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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Dec 29. 2021

키움 히어로즈는 박병호 이후의 시간이 준비됐는가?

아니오

  2010년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홈런 타자이자 키움 히어로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박병호가 팀을 떠났다. 구단은 애초부터 박병호와의 FA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유한준을 대신할 베테랑을 찾던 kt에게 밀려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고 말았다. 키움 팬들에게는 끔찍한 연말 선물이다.

  위안 아닌 위안을 해보자면, 박병호는 지난 2년 동안 팀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반등의 여지 또한 불투명한 선수다.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했지만 생산성은 리그 평균을 밑돌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1루 수비까지 둔해졌다. 그러니 '세대교체를 할 때가 됐다'며 속상한 마음을 달랠 수도 있다. 유의미한 효과는 없겠지만.

  그런데, 키움은 과연 박병호의 다음을 착실히 준비해 놓았는가? 박병호 대신 주전 1루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빌 후계자를 제대로 육성했을까? 애초에 외부 FA는커녕 내부 FA조차 잡을 생각이 없는 팀인데, 그렇다면 최소한의 준비는 했기 때문에 배짱 있게 프랜차이즈 스타를 버리는 게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KBO리그에서 외부 FA 영입에 아무 관심이 없는 세 팀(두산 베어스·SSG 랜더스·키움 히어로즈)의 지난 13년간 신인 드래프트 영입을 살펴보며 각 팀이 '거포 세대교체'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했는지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키움은 돈도 가장 없으면서 준비도 가장 안일하게 했다.  




매년 거포 유망주 수집에 진심이었던 두산.

  두산은 2014년 겨울에 영입했던 장원준이 지난 7년 동안의 유일한 외부 FA 영입일 정도로 FA를 통한 전력 수혈에 인색한 팀이다. 홈런 타자가 없으면 최형우나 나성범을 영입해버리는 KIA 타이거즈와 같은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두산은 꾸준히 슬러거 유형의 유망주를 수집해왔다.

  투수 지명에 올인했던 2018년과 2020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파워툴이 돋보이는 유망주를 지명했다.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잠재력이 뛰어난 거포 유망주가 있다면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2013년 2라운드 이우성·2015년 2차 2라운더 김민혁·2019년 2차 2라운더 송승환·2021년 2차 3라운더 강현구·2022년 2차 3라운더 신민철). 신인 드래프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거포 유망주를 긁어모았다. 2017년에는 '다른 팀에 가면 주전 포수'라는 평을 받던 최재훈을 내주며 신성현을 영입했고, 올해 겨울에는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박건우의 보상 선수로 우투우타 1루수 강진성을 지명했다.

  지난겨울에는 6년간 주전 1루수로 활약했던 좌타 거포 오재일이 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상황에서, 좌완 에이스 함덕주를 LG 트윈스에 내주며 '공갈포' 평을 듣던 양석환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에만 해도 양석환은 한계가 명확해 보이는 타자였기에 무리한 트레이드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양석환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며 생산성 있는 홈런 타자로 거듭났고, 두산은 오재일의 공백을 단숨에 메우면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1년도 안 돼 거포 1루수의 세대교체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두산은 지난 신인 드래프트에서 세 명의 거포 유망주(신민철·전희범·강동형)를 지명했다.




피지컬 깡패 로또픽 수집에 진심이었고, 실제로 성과를 냈던 SSG.

