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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Nov 19. 2022

'스몰 마켓' 키움은 왜 35세 불펜을 25억에 샀을까

2023 KBO리그 FA 1호 계약 원종현 분석

키움 히어로즈가 금일 오전 10시에 前 NC 다이노스 불펜 투수 원종현(35)과 4년 총액 25 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2023 KBO리그 FA 1호 계약이며, 키움으로서는 2011년 겨울의 이택근(LG → 넥센, 4년 총액 50억) 이후 11년 만의 외부 FA 영입이다. 2010년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기 전까지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던 이택근을 외부 FA로 분류하지 않는다면, 15년 만의 창단 첫 외부 FA 영입이다.




● 7년간 가장 꾸준하고 건강했던 불펜 투수

(사진 출처 : NC 다이노스 공식 홈페이지)

원종현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지난 7년간 KBO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친 불펜 투수였다. A부터 Z까지 모든 필승조 구상이 변수투성이인 키움으로서는 매력적인 영입이었다.


2016~2022시즌 동안 428경기에 출장하며 리그 전체 불펜투수 중 두 번째로 많은 경기를 뛰었다. 같은 기간 최다 출장 1위인 진해수는 479번 마운드에 오르며 원종현보다 51경기 더 많이 나왔지만, 좌타자 상대 원 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된 경우가 많아 소화 이닝 자체는 115.2이닝 적었다. 소화 이닝은 448.1이닝으로, 2위 김진성보다 44이닝을 더 많이 투구한 압도적인 1위였다. 지난 7년 동안 400경기 이상 출장하며 400이닝 이상을 투구한 불펜 투수는 원종현밖에 없었다. 원종현은 2015년의 대장암 투병 이후 단 한 번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

수치상으로 톹아봐도 별다른 기복이 없었다. 원종현은 지난 7년간 꾸준히 140km/h 중후반의 빠른 공을 던졌다. 올해 평균 구속이 146.8km/h로 작년보다 0.3km/h 감소하기는 했지만 두드러질 정도의 구속 감소는 아니었다. 이번 시즌 68경기에 출장하며 2017시즌 이후 가장 많은 등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최후반까지 150km/h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졌기에 더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원종현의 22시즌 패스트볼 구종 가치는 11.7로, 구원 투수 중에서는 김재웅(14.5) 다음가는 돌직구였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구속을 유지하기 위해 제구나 구위를 희생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원종현의 9이닝당 볼넷(BB/9)은 2.42로 2017년 이후 가장 낮았으며, 9이닝당 삼진(K/9)은 7.11로 작년(7.64)에 비해 다소 감소했으나 걱정할 수준의 하락세는 아니었다. 물론 낮은 볼넷 비율과 높은 삼진율이 무조건 정교한 제구와 강한 구위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통계 사이트의 기록을 확인했을 때 이렇다 할 노쇠화의 조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척스카이돔에서 매우 강했으며 땅볼 생산에 능한 그라운드볼러라는 것 또한 강점이다. 원종현은 올해 고척돔에서 4경기에 나와 3.1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며 키움의 타선을 꽁꽁 묶었다. 커리어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20경기 21.1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0.42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반면 고척돔 밖에서 키움을 만났을 땐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지 못했다). 그라운드볼러라는 점은 내년에도 마무리 보직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뜬공 투수' 김재웅·이승호와 좋은 시너지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 언제 폭탄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불펜

(원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우리 팀에는 젊고 패기 넘치는 선수들이 많다. 좋은 코치들도 있지만, 이런 젊은 선수들에게 원종현 같이 귀감이 되는 선배가 곁에 있다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원종현 영입 이유는 세 가지" 키움 고형욱 단장 인터뷰

고형욱 키움 단장은 원종현 영입 직후 <스포티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시리즈에서 불펜 운영에 어려운 면이 있었다. 원종현이 고민을 풀어줄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고형욱 단장의 말대로 키움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후반기 들어 부쩍 빈약해진 불펜의 한계로 인해 정규시즌 4점대 투수 김동혁, 5점대 투수 양현에게 경기 후반을 맡겨야 했다.


