과, 유난히 강속구 클로저가 많았던 2020시즌을 제외하면 매년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143km/h 대에 머물렀다. 지금은 신세계로 이적한 김상수가 140km/h 초반대 구속으로도 클로저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줬던 대표 사례였다. 2017시즌과 2018시즌에 도합 33세이브를 챙겼던 김상수의 당시 평균 구속은 각각 141.1km/h, 142.5km/h였다. NC 다이노스의 임창민 또한 선수 생활 통산 평균 구속이 142km/h 대에 머무는 투수이지만 통산 94세이브를 올렸다.
또한 지난 7년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투수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높은 탈삼진율이었다. 함덕주, 정우람, 임창민, 김상수 등 143km/h 이하의 평균 구종을 가졌음에도 마무리로 롱런한 투수들의 K/9는 9에 근접하거나 이보다 더 높았다. 2014시즌의 김승회(K/9 6.43)이나 2019시즌의 오주원(K/9 6.79), 이형범(K/9 4.57) 같은 예외 사례의 경우 클로저 보직에서 2시즌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확실한 제2구종은 지난 2년간의 조상우만 봐도 필요함을 알 수 있다. 2019시즌의 조상우는 리그 최고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구가 되는 변화구가 없어 종종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의 조상우는 2019년보다 평균 구속이 낮아졌음에도 슬라이더의 완성도가 높아졌기에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다.
그럼 이제 홍원기 감독이 마무리 후보로 언급한 세 명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지난 3년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해결사로 맹활약했던 김태훈은, 2020시즌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홀드(10개)를 거두며 필승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홍원기 감독이 김태훈에 대해 '올 시즌 선발 알바는 없다'라고 공언했을 정도. 본인 또한 "두 자릿수 홀드는 물론이고 15~20개까지도 하고 싶다"라며 셋업맨 자리에 대한 욕심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팀의 사정으로 마무리 후보 물망에 오르게 되었고, 작년까지 보여준 모습만 봤을 때는 임시 마무리 자지를 차지할 가능성 또한 높아 보인다.
평균 구속 143km/h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다. 2019시즌부터 2년간 평균 구속 144km/h 대의 공을 던졌다. 이 빠른 공이 평범한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투심이라는 점 또한 메리트다. 제2구종으로 구사하는 포크볼이 위력적이다. 한 구종을 100개 던졌다고 가정했을 때 해당 구종의 가치를 보여주는 PV/100(Pitch Value per 100 pitch)이 2 이상일 시 해당 구종을 리그 최상급으로 볼 수 있는데, 김태훈의 포심은 2.49의 PV/100을 기록했다. 피안타율만 놓고 봐도 1할 5푼 5리로 매우 낮았다.
땅볼을 유도하는 투수이기에 K/9가 매우 낮다는 점은 옥에 티다. 투심 패스트볼의 피안타율 또한 3할 후반대로 너무 높다. 운이 없었냐고 하기에는 김태훈의 지난해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 인플레이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이 커리어 평균과 비슷했다는 점에서 봤을 때 그것도 아닌 듯하다. 땅볼 유도가 강점인 투수이기에 K/9도 너무 낮다. 하지만 김태훈이 마무리로 활약할 기간은 한두 달 정도라는 점, 본인이 더욱 많은 땅볼을 양산하기 위해 슬라이더도 연마 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걸 수 있다.
양현 또한 김태훈처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해 불을 껐던 전천후 투수다. 지난 시즌에 마무리로 등판해 2세이브를 챙기기도 했다는 점에서 김태훈보다 더 궂은 일을 도맡았다고 볼 수도 있다. 2020시즌 김태훈보다 많은 경기(58경기, 김태훈 53경기)에 등판해 비슷한 이닝(60이닝, 김태훈 64이닝)을 던졌음에도 경쟁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8승 3패 11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3.30. 그의 활약상을 지켜봤던 팬들이라면 '마무리 자리를 맡겨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120km/h 후반대의 싱킹 패스트볼을 구사한다. 기준치인 143km/h에 많이 못 미치지만 언더핸드 투수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제2구종으로 구사하는 커브의 pv/100이 1.94이다. 피안타율 또한 1할 9푼 6리에 불과했다. 국가대표 잠수함 투수였던 정대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언더핸드 투수라는 점을 고려해도 커브를 제외하면 한두 달 마무리를 맡기에 모든 점이 불안해 보인다. 정대현이 SK 와이번스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던 2000년대 후반, 그의 K/9는 7 이상이었다. 양현의 작년 K/9는 4.95이다. 사실상 삼진으로 타자를 잡아내지 못하는 수준이다. 싱킹 패스트볼의 생소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 또한 불안 요소다. 2019시즌 2할 4푼에 불과했던 직구 피안타율이 2020시즌 3할 2푼으로 상승했다. 본인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커브의 강점을 보강하기 위해 연마 중이다. 아직 시즌 개막까지는 많이 남은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 마무리 투수 후보인 오주원은 2020시즌 25경기에 등판해 18.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3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5.40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올렸다. 퓨처스리그 성적이 좋았던 게 아니냐고 하기에는 그렇지도 않았다(2020시즌 2군 10경기 8이닝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7.88). 작년 성적을 놓고 마무리로서 적합한지에 대해 논하면 이야기조차 시작할 수 없다. 그러니 홍원기 감독이 봤을 때 2019시즌 중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해보자.
2019시즌 136km/h의 평균 구속을 기록했다. 탈삼진율은 6.79로 김태훈과 양현보다는 높았지만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패스트볼 다음으로 많이 구사했던 구종은 슬라이더였다. 4.46의 PV/100을 기록했으며, 피안타율도 1할 9푼 2리에 불과했다. 이것만으로도 재작년 오주원의 대활약에 대해 모두 설명할 수 없다.
2019시즌의 오주원은 스트라이크존 구석진 곳을 공략할 줄 아는 투수였다. 우타자에게는 대응하기 까다로운 몸쪽 깊숙한 코스로, 좌타자에게는 잘 쳐도 장타가 나오기 어려운 바깥쪽 낮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시즌이 지날수록 오주원이 제구력이 무뎌지고 타자들도 작정하고 치는 전략으로 나서기 전까지는 이 방법이 유효했다.
문제는 지난 시즌 스트라이크존이 2019년과 달라졌다는 것. 오주원보다는 좋은 구위를 가졌지만 제구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임창민은, "최근 스트라이크존 좌우가 좁아졌다"라며 "타자가 멀다고 느끼는 공이 그냥 볼이 되기도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정면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존이라는 것이다. 힘 싸움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오주원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19년의 폼을 되찾았다고 해도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졌다'는 문제점이 존재하며, 작년의 폼과 비슷하다고 할 시에는 마무리로 논하기 어렵다.
홍원기 감독이 거론한 마무리 후보 3인 모두 아직은 '클로저'라는 자리를 맡기에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 모두 제각기 다른 확실한 무기를 갖고 있기에, 올시즌 어떠한 깜짝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고도 기대할 수 있다.
야구공은 둥글기에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장원삼 트레이드의 들러리로 여겨졌던 김상수가 셋업맨으로 성장해 FA 계약에 성공할 줄, 조상우가 이탈한 위기의 영웅군단을 '황태자' 오주원이 견인할 줄 알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즌 전부터 찾아온 악재에도 팬들은 기대한다. 히어로즈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 난세의 영웅의 등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