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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Dec 28. 2021

"프랜차이즈 스타가 나올 수 있는 팀이 되었으면.."

영웅군단의 현주소 - 3편

1편 - 히어로즈는 2차 4라운더를 얼마나 잘 뽑았을까?

2편 - 9개 구단의 영웅이 된 히어로즈


(이미지 출처 : 트위터 @heroestruck)

  일부 키움 히어로즈 팬들이 트럭 시위를 한다고 해서 키움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가 전부 난리였다. ⚾️키움히어로즈 트럭시위⚾️ 라는 계정명으로 활동 중인 트위터 유저의 트윗에 따르면, 야시엘 푸이그나 강민국 같이 범죄 이력이 있는 선수는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박병호는 안 잡으려 하냐는 내용으로 시위를 하려는 듯하다.

  이 트럭을 키움증권, KB생명보험 등 구단의 주요 스폰서 사옥에도 보낸다고 한다. 일부 키움 팬들 사이에서는 비난 여론이 드세다. 도대체 팀에 도움 안 되는 30대 중후반 선수 FA를 안 잡는데, 스폰서에 안 좋은 인식을 심어줘서 구단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왜 하냐는 것이 주된 논리다.


  키움 팬들 중에서는 유독 구단의 재정 사정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KBO리그의 10개 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모기업 없이 운영하고,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매년 좋은 성적을 올리는 언더독 서사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대형 FA도 안 잡고 우승 한 번 못 한 구단의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다. 그동안 대형 FA 하나 잡지 않으면서도 트레이드로 홈런왕, 국가대표 3루수 등을 만들었다. 내부 자원 육성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유격수 두 명을 메이저리그로 보냈고 또 하나의 국가대표 유격수를 육성 중이다.

  없는 살림에서도 '공포의 외인구단'을 결성해 우승에 도전하는 모습은 가히 팬들을 '구단 사정충'으로 만들 만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박병호는 '없는 살림에 15억이나 받아먹으면서 전력에 보탬도 안 되는 늙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병호의 이적설에 분노하며 트럭을 보내려 하는 팬들은? '구단 사정도 모르고 철없이 떼쓰는 한심한 사람'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없는 사정 더 박살 내려 하는 트럭시위충'은 지탄받아 마땅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박병호의 FA 이적을 결사반대하는 팬들은 과거에 언더독 서사를 공유했던 '구단 사정충'이 아니었을까?




언성 히어로가 모여 만들어낸 영광의 순간.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박병호, 서건창, 김민성, 김상수는 오늘날 키움의 언더독 서사를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다. LG 트윈스 시절 500타석이 넘게 기회를 받으면서도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터지지 않던 '만년 유망주' 박병호는, 히어로즈로 이적하자마자 잠재력이 폭발하며 2010년대 최고의 홈런 타자가 되었다. 현금 트레이드를 통한 굴욕적인 이적이었기에 더욱 극적이었고,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마음껏 휘둘러 봐라"던 감독의 말에 힘입어 쏘아 올리기 시작한 홈런포였기에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서건창은 고교 졸업 후 신고선수로 프로에 입문했지만 1군 경기에 한 타석만 나온 채 방출된 흙 속의 진주였다.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은퇴의 기로에 서 있을 때 히어로즈에 입단했고, 리그 최고의 2루수로 거듭나며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 시즌 200안타' 기록을 세웠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민성은 현금 트레이드로 히어로즈에 이적한 뒤 벌크업을 통해 한계를 넘어서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평범한 투수였던 김상수도 현금 트레이드로 히어로즈에 오고 나서 'KBO리그 최초 단일시즌 40홀드 투수'가 됐다.

  그렇기에 박병호·서건창·김민성·김상수의 성공은 히어로즈 구단의 성공이었다. 그들의 활약은 '없는 살림에서도 우승에 도전한 외인구단'이라는 언더독 서사가 됐고, 이러한 서사에 매료된 수많은 이들이 키움 팬이 됐다. 2011년까지만 해도 '장석꾼(이장석+장사꾼)'이라는 멸칭으로 비난받던 이장석 전 대표이사는 '빌리장석(빌리 빈+이장석)'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찬양받기 시작했다. 당시의 히어로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팀이었다.

  당시의 '구단 사정충'들은 팀의 간판스타가 무더기로 유출됐던 2015년 겨울에도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유한준 떠난다/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손승락 떠난다/..." 같은 가사의 캐럴을 만들어 불렀다. 다른 팀이 못 쓰겠다고 판단한 뒤 방출한 외국인 선수를 헐값에 주워와도 "구단 사정에 어쩔 수 없지", "목동 구장에서는 잘하겠지"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한편으로 이듬해 봄을 기대했다.




