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히어로즈]
벌써 3개월째 상위권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떨어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1위와의 격차를 점점 더 좁히고 있다. 환골탈태한 투수진은 그 이유가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데 타선의 약진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가성비 야구'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왜 잘 칠까'라는 헤드라인도 나온다. 팬들조차 언제 물방망이로 회귀할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국 6월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이쯤 되면 운이 아니라 실력이다. 그 이유를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의 '포지션 인덱스(Position Index)'로 설명할 수 있다.
6월의 마지막을 장식한 홈에서의 3연전은 이번 시즌 키움 히어로즈의 팀 정체성을 오롯이 보여주는 경기였다. 상대 팀 KIA 타이거즈는 지난겨울에 FA 계약에만 무려 300억을 배팅하며 우승 각오를 다졌고, 키움은 내부 FA 박병호는 물론 시즌 중 예비 FA 박동원까지 팔아치웠다. 현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는 스타 플레이어 클럽과 '이정후를 데리고도 팀 타율 8위'인 팀의 맞대결. 정답이 뻔히 보이는 3연전에서 키움은 사흘 내내 KIA보다 손쉽게 점수를 내며 5연승으로 6월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30일 경기는 20억 연봉의 나성범이 경기 후반 역전 솔로포를 터뜨리자 전병우(7천만 원)가 재역전 2타점 적시 2루타를 쳐내며 승리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빗댈 수 있는 승부였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키움은 올해 매 경기에서 말도 안 되는 라인업으로 많은 점수를 만들며 승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후와 김혜성을 제외하면 타율, 출루율, OPS,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등 모든 타격 지표에서 상위 30위권에 이름을 올린 타자가 없다.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가 제 몫을 해주지 못해 김혜성이 사실상의 '붙박이 4번 타자'로 출장 중이며, 최근에는 18년간 26홈런에 그친 이용규가 5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아무도 키움을 타격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잘 친다. 키움 팬들까지 입을 모아 '트레이드를 통한 타자 영입이 없으면 힘들다'고 얘기하는데 정규시즌이 반환점을 지났음에도 방망이가 식지 않는다.
이제는 단순히 '사이클이 올라와서 잘 치는 것', '리그 최고의 타자 이정후가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키움의 타선을 예사롭게 여길 시기가 지났다. 단순 사이클 덕분이라 보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팀 타율이 올라오고 있으며(4월 .231 → 5월 .257 → 6월 .258),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타선을 이끌 수 없음은 2010년대 초반의 김태균과 한화 이글스가 증명한 바 있다. 이정후를 제외하고 보면 팀 WAR 최하위권인 키움은 어째서 꾸준히 점수를 잘 낼까? 박병호와 박동원이 팀을 떠났으며 그들의 구멍을 메우지 못했는데, 왜 작년보다 타격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는 올해 초 '득점력이 높은 타선을 꾸리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타순이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한다'며 포지션 인덱스(Position Index, PI) 지표를 고안했다. 각 포지션의 OPS 순위를 모두 더한 다음 나눈 값을 산출해, 이 값이 작을수록 경쟁력 있는 포지션이 많고 타순에 '구멍'이 적은 팀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해당 기사의 자료에 의하면 키움은 2021시즌 KIA, 한화, 그리고 LG 트윈스 다음으로 타선에 구멍이 많은 팀이었다. 22홈런을 쳐낸 박동원이 있던 포수 포지션과 이정후가 자리를 지켰던 중견수를 제외하면, 4위 이상의 OPS를 기록한 포지션이 없었다.
