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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r 15. 2022

잊혀진 황태자는 아직 10승 투수를 꿈꾼다

[시범경기 모먼트 ①] - 1271만에 고척 마운드 밟은 하영민

하영민은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어린 왕자였다. 2009년의 이현승 이후로 단 한 명의 토종 10승 투수도 배출하지 못했던 히어로즈 구단에 2차 1라운더 하영민은 1차 지명과 같은 기대를 받았고, 수년간 제구 안 되는 파이어볼러 유망주만 지켜보며 지쳤던 팬들에게 하영민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모두가 하영민의 덩치가 두 배가 되고 구속까지 끌어올려 당당히 목동의 마운드에 서는 그날을 기다렸다. 토종 에이스 하영민과 포스트 강정호 임병욱은 구단과 팬들이 하나 되어 소망하던 미래였다.




고졸 신인 하영민이 있었기에 2014년의 넥센은 초토화된 마운드를 재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아마일 때와 프로에 입단한 후 기분이 다르다. 전광판에서 내 이름을 볼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운드에 올랐을 때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할 때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전율이 느껴진다.” - [45인터뷰] 넥센 하영민, "감사하는 마음으로 야구한다"

하영민은 목동의 황태자였다. 우승을 정조준하며 정규시즌에 들어선 2014년의 넥센은 맞붙는 팀마다 마운드를 초토화했지만, 동시에 밴 헤켄을 제외한 모두가 난타당했다. 불혹이 목전이었던 브랜든 나이트는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너무 늙었다. 2013시즌 후반 원투펀치었던 문성현과 오주원은 원투 펀치로 얻어맞았으며, 좌완 파이어볼러 유망주는 강윤구는 겨우내 야심 찬 웨이트 트레이닝 끝에 빠른 공을 잃어버리며 유망주 딱지를 뗐다. 두 눈을 씻고 보아도 절망뿐이던 목동의 마운드 위에 선 만 18세 신인은 한 줄기 희망이 되었다.


데뷔 첫 1군 무대에서 5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를 챙기며 한국프로야구 역대 6번째 데뷔 선발승, 역대 5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 기록을 챙겼다. 넥센이 24대 5 강우 콜드패라는 트라우마를 안게 된 다음 날 보란 듯이 6이닝 8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팬들의 응어리를 풀어줬다. 몸도 다 만들어지지 않은 고졸 무리한 탓인지 차츰 호투한 날보다 부진한 날이 많아졌지만, 그즈음에는 새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와 강진에서 돌아온 문성현이 제 몫을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아홉 소년은 팀에서 아홉 번째로 많은 이닝과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를 기록했다. 팬들은 언젠가 그의 이름이 맨 위에 적혀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하영민은 한때 셋포지션의 동작이 현대 유니콘스의 황태자 김수경과 비슷하다며 주목받기도 했다.
그럼 하영민은 왜 홀로 4이닝을 책임졌을까. 염경엽 감독은 21일 경기를 앞두고 "주중 3연전이었다. 어제 경기를 치르고도 앞으로 4경기가 남은 상황이었다"면서 다른 투수들의 체력적인 안배를 고려했음을 밝혔다. - 염경엽 감독이 밝힌 '하영민 불펜 4이닝' 투구 이유


