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의 수호신 조상우가 2021시즌 종료 후 입대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나이로 스물여덟이 된 조상우는 현행 병역법상 더 이상 입영을 연기할 수 없다. 조상우는 압도적인 성적으로써 야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병역특례를 노릴 수 있는 선수이지만, 유일한 기회인 도쿄 올림픽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군입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키움 구단 관계자 역시 조상우의 군 문제에 대해 "이번 시즌 종료 후 군에 간다"라고 설명한 상황.
문제는 조상우가 떠난 뒤에 누가 마무리투수 보직을 이어받느냐는 것이다. 키움은 2015시즌을 마지막으로 손승락이 롯데에 이적한 뒤, 조상우를 제외하면 꾸준히 마무리로 활약한 선수가 없었다. 손승락이 떠난 직후 새로운 클로저로 낙점된 김세현은 2016년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듬해 부진하며 코치진의 신뢰를 잃고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2017시즌 중반부터 2018년까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김상수는 안정감이 부족했다. 특히 2018시즌에는 마무리 투수라고 믿기 어려운 5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상우는 18시즌부터 꾸준히 주전 마무리로 낙점되었으나, 첫 2년 동안에는 자신의 보직을 지키지 못했다. 첫해에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시즌 초 시즌 아웃 되었다. 2019시즌에는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임시 마무리' 오주원이 대활약하며 마무리 자리에서 밀려났다.
몇 년간 성장통을 겪으며 무럭무럭 자란 조상우는 지난해 KBO리그 최고의 클로저로 거듭났다. 150km/h 중반대까지 찍히던 강속구의 위력은 다소 줄었으나, 슬라이더의 영점이 잡히니 한반도를 평정하기에는 충분했다. 33개의 세이브를 올리며 구원왕에 오름은 물론,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 중 유일하게 2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범위를 10세이브 이상으로 넓혀도 2점대 초반 방어율의 마무리 투수는 조상우가 유일하다.
조상우는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불펜 투수다. 그렇기에 그의 예정된 이탈은 각오했음에도 뼈아픈 충격을 불러올 것이다. 과연 그가 떠난 9회초 고척 스카이돔의 마운드에 누가 올라서게 될까? 본 포스팅에서는 마무리 투수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하나하나 살펴봄으로써, 어떤 투수가 차세대 클로저에 적합한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마무리 투수에게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요소는 경기의 최후반을 깔끔히 종료시킬 수 있는 압도적인 구위의 패스트볼이다. 이전 8회까지는 타자들이 감히 경험해보지 못했던, 불방망이를 조용히 잠재울 강속구로써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 3개가 채워지는 것을 볼 때, 팬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돌직구'라 불리는 묵직한 포심으로 KBO리그를 평정했던 오승환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키움에도 전성기 오승환급 돌직구를 가진 투수가 있다면, 긴 이야기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이 차세대 클로저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히어로즈에는 그러한 투수가 없다. 그나마 오승환과 비견됐던 투수가 조상우였으나 2021년부터 상무 피닉스의 클로저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러니 '오승환에 근접한 선수'가 아닌, 'KBO리그의 평균적인 마무리 투수에 근접한 선수'를 찾아보기로 하자.
다음은 2019시즌 빅리그 전체 투수들의 평균 구속과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구속, 그리고 KBO리그 전체 투수들의 평균 구속과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다. 각 리그의 평균 구속은 중앙일보 기사에서 발췌하였으며, 마무리 투수의 평균 구속은 2019시즌 10세이브 이상 기록한 투수들(MLB 37인, KBO리그 12인)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찾아 계산하였다. MLB는 마무리 투수의 평균 구속이 리그 전체 평균보다 2.4km/h 높았다. KBO리그는 마무리 투수의 평균 구속이 리그 전체보다 1.4km/h 높았다.
2014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7년간 1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구속을 구해보았다. 조상우, 김원중, 고우석 등 파이어볼러 마무리 투수가 즐비했던 2020시즌을 제외하면 매년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143km대에 머물렀다.
