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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Dec 14. 2021

각 포지션별 역대 최장기간 GG 수상 기록 보유팀은?

  2021시즌 KBO리그 골든글러브의 주인이 모두 정해졌다. '골든글러브 컬렉터'들의 이름이 눈에 띄는 시상식이었다. 포수로서 여섯 차례 황금장갑을 꼈던 양의지는 올해 지명타자로 대부분 경기를 뛰면서 3할 2푼 5리의 타율과 30홈런을 기록해, 개인 통산 첫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 황재균에게 골든글러브를 내줬던 최정은 올 시즌 홈런왕을 차지하며 일곱 번째 황금장갑을 얻었고, FA를 앞두고 부활에 성공한 강민호는 4년 만에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개인 통산 6호).

  양의지와 강민호, 그리고 최정 셋 다 자신의 포지션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골든글러브를 가진 한국프로야구의 전설이다(포수 부문 1위 김동수(7개)·3루수 부문 1위 한대화(8개)). 이들은 모두 최다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이 3년이라는 공통점 또한 갖고 있다. 2010년대 초반 KBO리그 최고의 포수였던 강민호는 2014년부터 양의지에게 밀려 좀처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고, 양의지는 허리 부상(2017년)과 팔꿈치 부상(2021년)으로 4년 연속 포수 부문 GG 수상에 실패했다. 최정 역시 2010년대 중반에는 박석민에게, 2018년과 2020년에는 각각 허경민과 황재균에게 골든글러브를 내주며 최장 기록이 3년(2011년~2013년)에 그쳤다.

  오늘날 KBO리그의 리빙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조차 예기치 못한 부상과 부진으로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 이승엽의 7년 연속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의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한편 삼성 라이온즈가 2004년의 양준혁 이후로 17년째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카우트나 내부 육성 및 트레이드로 특정 포지션의 스타 플레이어를 만드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각 포지션별로 최장기간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한 팀은 어디일까? 그래서 찾아봤다.




■ 선동열이 지배한 80년대 후반, 두산의 스카우트 능력이 지배한 2010년대 후반

(사진 출처 : 스포츠동아)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3년 이상 연속 수상자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부상의 위험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보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편 3년+ 연속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단 한 명'의 투수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인 선동열이었다. 그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동안 투수 골든글러브를 독점하며 KBO리그를 지배했다.


  선동열은 프로 무대에 데뷔한 순간부터 야구를 잘했다. 데뷔전이었던 1985년 7월 2일 대구 삼성전에서 그해 다승왕이었던 김일융과 맞붙었고, 7회까지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최종 성적 7.2이닝 9피안타 4 사사구 5실점). 실업구단과의 이중 계약 문제로 정규시즌 후반에 데뷔했음에도 규정이닝을 소화하며 방어율왕 타이틀을 얻었던 선동열은, 이듬해 262.2이닝 24승 214삼진 평균자책점 0.99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즌 MVP, 개인 타이틀(다승왕, 탈삼진왕, 방어율왕)과 시즌 MVP, 그리고 개인 첫 골든글러브를 쓸어 담았다.

  데뷔 3년 차였던 1987년에는 2년 연속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햇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해 김시진에게 골든글러브를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그다음 해부터 그의 사전에 양보라는 단어는 없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1988년에는 풀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하면서도 리그에서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89년에는 자신에게 프로의 쓴맛을 보여줬던 삼성을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는 등 MVP급 활약을 펼쳤다. 1991년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자랑하던 빙그레 이글스에게 13이닝 동안 1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의 투수 골든글러브는 아무런 이견 없이 선동열의 몫이었다. 1992년에는 건초염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며 5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으나, 93년에는 전업 마무리로 전향해 부활함으로써 선수 생활 마지막 골든글러브를 얻어냈다. 



