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성실 Apr 10. 2023

위기의 순간에는 언제나 고졸 신인이 있었다

[지난주 히어로즈] 키움 히어로즈 김동헌, 팬들을 위로한 강렬한 데뷔

이정후의 해외리그 진출을 앞두고 윈나우 시즌을 선언한 키움 히어로즈가 개막 직후 여덟 경기서 3승 5패에 그쳤다. 타선은 겨우내 야심 찬 전력 보강이 무색하게도 각종 지표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지난 일주일 동안 키움 팬들의 마음을 위로한 것은 고졸 신인 포수 김동헌의 맹활약이었다.


1승 5패, 주중 3연전 루징, 주말 3연전 피스윕, 4연패. 직전 시즌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 지난 일주일 동안 거둔 성적의 결과다. 개막 2연전 직후 단독 1위였던 순위는 꾸준한 추락을 거듭한 결과 단독 7위까지 떨어졌다. 3승 5패의 개막 직후 8경기 결과는 '홈런왕' 박병호의 FA 이적으로써 최약체로 평가받던 작년(4승 4패)보다 못하다. 지난가을의 기세를 몰아 창단 첫 우승을 노리고 있던 키움으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시작이다. 


투·타 지표 모두 작년 이맘때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팀 타율(.201 → .228)과 OPS(출루율+장타율, .559 → .581)은 소폭 상승했으나 홈런(5개 → 1개)과 타점(20개 → 17개)은 오히려 줄어든 모양새다. 팀 평균자책점은 2.88에서 4.24로 크게 올라갔다. 마운드는 두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와 에릭 요키시가 부진한 가운데 11년 만의 외부 FA 영입으로 영입한 셋업맨 원종현이 장기 부상으로 이탈하며 전체적으로 헐거워졌다. 타선은 지난해 팀 내 결승타 2위였던 '키 플레이어' 송성문의 중수골 골절상과 KBO리그 간판타자 이정후의 슬럼프가 겹친 것이 뼈아프다.


가장 불안한 포지션은 바로 포수다. 주전 포수 이지영이 공·수 양면에서 부진한 가운데 뾰족한 플랜 B가 없다. 키움은 시즌 초반 '20홈런 포수' 박동원을 KIA 타이거즈로 보낸 지난해에도 백업 포수를 찾지 못해, 한 번도 900이닝 이상을 소화한 적이 없는 만 36세의 노장 포수에게 1108.4이닝을 맡겨야 했다(포스트시즌 포함). 이지영의 부진이 일시적인 부침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키움에는 그에게 휴식을 부여해줄 '두 번째 포수'가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키움은 창단 이래 가장 끔찍한 포수난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창단 이래 가장 끔찍한 포수난을 보내게 될 터다. 만약 키움이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김동헌을 지명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 충암고 '눈물 왕자', 키움의 '어린 왕자'로 거듭나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고교 시절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주목받았던 김동헌은 청룡기 결승전에서의 눈물로 수많은 야구팬의 가슴을 울렸다. 이제 버건디 마스크를 쓰게 된 김동헌은 고척돔에서 박동원 이후 이렇다 할 포수 유망주를 구경하지 못한 키움 팬들을 울리는 중이다.


올해가 프로야구 선수로서 데뷔 시즌인 김동헌은 시범경기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제 기량을 펼치며 코칭 스태프와 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타석에서는 2할 6푼 3리의 타율로 포수로서 준수한 타율을 올림은 물론, 2루타 하나와 4개의 타점을 기록함으로써 장타자와 해결사로서의 모습도 내비쳤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홈 플레이트 위에 섰을 때는 강하고 정확한 송구로 자신을 얕본 상대 팀 주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활약은 마땅한 백업 포수가 없는 팀 사정과 맞물려 '고졸 신인의 개막 엔트리 포함'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규시즌이 되어서도 김동헌의 활약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제까지 총 네 경기에 나선 김동헌은 일곱 번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두 개의 볼넷을 얻어내고 3개의 안타를 만들며 6할 타율과 1.314의 OPS를 기록했다. 타격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빛난 것은 타격장갑이 아닌 포수 글러브를 손에 꼈을 때였다. 경기 후반 백업으로 출장할 때도 탄탄한 기본기를 선보인 김동헌은 데뷔 첫 선발 출장 경기에서 '퓨처스리그 통산 104도루' 한석현의 도루를 저지하는 대형 사고를 저질렀다.


지난해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와 WBSC U-18 야구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주전 포수로 활약한 김동헌은 엄형찬(경기상업고등학교), 김범석(경남고등학교)과 함께 '고교 포수 빅 3'로 주목받았다. 타자로서는 3할 3푼 3리의 타율과 32사사구·12삼진의 볼넷/삼진 비율, 그리고 .981의 OPS로 타선을 이끌었다. 포수로서는 평균 1.9초대의 팝 타임과 훌륭한 어깨, 프레이밍으로 같은 팀의 1라운더 김건희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무엇보다 김동헌의 가치를 빛나게 해줬던 것은 리더의 자질을 갖춘 멘탈리티다. 모 스카우트는 드래프트 전 김동헌에 대해 "분위기가 얼어붙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유쾌하게 환기할 줄 아는 선수"라고 평했다. 전상일 <파이낸셜뉴스> 기자 또한 "감독, 코치, 투수들에게 이쁨받을 스타일"이라며 김동헌의 멘탈을 칭찬했다. 제77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는 사구 후 햄스트링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더그아웃을 향해 포효하고, 경기 종료 후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등 남다른 정신력을 보여 수많은 야구팬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충암고의 '눈물 왕자'가 키움의 '어린 왕자'로 거듭나는 데는 개막 후 단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 이정후, 박찬혁, 김동헌... 위기의 순간에는 언제나 고졸 신인이 있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017년, 정규시즌 개막 직전 주전 중견수 임병욱이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하자 이정후가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빼빼 마른 체구에 양 뺨에는 여드름 자국이 거뭇거뭇 남아 있었던 '소년' 이정후는 그해 고졸 신인 최초 전 경기 출장·3할 타율 기록을 달성함은 물론 신인 최다 안타·득점 등의 기록도 모조리 경신하며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2022년, 박병호가 KT 위즈로 떠난 뒤 생긴 빈자리를 아무도 메우지 못하자 박찬혁이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역대 여섯 번째 고졸 신인 개막전 첫 타석 안타, 역대 최초 고졸 신인 개막전 멀티히트의 기록과 함께 산뜻하게 데뷔 시즌을 시작한 박찬혁은 4월 한 달 동안에만 다섯 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2023년, 그 누구도 이지영의 백업 포수로서 만족스러운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자 김동헌이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던 2017년, 전성기 시절의 태평양 돌핀스급 물타선을 뽐냈던 2022년처럼 올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는 언제나 고졸 신인이 있었다. 먼 미래에 23시즌의 김동헌은 어떤 영웅으로 기억될까?


지난 40년간 KBO리그에서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쥔 포수는 단 세 명(1990 김동수·1999 홍성흔·2010 양의지)이었다. 순수 고졸 신인 포수가 데뷔 시즌에 신인왕이 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상원 키움 스카우트 팀장이 말했듯, "우리는 반대로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