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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Dec 12. 2022

'KBO 재도전' 러셀, 2년 전과 다른 두 가지 이유

2023년 키움 히어로즈 신규(?) 외국인 타자 - 에디슨 러셀 분석

키움 히어로즈가 외국인 타자 에디슨 러셀과 총액 70만 달러에 계약했다. 다시 말해서, 2년 전 키움에서 뛰었던 애디슨 러셀이 다시 키움 구단과 70만 달러에 계약하며 KBO리그로 돌아왔다. '2016년 시카고 컵스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 '올스타 유격수 출신' 등의 타이틀을 주렁주렁 달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왔던 그가, 이제는 멕시칸 리거로서 한국 무대에 재도전하게 됐다. 키움 팬들에게는 에이스 투수 에릭 요키시와의 재계약 소식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충격인 소식이었다. 


러셀은 여타 '먹튀' 외국인 선수들처럼 한순간의 짓궂은 추억으로 남기에는 너무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 선수였다. 단순히 타격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수비면에서도 '국가대표 키스톤 콤비' 김하성과 김혜성을 각각 3루와 외야로 보내는 민폐를 끼쳤다. 그렇게 꿰찬 수비 포지션에서는 무수한 실책을 남발했다. 반년간의 활약(?)이 얼마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으면 올해 초 야시엘 푸이그가 부진하자 수많은 팬들이 '러셀 따라 멕시코로 떠나라' 같은 악담을 퍼부을 정도였다. 그런 러셀이, 이정후의 해외 진출을 앞둔 '마지막 윈나우 시즌'의 외국인 타자로 영입됐다!


키움은 과연 '이미 한 번 실패한 외국인 선수'의 어떤 면을 보고 재영입하기로 결정했을까? 구단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러셀의 2022년 멕시코 리그 활약상을 파헤쳤고, 2년 전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파악했다. 러셀은 공·수 양면에서 달라졌다. 



● '홈런 7위·OPS 8위' 멕시코 리그를 폭격하고 돌아온 올스타 유격수

(사진 출처 : Acereros de Monclova 공식 SNS)

2022년 멕시코 리그 정규시즌 전체 90경기 중 80경기에 출장하며 3할 4푼 8리의 타율과 1.120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24홈런 8도루(1도실) 74타점 72득점을 기록했다. 러셀은 2022년 멕시코에서 가장 뜨거운 유격수였다.


물론 오늘날의 멕시코 리그가 2010년대 중반의 KBO리그는 우습게 느껴질 만큼의 투신타병 리그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시즌 멕시코 리그 전체 18개 팀 중에서 가장 낮은 팀 OPS를 기록한 팀은 피라타스 데 캄페체(Piratas de Campeche)였는데, .769로 2022년 KBO리그 팀 OPS 1위 KIA 타이거즈(.746)보다 2푼 이상 높은 성적이었다. 팀 평균자책점 1위 팀 테콜로테스 데 도스 라레도스(Tecolotes de Dos Laredos)의 EAR는 4.08였으며, 선수 개인의 성적을 살펴봐도 단 한 명의 투수만이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한편 규정타석을 소화한 '4할 타자'는 네 명이나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올해 기록한 타격 성적은 분명 복기할 가치가 있었다. 3할 4푼 8리의 타율은 리그 전체 24위에 불과했지만, 빅리그 올스타 유격수 시절에도 컨택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그래도 평균 이상은 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주목할 점은 타율보다 1할가량 높은 출루율(4할 4푼 3리)과 24개의 홈런(리그 8위), 그리고 3할 3푼의 순장타율(리그 7위)이다. 러셀은 2016년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 겸 올스타 유격수로 잠재력을 터뜨렸을 당시에도 타율(.238)보다 약 1할 가까이 높은 출루율(.321), 그리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스무 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 올릴 만큼 무시무시한 펀치력을 뽐냈다. 6년 전과 비교하면 리그의 수준은 다르지만, 타격 자체는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좌·중·우 가리지 않고 홈런을 쏘아올리는 러셀. (동영상 출처 : Acereros de Monclova 공식 SNS)

멕시코 리그는 과거 메이저리그 산하 트리플A 리그 중 하나였으며, 마이너리그 개편으로 인해 완전히 독립한 오늘날까지도 더블A에서 트리플A 사이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셀은 이러한 리그에서 풀타임 유격수 뛰며 최상급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더군다나 오는 2023년에 선수로서 최상의 기량을 펼칠 스물아홉의 나이에 접어든다.