좌측부터 조쉬 린드블럼, 라울 알칸타라, 아리엘 미란다. (사진 출처 : 스포츠한국, 국민일보, 엑스포츠뉴스)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위의 사례는 선동열이 KBO리그의 역사에 길이 남을 투수였기에 만들어진 기록이기에 본 게시글의 취지에 맞지는 않는다. 반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의 두산 베어스는 놀라운 외국인 투수 스카우팅 능력으로 이뤄낸 4년 연속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조쉬 린드블럼(2018·2019시즌 골든글러브 수상자)과 라울 알칸타라는 다른 팀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를 두산이 재영입한 사례다. 두 선수 모두 190cm·100kg 이상의 거대한 체격에서 나오는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유형의 A급 외인 투수였으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에는 한 뼘씩 아쉬움이 있었다. 두 명 다 피홈런이 많았다. 린드블럼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3년 동안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홈런을 허용했다(66개). 알칸타라의 경우 많은 피홈런과 더불어 변화구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두 플라이볼 피쳐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는 홈구장을 잠실 야구장으로 옮기면서 모두 해결됐다. 잠실 야구장의 광활한 외야는 린드블럼의 피홈런 수를 절반 가까이 줄여 줬으며(2016년 28개 → 2018년 16개 → 2019년 13개), 4할이 넘던 알칸타라의 피장타율을 3할 초반대로 만들어줬다. 유일한 약점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리그 최고의 투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적 첫해부터 리그에서 유일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린드블럼은 이듬해 다승·탈삼진·승률 3관왕을 기록하며 외국인 투수 최초 2년 연속 골든 글러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직전 해 kt 위즈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던 알칸타라는 2020시즌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올해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아리엘 미란다는 과거 MLB를 거쳐 NPB와 CPBL에서도 활약했던 투수다. 리그의 수준과 상관없이 불안한 제구력을 보였고, 직전 시즌 하위 리그에서 뛰었다는 점이 불안 요소로 꼽혔다. 하지만 선수 본인이 실력으로써 우려를 종식하며 두산 스카우트진의 안목을 증명했고, 시즌 종료 이후에는 두산 구단에 4년 연속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선물했다. 미란다가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두산은 KBO리그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 김재박의 아성 넘보는 유격수 명가 히어로즈

MBC청룡 시절의 김재박. (사진 출처 : 영남신문)

  현재까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골든글러브를 독점했던 유격수는 1980년대 초반의 김재박이다(1983~1986). 키움 히어로즈는 우수한 내부 육성으로 김재박의 기록에 다가섰으며, 이제는 그의 아성을 넘으려 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됐을 즈음의 김재박은 이미 선수로서의 전성기가 대부분 지나간 상태였다. 당시에만 해도 서른을 전후로 하여 프로 유니폼을 벗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김재박은 1982년에 만으로 스물여덟이었으니 오늘날로 치면 서른 초중반의 선수가 프로 데뷔를 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박은 실업야구 시절 공수 양면에서 리그를 지배했던 기량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4할 타율은 물론 홈런왕도 차지하던 70년대 시절의 타격은 아니었으나, '유격수는 수비만 잘하면 되는 보직'이라던 당대의 편견을 부수는 성적을 기록했다. 수비면에서는 투수로 뛰어도 될 정도의 강견과 높은 BQ를 바탕으로 한 화려한 수비를 선보이며 어렵지 않게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유격수 하면 키움!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김재박이 완전히 노쇠한 이후 류중일, 장종훈, 이종범, 박진만 등 수많은 스타 유격수가 나왔지만 김재박의 기록을 넘기기는커녕 3년 이상 골든글러브를 독점한 선수조차 나오지 않았다. 2010년대 들어서야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습관적으로' 골든 글러브를 받았지만, 그조차 2011년 이대수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해 3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그쳤다. 그런데 키움 구단이 강정호를 피츠버그로 보낸 이후로도 꾸준히 국가대표 유격수를 육성하며 김재박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됐다.

  2015시즌을 앞두고 평생 3루수로 뛰었던 윤석민에게 유격수 전향을 권유할 정도로 위기에 처했던 키움은, 데뷔 2년 차 고졸 신인 김하성이 2할 9푼의 타율과 19홈런 22도루로 대폭발하며 단번에 고민을 해결한다. 2016년에는 20-20 클럽에 가입했으며 2017년에는 '최연소 유격수 100타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비록 2017년까지는 상운이 따르지 않았으나, 이후로 감히 경쟁자가 없을 만큼 성장하며 2020시즌까지 3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2021시즌을 앞두고는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하며 또 한 번 국가대표 유격수를 잃게 됐지만, 지난해까지 주전 2루수로 뛰었던 김혜성이 3할 유격수로 거듭나며 김하성의 공백을 메꿨다. 작년까지만 해도 70%대에 머물렀던 컨택률을 80%대로 끌어올리며 데뷔 첫 3할 타율을 기록하게 되었고, 매년 2~30개에 그쳤던 도루 또한 폭발적으로 늘려 데뷔 첫 도루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김혜성이 내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한다면, 키움은 KBO리그 최초로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5년 이상 수상한 구단이 된다.




■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빙그레 이글스, 적토마와 캐넌 히터의 LG 트윈스, '왕조' 현대 유니콘스

  세 팀이 5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 김재현과 이병규라는 두 좌타 거포를 자랑하던 시절의 LG 트윈스, 그리고 '왕조'라고 불리던 시절의 현대 유니콘스가 그 주인공이다.