포스팅 금액 200억이 전부 행방불명 됐는데 '구단 사정'이 의미가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연합 뉴스)

  하지만 이제 키움에는 예전과 같이 팬들을 감동시킬 '서사'가 없다. 각각 2018년과 2020년 겨울에 FA 자격을 취득했던 김민성과 김상수는 한때 주장으로 뛰었을 만큼 선수단 내 입지가 컸고, 본인들 또한 팀에 대한 애정이 컸다. 하지만 키움 구단은 이들과 계약할 의지가 없었다. 두 명 모두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함께 프랜차이즈로서 사랑받았던 동료들이 팀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서건창은, 2021시즌 시작 전 의도성이 다분한 연봉 자진 삭감으로 팬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그리고 시즌 중 트레이드되었다). 기적은 연달아 일어나지 않았고, 이들이 떠나가는 동안 별다른 트레이드·육성선수 성공 신화 또한 없었다.

  히어로즈의 대표적인 내부 육성 신화였던 강정호는 음주운전으로, 간판 베테랑이었던 이택근은 후배 폭행 논란으로 선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김민성과 더불어 벌크업을 통해 한계를 넘어섰던 유한준과 프랜차이즈 투수 손승락은 FA 자격 취득 후 당연하다는 듯이 이적했다. 두 선수가 이적했던 2015년 겨울에 히어로즈 구단은 박병호의 포스팅 금액으로 147억 원을 받았다. 그 전해에도 강정호의 포스팅 금액으로 55억 원을 얻었다. 한편 이장석 전 대표는 2016년 5월에 사기 및 횡령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했고, 혐의가 인정되며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였던 제리 샌즈는 재계약 협상에 실패해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샌즈가 NPB에서 2년간 39홈런을 쏘아 올리는 동안 키움이 영입한 외국인 타자는 테일러 모터(10경기 35타수 4안타 기록 후 방출), 에디슨 러셀(65경기 12실책), 데이비드 프레이타스(43경기 타율 .259 2홈런 14타점 기록 후 방출), 윌 크레익(61경기 타율 .248 6홈런 30타점)이었다. 키움 구단은 현재 3시즌째 1선발로 활약 중인 에릭 요키시와의 재계약 협상 또한 난항을 겪고 있는데, 요키시가 활약하는 동안 키움이 영입한 외국인 투수는 조쉬 스미스(2경기 10이닝 9피안타(1피홈런) 5볼넷 7실점 기록 후 방출), 타일러 에플러(트리플 A 7점대)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원조 '구단 사정충'들은 모두 구단 사정을 부르짖지 않게 됐다.


  과거의 키움 구단에는 FA 걱정 없이 넉넉한 부자 팀 대신 응원할 매력적인 서사가 있었다. 트레이드·육성선수 영입 등으로 유망한 선수를 긁어모아 이들을 스타덤에 올렸고, 현금 트레이드로 떠났던 이택근을 FA로 재영입함으로써 프랜차이즈에 대한 예우 또한 보여줬다.

  하지만 오늘날의 키움은 예전과 같은 서사가 없다. 트레이드·육성선수 신화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그 사이에 팀의 주축이 됐던 이들은 모두 팀을 떠났다. FA 보상금과 포스팅 금액은 '대형 FA 영입'이나 '비싼 외국인 선수 스카웃'이라는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의 빌리 빈이라 불리던 구단주는 횡령 혐의가 인정되며 감방에 들어갔다. 윈나우를 부르짖으면서도 오설리반, 모터, 스미스, 에플러 등으로 주축 선수들의 전성기를 낭비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박병호만 남아있게 됐다. 히어로즈의 언더독 서사를 완성했던 이들은 모두 팀을 떠났고, 박병호만 남았다. 고형욱 단장은 사인 앤 트레이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FA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며, FA 보상금 22.5억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에이징 커브를 보여준 타자이기 때문에 떠난다고 해도 전력에 큰 손실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히어로즈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수많은 키움 팬들을 감동시켰던 언성 히어로의 신화?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존중과 예우? 과연 22.5억은 팀의 전력 보강에 온전히 쓰일까?




모든 가치가 사라진 팀에서 박병호마저 팀을 떠난다면, 그때의 히어로즈에는 무엇이 남는가?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박병호의 FA 계약에는 다른 팀의 프랜차이즈 FA 이상의 가치가 걸려 있다. 다른 9개 구단의 경우 프랜차이즈 스타를 놓치면 시중의 다른 FA를 영입함으로써 팬들을 달랠 수 있다. 강민호를 놓친 뒤 민병헌을 영입했던 2017년의 롯데가 그랬고, 나성범을 놓치자 박건우와 손아섭을 영입한 올해의 NC가 그랬다. 하다못해 2015년의 히어로즈도 유한준과 손승락을 놓치자 또 다른 FA였던 이택근에게 35억 원을 안겼다. 하지만 지금의 키움은 그럴 '의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히어로즈가 창단할 때부터 영웅군단과 함께해온 '원년 멤버' 오주원은 얼마 전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한 팀에서 오래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성, 이정후 같은 선수들이 FA가 됐을 때 구단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서, 이들이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선수들조차도 "다른 팀엔 프랜차이즈 스타나 영구결번이 많지 않느냐"며 히어로즈 또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구단의 유일한 영구결번 후보를 22.5억 원으로 바라보고 있는 단장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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