키움 팬에게 있어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다. 지난 시즌 키움 경기를 지켜봤던 팬이라면 외국인 타자와 박병호의 부진, 그리고 내·외야 가릴 것 없이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인 유망주로 인해 매 경기 답답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올해다. '포수 OPS 2위'의 영광을 누리게 해줬던 박동원이 KIA로, 부진 속에서도 1루수 OPS 6위를 기록하던 박병호가 KT 위즈로 이적했다. 100만 달러를 풀배팅하며 야심 차게 영입한 외국인 타자는 또 느낌이 안 좋다. 그렇다면 당연히 작년보다 타선의 짜임새가 나빠졌을 텐데, 왜 키움의 타격 지표는 크게 나빠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 또한 포지션 인덱스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어제 경기의 성적까지 모두 반영했을 때, 키움의 이번 시즌 PI는 5.67로 KT와 함께 공동 4위다. 작년에 비해 오히려 타선의 구멍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박동원과 박병호가 떠난 포수와 1루수 자리의 OPS 순위는 각각 6위와 8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서건창을 대신해 주전 2루수가 된 김혜성이 리그 상위권 2루수로 활약 중이며(5위 → 4위), 지난 두 달간 뜨거운 타격감을 선보인 송성문이 평균 이상의 타자가 되면서 '3루 구멍' 또한 메꿨다(7위 → 5위). 유격수 포지션 또한 시즌 초반에는 김주형이, 최근에는 김휘집이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참사를 막았다(6위 → 5위). 외야는 이정후가 버티고 있는 중견수 자리를 제외하면 하위권이었지만, 이는 지난 시즌 또한 마찬가지였으므로 큰 타격이 되지 않았다. 박찬혁과 김웅빈이 주로 소화한 지명타자 슬롯의 OPS는 전임자의 후광을 받아 순위가 올라갔다(10위 → 7위).
박동원과 박병호의 공백은 메우지 못했으나 그 외 포지션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상승했다. 김주형·김휘집 - 김혜성 키스톤 콤비는 현재까지만 지난 시즌의 김혜성 - 서건창·송성문 키스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밀리지 않는다. 좋은 수비와 나쁜 타격의 전병우를 쓰느냐 괜찮은 타격과 나쁜 수비의 김웅빈을 쓰느냐의 딜레마에 빠져있던 3루 문제를 송성문이 해결했다. 코너 외야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므로 역설적으로 큰 문제점이 되지 않았다. 그 결과 42홈런이 증발했음에도 오히려 작년보다 짜임새 있는 타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시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던 KT의 PI 또한 리그 전체 4위였다는 점이다. 3할 4푼 7리의 타율과 .971의 OPS, 16홈런 102타점을 기록했던 강백호가 타선의 중심을 지켰지만 나머지 타자들은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라고 하기 어려웠다. 강백호(6.35) 다음으로 높은 sWAR*을 기록한 배정대(3.05)와 황재균(2.93)은 리그 평균 수준의 wRC+(Weighted Runs Created, 조정 득점 창출력)에 그쳤으며, 나머지 타자들의 sWAR*은 2를 채 넘기지 못했다. 2016년의 두산 베어스, 2017년의 KIA, 2020년의 NC 다이노스 등 역대 챔피언 팀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라는 말과 거리가 있는 타선이었다. 그럼에도 승리에 필요한 점수를 뽑아낼 능력이 됐고, 리그 최상위권의 투수진으로 그 점수를 지켜냈기에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올해 이정후는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할 경우 9.23의 WAR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하며, 김혜성(4.62) 송성문(2.97)의 예상 WAR 총합은 지난 시즌 배정대와 황재균보다 높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 이용규는 이번 달 3할 1푼 6리의 준수한 타율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외국인 타자 푸이그와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허슬 플레이어 김태진의 복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즌 후반까지 지금의 타격 사이클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물론 트레이드를 통해 리그 평균 이상의 타자를 한 명이라도 데려올 수 있다면 더 좋을 테다. 그러나 타일러 애플러의 부진과 최원태, 정찬헌의 불안한 기복을 보면 한현희를 트레이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타선으로도 충분히 대권 도전이 가능하다. 아니, 이미 1위 SSG 랜더스를 1.5게임 차로 추격하며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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