  1986년에 창단해 뒤늦게 KBO리그에 합류했던 빙그레 이글스는, 창단 3년 차였던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 동안 네 번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는 등 신생팀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 시기의 빙그레의 자랑은 단연 악바리 이정훈, '원조 강한 2번 타자' 이강돈, 홈런왕 장종훈, 그리고 '이글스 첫 타격왕' 고원부를 앞세운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다. 배드볼 히터의 원조 격이었던 이강돈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는 그 어떤 공이든 곧바로 받아쳤고, 그 결과 88년부터 90년까지 3년간 리그에서 가장 많은 안타(401개, 2위 한대화 354개)를 쳐냈다. 이런 이강돈을 2번 타순으로 밀어냈던 이정훈은 전형적인 호타준족형 타자였다. 데뷔 시즌부터 1992년까지, 6년 동안 1990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 3할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1991년과 1992년에는 장타 능력까지 만개해 각각 17홈런, 25홈런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장종훈이 자신의 멘토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던 고원부는 1989년 3할 2푼 7리의 타율로 사상 첫 재일교포 출신 타격왕이 되었다. 이들의 최전성기였던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빙그레 이글스는 여덟 개의 외야수 골든 글러브를 쓸어 담았다(타 포지션 포함 시 14개).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90년대 후반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이병규와 김재현이 골든글러브를 독식했다. 김재현은 데뷔 시즌이었던 1994년에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20-20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기량이 입증된 최고의 선수였다. 데뷔 4년 차인 1997년에 신장염으로 한 시즌을 통으로 날리는 등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이듬해 완벽히 부활에 성공하면서 개인 통산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7년에 데뷔한 이병규 역시 루키 시즌에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김재현의 공백을 완벽히 메울 만큼의 대형 신인이었다. 5번 타자로서 3할 5리의 타율과 7홈런 23도루를 기록했고,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8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지만 이듬해 30-30 클럽에 가입했고, 2000년과 2001년에 2년 연속 최다안타왕의 자리에 오르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김재현과 이병규 이후로도 LG는 박용택, 이대형, 홍창기 등의 걸출한 신인 외야수를 배출하며 외야 명가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는 외국인 스카우트 능력과 행운이 따랐던 트레이드, 그리고 신인 육성으로써 5년 연속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심정수는 잠실 야구장에서도 30홈런을 기록할 정도의 슬러거였으나, 선수협 사태를 빌미로 현대에 트레이드되었다. 작아진 홈구장과 타격폼 수정의 효과를 본 심정수는 2002년과 2003년에 도합 9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2년 연속 외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3시즌 후반기 마이클 프랭클린의 대체 선수로 영입된 외국인 타자 클리프 브룸바는 이듬해 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3위를 기록하는 등 대폭발하며 현대의 마지막 우승을 견인했다. 2004시즌 후 NPB에 진출한 브룸바 대신 영입된 래리 서튼은 35세의 나이에 서른 다섯 개의 홈런을 쳐내면서 타격 삼관왕을 석권했다. 2006시즌의 현대는 심정수도 없었고 서튼도 부진했으나, 중견수로 전향한 4년 차 대졸 신인 이택근의 잠재력이 만개했다.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한 이택근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현대는 5년 연속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 삼성, 해태, 그리고 롯데

  포수·1루수·2루수 포지션의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은 삼성 라이온즈가, 3루수 부문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은 해태가, 그리고 지명타자 부문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가 갖고 있었다. 해당 포지션의 경우 육성이나 스카우팅 능력보다는 당대를 풍미했던 레전드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해 한 번에 기술한다.


  이만수는 초창기 한국프로야구의 간판스타였다. 포수였음에도 리그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였으며, 리그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였음에도 삼십 대 중반까지 포수로 뛰었을 정도로 수비 능력 또한 훌륭했다. 여기에 팬들을 기쁘게 할 줄 아는 쇼맨십까지 갖췄다. 이만수 외에 다른 선수가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만수 1983~1987 5시즌 연속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 KBO리그가 암흑기에 빠져있을 때 무수한 관중들로 하여금 잠자리채를 들고 야구장에 오게 만들었던 이승엽 역시 마찬가지(이승엽 1997~2003 7시즌 연속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 김성래와 강기웅은 1980년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공격형 2루수였다. 김성래는 2루수로 뛰면서도 홈런왕을 차지할 정도의 타격과 185cm의 장신을 살린 수비를 갖춘 공수 겸장이었고, 강기웅은 공·수·주 모두 출중한 툴플레이어였다(김성래 1986~1988·강기웅 1989~1990 5시즌 연속 2루수 골든글러브 합작).

  해태의 레전드 중견수로 기억되고 있는 이순철은 3루수로 프로에 데뷔했다. 1985년 데뷔 첫해부터 3할 타율과 두자릿수 홈런, 그리고 31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1986년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에 영입된 한대화는 이순철을 밀어내고 주전 3루수로 뛰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렸다(이순철 1985·한대화 1986~1991 7시즌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 합작). 홍성흔은 롯데의 레전드다(홍성흔 2008~2011 4년 연속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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