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키움 히어로즈 신규 외국인 투수 - 아리엘 후라도 분석
키움 히어로즈가 새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26)를 영입했다. KBO리그 외국인 투수 중 최저 연봉이었던 애플러(40만 달러)와는 달리 신규 외국인 선수 금액 상한선을 꽉 채운 계약이다(연봉 85만 달러, 계약금 15만 달러). 또한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 로테이션을 경험해본 빅리그 톱 유망주 출신의 투수다. 키움의 후라도 영입은 KBO리그 최악의 스몰 마켓 팀이었던 히어로즈가 2023시즌 진지하게 우승에 도전함을 시사한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빅리그 데뷔 시즌까지 꾸준히 MLB 파이프라인 선정 팀 내 유망주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100이닝 넘게 던졌던 적도 있다. 후라도는 키움 구단이 여태껏 영입했던 외국인 투수 중 최고의 네임벨류를 자랑한다.
1996년 중앙아메리카의 파나마에서 태어난 후라도는 만 16세가 되던 2012년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국제 유망주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3년 도미니칸 서머 리그에서 프로 유니폼을 입고 첫 공을 던진 후라도는 그해 9경기 49이닝 47탈삼진 3볼넷 평균자책점 2.39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고, 이듬해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만 18세의 나이에 마이너 생활을 시작했음에도 단 한 번의 침체기 없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인 후라도는 2016년부터 MLB 공식 유망주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텍사스에서 세 번째로 유망한 선수로 선정되었다. 당시 후라도는 '탁월한 제구력의 투심 패스트볼, 플러스급 구종의 체인지업을 가졌다. 현재의 슬라이더보다 더 좋은 브레이킹 볼의 개발이 빅리그 선발 로테이션의 순번을 가를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만 22세 시즌이었던 2018년에 빅리그 마운드를 밟은 후라도는 12경기(선발 8경기)에 나서 54.2이닝을 던지며 5승 5패 평균자책점 5.93으로 무난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이듬해에는 2020년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로 활약한 애드리안 샘슨과 함께 후 순번 로테이션 선발을 맡았고, 32경기에 나와 122.2이닝을 던지며 7승 11패 평균자책점 5.81을 기록했다. 유망주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지적받았던 변화구 개발에 실패하며 5선발급 활약에 그쳤지만, 겨우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른 스물셋의 영건 투수인 만큼 그의 미래는 창창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풍부한 빅리그 경험을 쌓은 중앙아메리카 출신 유망주의 앞길은 팬데믹으로 인한 축소 시즌과 마이너리그 폐쇄, 그리고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먹구름이 끼고 말았다. 하지만 후라도는 여전히 젊기에 스스로 찬란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후라도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던 이듬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165경기에 달하던 메이저리그의 정규시즌을 60경기로 축소함과 동시에 마이너리그를 전부 폐쇄했다. 선발 로테이션 후 순번이었던 후라도는 빅리그 경기에 나서지도 마이너에서 뛰지도 못한 채 1년을 보내다 시즌 말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9월 1일 볼티모어전에서 2020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을 가졌던 후라도는 4이닝 9피안타(1피홈런) 2탈삼진 5실점으로 부진했고, 세 달 뒤 방출됐다. 2021년은 토미 존 수술로 인해 마이너 계약조차 맺지 못하고 한 해를 보냈다.
올해는 시즌 개막 전 미네소타 트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미네소타 산하 트리플A 구단인 세인트 폴 세인츠에서 뛰며 경기 감각을 조정했다. 부상으로 인한 두 달간의 IL 등재, 코로나19 확진 등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15경기서 57.1이닝을 던지는 동안 2할 2리의 피안타율과 0.96의 WHIP(이닝당 안타 및 볼넷 허용률)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선발 등판 시에도 소화 이닝은 적었지만, 80구 내외에서 끊었던 것으로 보아 수술 직후 시즌임을 감안해 구단 차원의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라도는 2010년대 후반 키움 최고의 우완 투심볼러였던 제이크 브리검의 상위 호환이 될 수 있다.
토미 존 수술 이후에도 별다른 구속 저하는커녕 오히려 3마일이 더 빨라진 95마일(152km/h)가량의 포심 패스트볼, 그리고 '마이너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평을 받던 140km/h 중후반의 투심 패스트볼이 주 무기다.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에 공을 집어넣기보다는 좌우 코스를 넓게 즐겨 활용하는 유형으로, 최근 등판에서는 강속구로 초반 카운트를 잡고 들어간 다음 살짝 빠지는 투심으로 범타를 유도하는 투구 전략도 자주 보였다(후라도 마이너 통산 땅볼/뜬공 비율 1.69).
4년 전 20/80 스케일에서 50점을 받았던 130km/h 중반대 체인지업은 KBO리그에서 매우 효과적인 결정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달 전 브라질과의 WBC 예선전을 비롯해 이번 시즌 내내 트리플A 수준의 타자들을 상대로 매우 막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제3 구종은 의문부호다. 과거의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슬라이더가 45점을 받았고 빅리그에서도 체인지업보다 잦은 빈도로 해당 구종을 구사했지만, 올해는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제외한 공을 거의 던지지 않다시피 했기 때문. 후라도는 커리어 내내 제3 구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매년 높은 빈도의 피홈런에 시달렸다.
제구력은 후라도의 가장 큰 강점이다. 제3 구종 문제로 2017년에 비해 팀 내 유망주 18위로 순위가 급락했던 2018년 스카우트 리포트에서도 제구력만큼은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강타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으며, 실제로도 마이너 통산 BB/9(9이닝당 볼넷 비율) 1.76을 자랑하는 컨트롤 아티스트다. 150km/h를 넘나드는 싱킹 패스트볼이 투수와 포수가 의도한 곳으로 꽂히니 적어도 마이너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었다. 후라도는 마이너리그 전체 134경기 중 104경기를 선발로 뛰었던 전업 선발투수임에도 불구하고 1.22의 수준급 WHIP을 기록했다.
키움은 FA 시장이 개막하자마자 NC 다이노스의 프랜차이즈 불펜 투수 원종현에게 4년 25억 계약을 제시하며 11년 만의 외부 FA 영입에 성공했다. 어제 아침에는 한화 이글스 이적이 확실시되어 보이던 퓨처스 FA 이형종에게 4년 무옵션 20억 딜을 제안하며, 기어이 7년 만에 다년 계약에 40억 이상을 투자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후라도에게 100만 달러(한화 약 14억)를 '풀배팅'했다. 2011년 겨울에 이택근과의 4년 50억 빅딜, 2015년 겨울 마정길·이택근과의 내부 FA 계약 당시 데려온 외국인 투수(앤디 밴 헤켄·30만 달러/션 오설리반·보장 70만 달러)를 생각해보면 올겨울이 창단 이래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는 해다. 키움 구단도 이정후가 떠나면 다음 윈나우 시즌은 까마득한 미래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스몰 마켓 팀의 '라스트 댄스'를 지켜보고 있다.
승리의 때가 왔다. 구단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전성기를 아깝게 보낸 영웅들에게 감사하자. 15년 동안 구단주 문제로 고통받으며 청춘을 희생한 모든 팬들에게도 감사하자. 히어로즈는 이제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