<스포츠조선>에 따르면 키움 구단 관계자는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도 있었고, 러셀 본인이 스프링캠프 준비도 제대로 못 했다"며 "내년에 이정후·김헤성 등 젊은 선수들과 함께 준비하면 팀에 잘 녹아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겨우내 착실히 시즌을 준비한 '빅리그 올스타 유격수'는 다를 것이다. 




● 2년 전 돌 글러브, 멕시코에서 수비 기량이 만개하다

(자료 출처 : 베이스볼 레퍼런스)

2022년의 러셀에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시절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수비"다. 메이저·마이너 통산 보다 높은 RF/9(Range Factor/9, 수비 범위를 나타내는 지표)와 전성기 시절(2016년, .975)과 비슷한 수비율(.967)을 기록한 것이다.


러셀은 빅리그 주전 유격수로 뛰던 전성기 시절에도 부족한 컨택과 선구안을 한 시즌 20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펀치력과 메이저리그 최상급의 수비로 만회하던 선수였다.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2016년에는 내셔널리그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최종 후보에 선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2016시즌 이후 원래도 불안했던 타격과 함께 수비마저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컵스 유니폼을 입었던 2019년에는 수비면에서 커리어로우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는 나름 올스타 유격수 출신이며 컵스의 108년 만의 우승을 함께했던 러셀이 논 텐더로 방출됨은 물론 이듬해 봄에 어느 팀에게도 스프링 캠프 초청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2년 전 한국 땅을 밟았을 당시에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기량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부실한 시즌 준비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끔찍한 수비를 남발했다. 2루수로 28경기에 출장해 191.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여덟 개의 실책을 저질렀고, 유격수로 경기에 나올 때는 실책은 적었지만 끔찍한 수비 범위로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팀의 상위권 경쟁을 방해했다. 결국 러셀은 2020시즌이 끝난 뒤 타격과 더불어 'KBO리그에서도 안 통하는 수비'로 인해 '0할 타자' 테일러 모터도 해냈던 마이너 계약에 실패하며 멕시코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2022시즌 애디슨 러셀의 멕시코 리그 수비 하이라이트 모음. (동영상 출처 : Acereros de Monclova 공식 SNS)

그랬던 러셀의 수비력이 올해 들어 180도 달라졌다. 정규시즌 80경기 중 75경기를 선발 유격수로 출장하는 강행군을 소화하면서도 실책 비율, 수비 범위 양면에서 모두 안정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러셀의 2022년 유격수 부문 RF/9는 5.18로,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4.02)은 물론 마이너리그 시절(4.24)과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치였다. 레인지 팩터만 놓고 보면 러셀은 커리어를 통틀어서 올해 가장 넓은 수비 범위를 뽐냈던 셈이다. 단순 이닝당 실책 비율을 의미하는 수비율 또한 .967(568.2이닝 11실책)로 나쁘지 않았다. 올해 KBO리그에서 러셀보다 높은 수비율을 기록한 유격수는 김재호(.980), 오지환(.974), 심우준(.970), 김주원(.969)으로, 고졸 2년 차 신인 김주원을 제외하면 모두 오랜 기간 동안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히던 선수들이다.


고형욱 단장은 "외국인 타자는 어떻게 적응하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며 키움 구단이 러셀의 한국 생활 적응에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김휘집, 신준우 등 유격수 포지션에 있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러셀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전성기 시절과 같은 수비력을 보여준다면, 분명 창단 첫 우승이라는 단기적 목표는 물론 '유망주의 성장'이라는 장기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러셀에게는 오답 노트가 있다

(사진 출처 : Acereros de Monclova 공식 SNS)

앞서 말했듯 러셀은 이미 KBO리그에서 뼈아픈 실패를 겪은 바 있다. 팬데믹 직전의 논텐더 방출과 스프링 캠프 미초청의 굴욕으로 인해 한 시즌을 오롯이 버틸 몸을 만들지 못했다. 미국과 전혀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진 나라에서 홀로 생활하며 향수병까지 겪었다. 고척 스카이돔의 인조 잔디는 안 그래도 수비 기량이 떨어진 선수를 돌 글러브로 만들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러셀은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선수가 실패하게 되는 모든 요인을 미리 겪었다. 그는 '2년 전 자신'이라는 최고의 오답 노트를 들고 키움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올해 키움의 한국시리즈에서 세 번째 고배를 마시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부실한 유격수 수비였다. 신준우와 김휘집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졌으나 당장의 가을 무대에서의 맹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러셀 재영입은 황당한 선택이 아닌 과감한 투자다. 물론 러셀 자신에게도 절호의 기회다. 올 한 해 동안 보여준 모습만 그대로 보여준다면, 내년 겨울에는 이정후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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