  SSG 랜더스는 과거부터 '하위 라운드에서는 투·타 상관없이 피지컬 좋은 포텐픽을 지명한다'는 확실한 주관을 갖고 신인 드래프트에 임했고, 이러한 전략이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 9라운드에서 지명됐던 한동민은 대학생 시절 '포지션이 애매한 타격 좋은 대졸'이라는 평과 함께 외면받았지만, 입단 2년 차부터 코어 유망주로 급성장했으며 오늘날에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타 거포 중 한 명이 되었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9라운더 김동엽은 드래프트 직전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SK 구단이 잠재력 하나만을 보고 지명했다. 데뷔 첫해부터 1군에서 6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고,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3년 동안 도합 55개의 홈런포를 쳐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제이미 로맥과 최정, 그리고 한동민의 이후를 생각하는 듯한 신인 지명을 하고 있다.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박주홍과 함께 고교야구 최고의 슬러거였던 전의산(2차 1라운드)과 190cm·100kg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류효승(2차 6라운드), 그리고 대졸 1루수 이거연(2차 9라운드)를 지명했다. 2021년에는 거포 포수 조형우(2차 1라운드), 거포 유격수 고명준(2차 2라운드), 괴물 같은 프로필의 박형준(2차 6라운드/183cm·100kg), 권혁찬(2차 10라운드/191cm·99kg)을 영입했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 2차 10라운드서 지명한 장충고 최유빈 또한 파워만큼은 진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응~ 고형욱 단장님은 거포 수집 그런거 관심 없으셨어~~~

  키움은 박병호가 부동의 4번 타자 1루수로 활약하는 동안 제대로 미래를 대비해본 적이 없다. 이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단 두 명의 거포 유망주(임동휘·2014년 2차 2라운드, 송현우·2014년 2차 8라운드)를 지명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의아한 점은 박병호가 포스팅 자격을 얻어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한 뒤에도 특별히 거포 유망주를 지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병호가 이적한 첫해, 히어로즈는 삼성에 불펜 투수 김대우를 내주며 베테랑 1루수 채태인을 영입했으나 채태인의 퍼포먼스는 기대 이하였다. 그나마 윤석민이 3할 3푼 5리의 고타율과 19홈런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 또한 서른을 넘은 고참급 선수였다. 하지만 키움은 하위 라운드에서조차 거포 유망주를 지명하지 않았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채태인의 확정된 실패와 장영석의 한계, 박병호의 노쇠화를 의식한 듯 중위 라운드와 하위 라운드에서 각각 한 명의 거포 유망주를 지명했다(2017년 김수환·2차 5라운드, 조병규·2차 7라운드/2018년 이명기·2차 5라운드, 정현민 2차 9라운드). 조병규와 정현민은 각각 피지컬'만' 좋고 파워'만' 좋은 선수였기에 2군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다 방출됐다. 김수환과 이명기는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한계가 명확하다.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고교야구 최고의 타자였던 박주홍(1차지명)과 파워툴을 지닌 박동혁(2차 9R)을 뽑았다. 박주홍은 이제 겨우 3년 차 고졸 신인이니만큼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한 상황이며, 박동혁은 퓨처스리그에서 7푼 8리의 통산 타율을 남기고 방출됐다. 202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는 이주형을, 202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는 박찬혁을 지명했다. 이들에게 당장 내년부터 1군에서 대활약하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일 것이다.


  지명 선수의 숫자만 놓고 보면 세 팀은 지난 13년간 비슷한 정도로 거포 유망주를 지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산과 SSG는 꾸준히 혹은 일관된 주관하에 파워 히터를 수집했으며, 키움은 2010년대 초중반을 주전 선수만 믿고 날려버렸다는 차이가 있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야 박병호의 후계를 생각한 듯한 신인 지명을 하였으나 작별의 시간은 훨씬 빨랐으며 아직 준비는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키움은 2022년의 주전 1루수 후보로 누구를 생각하고 있을까? 퓨쳐스리그에서도 파워'만'을 보여준 김수환?(2021시즌 퓨처스리그 타율 2할 2푼 7리, OPS 0.737)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합격할 수 없을 정도의 성적을 기록한 이명기? (2021시즌 퓨처스리그 타율 2할 4푼 5리, OPS 0.731) 아니면 어째서인지 홍창기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박주홍? (2021시즌 퓨처스리그 타출장 .259 .412 .352 0홈런)


  주사위는 던져졌고 박병호는 팀을 떠났다. 그는 분명 지난 2년 동안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올리며 팬들의 울화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키움 구단은 그런 박병호를 대체할 선수조차 육성하지 못했고, 내년에 박병호의 공백을 메울 플랜조차 없어 보이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영광의 시간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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