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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y 16. 2021

과유불급(過猶不及), 욕심 버리자 성적 따라온 박동원

완벽한 선수가 되기 위해 미겔 카브레라와 이정후 따라했지만...

  몸에 맞는 공도 불사하겠다는 듯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선 두 다리, 단타는 꿈에도 없다는 양 광고하는 듯이 길게 쥐어  잡은 배트, 그리고 어떤 공이든 담장 너머로 날려버리겠다는 듯한 호쾌한 스윙. 타석에서의 박동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박동원은 타격에 있어서 자신만의 색깔이 매우 뚜렷한 선수다. KBO리그에서 한 손에 꼽힐 적극적인 스윙을 하며,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 있을 만큼 강한 힘으로써 타구를 장타로 만든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박동원에게 정교한 컨택 능력까지 주지  않았다. 이지영과 번갈아 가며 포수 마스크를 썼던 2019년에는 규정타석을 소화하지 못했을지언정 3할에 살짝 모자란 타율을  기록했지만, 그 1년을 제외하고 보면 매년 2할 5푼 언저리의 타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박병호나 이대호 같은 홈런 타자들을 빼고 보면 자기 힘이 결코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것 같은데, 홈런 수는 영 늘어나지를 않으니 본인도 불만이다. 몇 번이고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의 타자가 되기 위한 꿈을 꿨으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던 것일까. 매번 욕심을 내려놓은 뒤에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한 번은 알버트 푸홀스와 함께 MLB를 호령하던 강타자 미겔 카브레라를 따라 했다. 7년 연속 30홈런(2007년~2013년)을  기록했을 정도로 절륜한 파워에, 세련된 스윙까지 소유한 완벽남. 2016년에도 3할 타율에 38개의 홈런을 만들어낸  카브레라였다. 그에 반해 주전 3년 차 시즌을 맞이한 박동원은 2할 4푼 8리의 낮은 타율에 허덕였고, 그해 고졸 신인 포수  주효상은 시즌 후반부터 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경쟁자를 확실히 누르고 주전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스텝 업이  필요해보였다. 박동원은 자신의 거칠고 투박한 스윙을 버리고, 카브레의 간결하며 세련된 스윙을 장착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슬럼프가 찾아왔다. 3월부터 5월까지 33경기 동안 2할 3리의 타율과 0.497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자신의 강점인 홈런은 단 하나도 쳐내지 못했다. 부진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퓨처스리그에서는 여덟 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3할 7푼 9리의 고타율에 홈런도 두 개나 쏘아 올리는 등 '카브레라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1군에만 올라오면 바꾼 타격폼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저리거의 타격폼을 따라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홈런을 칠 수 있게 됨은 물론 타율까지 덩달하 올라갔다.  6월 2일 두산전에서 시즌 1호 홈런을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한 달 동안 3개의 홈런과 3할 1푼 1리의 타율로 활약했다.  이듬달에는 생애 첫 한 경기 멀티홈런도 터뜨렸다. 데뷔 이래 가장 높은 타율(0.270)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박동원은 "(따라 하던) 타격폼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홈런보다 안타를 많이 치자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년 동안에는 시즌 초반 출발이 좋았다. 2019시즌 시작 전 삼각 트레이드로 키움 구단에 입단한 이지영과 번갈아 출장하며  체력을 안배하니 방망이가 좀처럼 식지 않았다. 2019년에는 전반기 72경기 동안 3할 1푼 8리의 타율과 9개의 홈런을,  2020년 전반기에는 2할 8푼 8리의 타율과 1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배팅 연습장에서 몇 번 따라 해보면 체력 소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타격폼으로는 시즌 끝까지 타격감을 유지할 수 없었다. 2년 연속으로 막판 부침이 있었다.

   겨우내 공을 잘 맞추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같은 팀 후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3할 타율을 뚝딱  만들어내더니 작년에는 호리호리한 몸으로 자신보다 많은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후배, 이정후. 그는 자신과 다르게 모든 면에서  움직임이 적음에도 곧잘 장타를 만들어냈다. 자신도 이정후처럼 타격에 있어 불필요한 동작을 버리기로 했다. 두 발을 바닥에 안정적으로 고정해,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몸 전체를 돌릴 수 있는 스윙을 만들었다. "25홈런이 목표"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순조롭게 준비가 되어갔다.

  그리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4월 한 달 동안 1할 9푼 6리의 타율에 그쳤다. 4년 전 봄과 마찬가지로 홈런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편인 컨택이 더 나빠졌다(박동원 2020시즌 컨택% 71.5 → 2021년 4월 64). 자신은 이정후가 아님을 자각하며 예전의 폼으로 되돌렸다. 박동원은 5월 1일부터 금일 경기까지 보름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3할 7푼의 고타율과 4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다. 오늘은 생애 첫 연타석 홈런 기록도 세웠다.


   박동원은 키움 팬들에게 있어 강귀태 - 유선정 - 허준 - 허도환으로 이어지는 포수 잔혹사를 끊어낸 '귀인'임과 동시에, 한  단계 더 성장할 듯하면서도 그러지 못해 가슴을 두드리게끔 하는 애증의 존재이기도 하다. 본인 또한 매년 비슷한 성적에 머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다만 무엇이든 의도한 대로 이뤄내는 '야구 천재'들과는  달리 극적인 변화가 아닌 실패를 경험하고, 이에 주저하기는커녕 교훈을 찾아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박동원의 모습은 사뭇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천재가 아닌 수많은 '보통 사람'일, 수많은 우리네 야구팬들과 닮았으니까. 그러면서도 주저앉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니까.

  박동원은 금일 인터뷰에서 "시즌 전 25홈런을 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아직 경기를 하지 않아 자신이 있어 그렇게 이야기했다"며 "타격폼이 잘못돼서 안 되겠더라. 많이 내려놓은  상태다. 아직 다음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패에 미련을 갖지 않고 시원히 인정하는 부산 사나이 박동원이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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