올 한 해 키움의 허리를 받쳤던 주요 불펜 투수들의 모습을 돌이켜보자. 전반기의 키움은 1점대 좌완 필승조로 괄목상대한 유망주 김재웅·이승호, 부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재력을 터뜨린 베테랑 하영민·문성현이 대활약을 펼치면서 '한두 점 차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반드시 지켰고, 1위 SSG 랜더스를 1.5경기 차까지 추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3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갑작스레 만들어진 승리 공식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전반기에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하영민은 후반기 시작 직후 한 달간 5점대 방어율에 그쳤고, 8월 29일에 2군으로 말소된 이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복귀하지 못했다. 전반기에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대활약한 문성현은 후반기에 몇 경기 던지지 못하고 팔꿈치 염증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승호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8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다. 김태훈은 3년째 높은 WHIP(Walks Plus Hits Divided by Innings Pitched, 이닝당 안타 및 볼넷 허용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불안한 피칭을 이어갔다.


결국 1년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준 필승조 투수는 김재웅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경기 후반의 모든 부담을 짊어져야 했던 김재웅은 포스트시즌 15경기 중 11경기에 출장해 12.1이닝을 소화하며 205구를 던졌다. 키움은 최악의 경우 필승조 네 명이 내년에 모두 부진한 그림까지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김준형, 김동혁, 이명종 등 불펜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유망주 투수들이 내년에 김재웅처럼 필승조 요원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2019년 한국시리즈 진출의 주역이었던 이영준과 양현이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정후의 포스팅 자격 충족까지 단 1년 만이 남은 상황에서 키움은 반드시 윈나우 시즌을 보내야 하며, 윈나우 시즌에 유망주의 동시다발적 폭발만을 기대하며 아무런 전력 보강도 하지 않는 것은 미련함을 넘어 팬들을 기만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 FA 시장에서 불펜 최대어였던 원종현과의 계약은 키움으로서 당연한 배팅이었다.




● 2019년 겨울과는 다르다

(사진 출처 : NC 다이노스 공식 홈페이지)

3년 전 겨울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키움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게 시리즈 전적 4대 0으로 셧다운을 당했지만 어쨌든 5년 만의 KS 진출을 이뤄냈고, 그해 가을의 선전은 '언더독의 기적'이라고 불리던 올해와 달리 승리가 당연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 덕분이었으며, 이듬해 우승 트로피를 향한 도전은 당연한 행보처럼 느껴졌다. 그해 겨울, 키움은 이지영 FA 계약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며 훌륭히 오프 시즌을 망쳤다.


오프 시즌이 문을 열자마자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 홍원기와 빠르게 재계약했다. 이정후의 미국 진출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새 감독의 시행착오와 선수단 장악 과정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올린 내부 FA와는 박준태·김정후·전병우·차재용이 전력 보강의 전부였던 2년 전과 달리 외부 선수 영입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스포츠춘추>에 의하면 키움은 원종현 외에도 NC 출신 베테랑 불펜 두 명과의 계약을 앞두고 있으며, 김호은·이형종 등 외야수 자원 영입전에도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겨울과는 다르다. 키움은 전력으로 2023년을 준비하는 중이다.


원종현은 FA 계약 직후 인터뷰에서 "키움 구단이 좋은 조건으로 제안을 해주셨다. 특히 계약 기간을 4년 보장해준 점에서 마음이 움직였다"며 "이정후나 안우진 같은 뛰어난 후배 선수들이 많다. 세이브든 홀드든 어떤 상황을 맡겨주셔도 최선을 다할 것이고 함께 우승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2년 전 친정팀 창단 첫 우승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졌던 그는 이제 키움의 우승 청부사 역할을 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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