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가 2021시즌을 함께할 외국인 타자로 데이비드 프레이타스를 영입했다. 2018년부터 타격에 눈을 떠 트리플A에서 .349 .428 .529라는 아름다운 슬래시라인을 기록했으며, 2019시즌에는 3할 8푼 1리의 고타율로 마이너리그를 폭격하며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의 '히든카드'로 여겨지기도 했다. 비록 빅리그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만을 보여줬으나, 이후에도 줄곧 구단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구단에서 그에게 적잖은 기대를 걸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병호와 박동원, 이지영 정도를 제외하면 좌타자 자원만 넘쳐나는 키움 구단 사정상 필요한 '우타 빅뱃'이라는 점, 2018시즌 중순부터 2019시즌까지 활약했던 제리 샌즈와 마찬가지로 선구안이 준수하다는 점 등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을 다 제쳐놓고 봐도, 에디슨 러셀에 대한 소개를 '빅리그 올스타 유격수'라는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듯, 프레이타스의 타격 능력 또한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트리플A 타격왕'. 타격적인 면에서만 봤을 때는 오랜 시간을 들여 영입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만약 조금이라도 조바심을 냈다면, 영입 후보로 거론되었던 라이언 코트나 다니엘 팔카 같은 선수가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다만 프레이타스의 포지션이 포수, 1루수라는 점에서는 아쉽다는 이야기 또한 나오고 있다. 2020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키움 구단이 가장 필요로 했던 외국인 선수는 3루, 혹은 외야를 소화할 수 있는 타자였다. 과거 주전 3루수, 우익수였던 김민성과 제리 샌즈가 팀을 떠난 뒤, 그들만큼의 성적을 올리며 공백을 메운 선수가 전무했다.
1루 포지션은 포화 상태다. 지난 시즌 커리어로우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부동의 주전인 박병호, 차세대 주전 1루수로 성장 중인 김웅빈이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프레이타스가 박병호와 번갈아 가며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될 예정인 이상, 작년까지와 같이 서건창을 지명타자로 기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러니 '로스터 유동성 측면에서 최악의 영입'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도 비슷한 영입이 있었다. 트리플A를 폭격한 절륜한 타격 능력을 보유했으나, 수비 측면에서는 팀이 필요로 했던 코너 외야수 영입이 아니었던 데다가 이미 리그 최고의 주전 1루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칫 애매해질 수 있었던 선수. 그러니까 프레이타스와 마찬가지로 타격만 보고 데려온 선수. 바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오기 전, 그러니까 2018시즌 두산 베어스의 각 포지션별 뎁스를 먼저 살펴보자. 당시 두산은 2013시즌부터 줄곧 주전 우익수로 활약해왔던 민병헌이 FA 자격을 얻고 4년 80억 원에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며, 외야 한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정진호, 국해성, 김인태, 이우성 등의 외야 유망주 자원이 풍족하며 박건우를 우익수로 돌리고 조수행 등을 육성한다는 선택지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특정 포지션에 세금을 내고 선수를 육성하기에는 우승이 너무 눈앞에 있었던 두산이었다. 두산은 '민병헌을 보낸 김에 외야 자원을 육성한다'라는 선택지 대신 '주전급 코너 외야수 자원을 영입해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1루수와 지명타자로만 경기에 출장할 수 있는 닉 에반스를 방출하는 대신에 코너 외야를 볼 수 있는 외국인 타자를 새로 영입함으로써 이를 수행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1루에는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도 30홈런 가까이 쳐낼 수 있는 오재일이 있고, 지명타자 자리는 다른 주전들에게 체력 안배 차원에서 부여하거나 하는 식으로 사용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새로 데려온 외국인 타자가 지미 파레디스라는 점이었다. 21경기에 출장해 71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단 아홉 개의 안타를 쳐냈다. 출루율도 장타율도 아닌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가 0.5를 넘지 못했다. 수비 또한 '우익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 수준이었다. 없느니만도 못한 성적만을 남기고는 6월 1일에 방출되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한 스캇 반 슬라이크는 '나름' 화려한 경력을 가진 빅리거였다. 못해도 다린 러프의 마이너 버전은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파레디스만큼 못했다. 12경기에 출장해 44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다섯 개의 안타만을 쳐냈다. 야구도 못 하는데 허리 통증까지 호소하며 드러누웠다. 결국 영입한 지 3개월도 안돼, 정규시즌이 종료되기도 전에 퇴출되었다.
그래도 워낙 전력이 좋았던 덕분에, 두산은 2위와 14.5게임 차이로 정규시즌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기존 선수들의 부진에 외국인 타자의 부재까지 겹치며 SK 와이번스에게 역대급 업셋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렇게 뼈아픈 상처를 남기고 2018시즌이 끝났다. 이번에는 포지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타격 능력'만을 고려해 페르난데스를 영입했다.
사실상 1루와 지명타자로만 출장할 선수였다. 지난 시즌 지명타자로 뛰며 26홈런을 쳐냈던 최주환과의 포지션 중복이 벌어질 것임이 자명했다. 최주환이 페르난데스에게 지명타자 자리를 양보하고 2루에 간다면, 직전 시즌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3할 타율과 15홈런을 기록한 오재원과 출장 경기 수를 안배해야만 했다. 이는 두 선수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쉽게 말해서, 당시 두산의 외국인 타자 영입은 페르난데스가 어중간한 성적을 올릴 경우 '로스터 유동성 측면에서 최악의 영입'이 될 수 있었다.