데뷔 시즌 이후 하영민은 좀처럼 선발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5년에는 문성현이 13경기에 선발 등판해 7점대 평균 자책점에 그치는 상황 속에서도 송신영, 김택형 등에 밀려 2경기 선발 등판에 그쳤다. 이듬해에는 신재영이 토종 1선발 자리를 차지하고 박주현, 양훈, 최원태가 빈자리를 채우며 단 한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그렇다고 2군에서 고교 시절의 혹사와 데뷔 시즌의 무리에 대한 회복의 시간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채 1군에 잔류한 하영민은 롱릴리버로서 사용됐다. 데뷔 3년 차였던 2016년에는 한 번 불펜으로 등판할 때마다 2이닝에서 4이닝씩 던지는 일이 잦아졌다. 고졸 신인에게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하영민은 꾸준히 구속을 끌어올리며 후일을 도모했다. 2016년 5월 21일 잠실 LG전에서는 생애 첫 150km/h 구속을 기록하면서 낮은 구속을 아쉬워하던 팬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다. 매년 토종 선발진 문제로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는 긴 터널의 끝에는 밝은 빛이 있을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하영민이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팀 사정이라는 이름 아래 데뷔 이래 단 한 번의 휴식도 부여받지 못한 하영민의 몸은 탈이 나고 말았다. 2016년 5월 말에 팔꿈치 인대 미세 파열 진단을 받았다. 8주의 재활 기간을 거치면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돌아오지 못했다. 2017년 5월이 돼서야 1군에 돌아왔고, 복귀하자마자 불펜에서 혹사당했다. 2018년에는 9경기 16.1이닝 2패 평균자책점 7.71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고, 시즌 후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19년에는 재활로, 2020년과 2021년에는 군 복무로 자취를 감췄다. 그 사이에 넥센의 이름은 키움으로 바뀌었고, 키움은 안우진 - 최원태 - 정찬헌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토종 선발진을 갖게 됐으며, 팀의 최대 기대주는 장재영이 됐다. 목동의 황태자는 그렇게 잊혀졌다.




3월 14일 경기에서 1271일만에 고척 마운드를 밟은 하영민.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연차는 중요하지 않다. 여전히 경쟁하고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팔꿈치 상태가 지금 괜찮으니까 컨디션 잘 올려놓고 시즌에 들어가겠다. 안 아프고 한 시즌을 풀로 치러보고 싶다. 선발로 나가서 10승을 한번 해 보고 싶은 게 예전부터 꿈이다." - [SPO 톡] 넥센 하영민이 2018년에 꾸는 세 가지 꿈


작년 말에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야구선수의 신분으로 돌아왔으나,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스프링 캠프 기간에도 하영민의 이름은 미디어의 포커스 바깥에 있었다. 요키시 - 애플러 - 안우진 - 최원태 - 정찬헌으로 이어지는 토종 선발진이 예상됐으며 송정인, 이명종 등의 신인들이 뉴 페이스로 기대받았다. 그 사이에 하영민의 이름은 없었다.


그렇게 잊히나 싶었던 하영민은 3월 14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2018년 9월 21일 고척 삼성전에서의 구원 등판이 마지막 1군 경기였으며 그 뒤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실전에 나서지 못했으니 1271일 만에 고척 마운드를 밟은 셈이었다. 복귀 첫 무대부터 서건창, 유강남, 홍창기가 연달아 나오는 강타선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서건창을 2구 만에 2루수 땅볼로 처리하고 유강남에게는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홍창기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했으나 곧바로 다음 타자 박해민을 땅볼 유도로 처리했다.


이날 방송사 스피드건에 찍힌 하영민의 최고 구속은 140km/h였다. 그러나 방송 중계 구속이 실제보다 4~5km/h 정도 덜 나왔다는 윤세호 <스포츠서울> 기자의 트윗에 따르면, 하영민의 실제 구속은 140km/h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년 만에 실전 무대에 나선 하영민은 안정적인 제구의 145km/h대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앞세워 LG의 강타선을 막아냈다. 부상으로 꺾이는 성싶던 목동의 황태자는, 그깟 아픔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제 한 몸 바쳐 목동의 마운드를 떠받쳤던 열아홉 소년은 이제 만 27세의 베테랑 투수가 됐다. 투수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다. 신재영은 만 27세가 되던 2016년에 5년 만의 1군 데뷔에 성공함과 동시에 15승을 올리며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130km/h의 느린 공으로 KBO리그를 평정한 유희관의 커리어도 스물일곱이 되던 해부터 시작됐다.


수년간의 담금질 끝에 팬들이 기대하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서 돌아온 하영민이다. 아직은 1군에 그를 위한 자리가 따로 없더라도, 지금의 그라면 스스로 자리를 만들고 고척의 황태자가 될 수 있다. 믿어봐라. 하영민 선수 올해 대박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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