이는 KBO리그에서 굳이 150km/h대 강속구를 뻥뻥 뿌리지 않더라도 마무리 투수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17년과 2018년에 임시 마무리로 활약하며 도합 33세이브를 올렸던 김상수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0km/h 초반대에 그쳤다. 물론 당시의 김상수는 아무리 팬심을 가미해도 'A급 클로저'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불안한 모습을 종종 보였음에도 일단 마무리 보직에서 낙마하지 않고 시즌을 완주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143km/h도 나오지 않는 선수는 마무리 투수로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14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7년간의 KBO리그 세이브 기록을 살펴보면,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143km/h를 넘기지 못했음에도 장기간 클로저로 활약했던 선수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통산 94세이브를 올린 임창민은 우완 오버핸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구속이 142km/h대에 머무르는 투수이다. KBO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 7위의 정우람은 좌완 투수임을 감안해도 평균 구속이 130km/h 후반대에서 140km/h초반대에 그친다. 3년째 두산 베어스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 중인 함덕주 또한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정우람과 비슷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탈삼진율이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지난 7년간 평균 구속이 143km/h 이하였던 마무리 투수들의 K/9(Strikeouts per 9 innings pitched, 9이닝당 삼진 비율) 평균을 내보자, 평균 K/9가 8.76에 육박했다. 이는 느린 구속의 마무리 투수들이 매 이닝당 거의 하나의 삼진을 잡아냈음을 의미한다.
마무리 투수에게 '맞춰 잡는' 전략은 다른 보직의 수들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 '공을 굴리면 무언가가 일어난다'. 이는 프로야구에서도 유효한 말이다. 9회에 나오는 실책, 장타의 충격은 타 이닝에 비해 더욱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마무리 투수에게는 탈삼진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압도적인 구속의 강속구'를 갖지 않은 마무리 투수들도 '탈삼진 능력'만큼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2014시즌의 김승회(20세이브, K/9 6.43), 2019시즌의 오주원(18세이브, K/9 6.79), 이형범(19세이브, K/9 4.57) 같은 예외 케이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마무리 투수로서 2시즌 이상 롱런하지 못했다.
2019시즌의 조상우는 압도적인 강속구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세컨 피치의 부재로 종종 불안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포심 패스트볼마저 제구가 되지 않는 날, 강속구에 대응 가능한 타자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포심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날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조상우보다 10km/h가량 느린 평균 구속의 패스트볼을 보유한 임창민에게는, 슬라이더라는 확실한 세컨 피치가 있었다. 그가 마무리 투수로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애슬릿미디어> 신동윤 씨의 포스팅에 따르면 PV/100(Pitch Value per 100 pitch, 100구당 구종 가치)은 패스트볼의 경우 -1.5에서 +1.5 정도로 분포되며 +2.0이 넘으면 리그 최상급의 구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본 포스팅에서는 '리그를 평정할' 마무리 투수가 아닌 '리그 평균에 근접한' 마무리 투수를 찾는 것이므로, 세컨피치의 PV/100이 1을 넘을 경우 확실한 제2 구종을 가졌다고 보기로 한다.
이제 2020시즌 20이닝 이상을 소화했던 키움 불펜 투수들을, 위에서 제시한 조건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완벽한 '차세대 클로저' 후보는 안우진이었다. 지난해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전업하며 평균 구속이 150km/h대를 돌파했고, 변화구의 100구당 구종 가치 또한 +2.0을 까마득히 초월했다. K/9 또한 매우 이상적인 수치였다.
안우진 다음으로 클로저의 기준에 부합하는 투수는 김태훈과 이영준이었다. 두 투수 모두 143km/h대의 패스트볼을 보유했고, 각각 스플리터와 슬라이더라는 확실한 세컨 피치를 보유했다. 다만 김태훈의 경우 너무 낮은 탈삼진율이 옥에 티였다. 2019 한국시리즈에서 맞춰 잡는 마무리 투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줬던 오주원(6.79)보다 낮았다.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김상수는 구속과 삼진 비율 측면에서 마무리를 맡기에 적합한 수치였다. 다만 지난해에는 지난 4년간 꾸준히 양수의 구종가치를 기록한 스플리터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변수는 한현희의 2021시즌 종료 뒤 이적 여부다. 한현희가 FA로 이적할 시 키움의 국내 선발 자원은 최원태, 이승호, 조영건, 그리고 김재웅 정도가 남게 된다. 최원태와 이승호는 몇 시즌 째 풀타임 선발로 활약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조영건과 김재웅은 가능성을 보여준 정도에만 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우진은 한현희의 빈 자리를 메울 선발 유망주 0순위이기도 하다. 안우진이 선발로 이동할 경우, 2022년의 셋업맨과 마무리 보직은 이영준과 김태훈이 맡게 될 수도 있다.
물론 2021시즌도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내후년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1년 사이에 최원태와 이승호가 스탭업해 풀타임 선발로 자리잡을 수도 있고, 김정인이 세컨 피치를 장착에서 1군에서 일을 낼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우진 외에도 김태훈 또한 훌륭한 5선발 후보이다. 그러니 이 글은 재미로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