이제 2019시즌 두산 베어스 야수들의 성적을 되짚어보자. 2018시즌 말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해 괴물 같은 성적을 올렸던 정수빈은, 2019년에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지만 커리어 평균에 수렴하는 성적으로 회귀했다. 물론 부상의 여파도 컸겠지만, 그럼에도 2할 중반의 타율과 없다시피 한 장타 툴은 분명 직전 시즌 한껏 올려놓았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 했다. 최주환과 오재원 둘 다 전년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올렸다. 오재원은 1할 6푼 4리의 타율을 기록했고, '잠실 26홈런 타자' 최주환은 홈런 개수가 4개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모두 악재가 덮쳐왔음에도 불구하고, 두산 베어스는 정규시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페르난데스가 정말 잘 치는 타자였기 때문이었다. 197안타를 쳐내며 역대 외국인 타자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리그 최상위권의 wRC+(Weighted Runs Created, 조정 득점 창출력)을 기록했다. 제리 샌즈를 제외하면 그보다 타격을 잘하는 외국인 타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은 2020시즌 키움의 뎁스 차트이다. 시즌 전 진행했던 2건의 트레이드가 모두 성공하며 3루와 외야의 구멍을 어느 정도 메웠다지만, 시즌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두 포지션 모두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었다. 제리 샌즈에 버금가는 외국인 타자 영입과 함께 훌륭한 트레이드가 필요해 보였다.
키움은 두 포지션의 빈틈을 모두 메우기 위해 '슈퍼 유틸리티 플레이어' 테일러 모터를 영입했다. 수비만큼은 빅리그에서도 준수하다는 평을 받는 선수였다. 타격이 빅리그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김민성-호잉급의 타격을 기대할 수'는' 있었다. 모터는 10경기 35타수 4안타로 부진함은 물론 수비에서도 잦은 실책을 저질렀고, 워크에식 측면에서도 문제를 보여 6월을 못가 퇴출되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에디슨 러셀을 영입했다. 비록 하락세이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 올스타' 경력을 보유한 20대 중반의 내야수였다. 프로필만큼은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결코 KBO리그에 올 수준이 아닌 그가 유격수와 2루수 자리를 오가며 활약하고, 김하성이 3루 포지션에서 체력도 안배하고 핫코너 구멍 또한 메우는 그림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공수 양면에서 처참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유격수 불가 판정을 받아 2루수로 출장하면서 김혜성이 좌익수 겸업을 해야만 했고, 이는 히어로즈 구단의 정규시즌 부진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의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다.
2021시즌 키움의 뎁스 차트이다. 박준태와 허정협이 1인분 몫을 하는 수준으로 스텝 업하고 이용규를 영입하면서, 외야에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우승을 노리기에는 아쉽다. 전병우가 버티고 있는 3루는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올 시즌 또한 내야의 최약 포지션이 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키움은 핫코너를 보강하는 영입 대신에 '타격 능력'만을 고려해 프레이타스를 영입했다.
전병우는 주전 3루수로서 평균 이하의 타격 능력을 보유한 선수이다. 서건창의 2루 수비는 불안하다. 외야는 이용규에게 노쇠화가 찾아오지 않았기를, 그리고 박준태와 허정협이 최소한 작년의 모습을 유지하길 기대해야만 한다(물론 두 선수가 적잖은 타석을 소화하며 일정한 성적을 올린 만큼 극적인 추락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김웅빈은 프레이타스의 등장으로, 불안한 수비를 보여줬던 3루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불안 요소를 모두 덮어버릴 정도로, 프레이타스는 화끈한 방망이를 뽐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럴 수 있는 선수이다. 2019시즌 크리스티안 옐리치가 시즌 아웃 되었을 때,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던 타자가 프레이타스이다. 타고투저 리그인 PCL에서 뛰었다고는 해도 3할 8푼 1리의 고타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2019시즌 AAA PCL에서 3할 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단 3명밖에 없었다). 2018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올렸던 만큼 단순 플루크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선구안의 경우 커리어 내내 리그 수위권 수준이었다. 2018년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시애틀 관계자들에게 성실함과 학구적인 자세에 대해 칭찬받았다. 이로써 조지 모넬이나 마이클 초이스처럼 게으른 태도로 문제시될 불안요소도 없다.
여러 면에서, 프레이타스의 영입은 지난 시즌 중순에 영입한 엄홍 기획본부장(前 두산 스카우트 부장)의 작품으로 보인다. 물론 반슬라이크 같은 실패도 있었지만, '포지션을 고려하지 않은' 영입을 시도했을 때 에반스와 페르난데스라는 대어를 낚아 올렸던 엄홍 기획본부장이다. 그렇기에 2년 전 두산과 같은 상황에서 영입한 '타격만 보고 데려온' 프레이타스에 대해 기대를 걸어본다. 데이비드 프레이타스님, 부디 2021년 영웅군단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