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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Apr 17. 2023

'이정후 공백 걱정 마!' 고척에 1차지명 듀오가 떴다

[지난주 히어로즈] 04.11 ~ 04.16, 박주홍&임병욱

개막 직후 1할 타율에 허덕였던 이정후의 방망이에 다시 불이 붙었다. 14일 고척 KIA전에서 4타수 3안타 1볼넷 4타점으로 2할 타율을 복구하더니, 지난 16일 경기에서는 연장 10회 말에 끝내기 투런포를 쏘아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을 신고했다. 이대로면 이정후가 이번 시즌 역시 '이정후'스러운 성적으로 마무리한 다음 포스팅 제도로써 메이저리그로 떠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정후의 일시적인 부진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거나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에 한없이 생소한 1할대 타율이 스포츠 포털의 기사란과 팬들의 입방아에서 잠시 오르내렸지만, 그뿐이었다. 이정후는 지난 6년간 한 번의 부침도 없이 매 시즌 커리어하이를 경신한 '검증된 슈퍼스타'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정후가 해외 구단으로 이적한 이후 키움 히어로즈의 외야진이 어떤 성적을 거둘지에 대해 진지하게 예상하는 여론 또한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이정후를 전후로 아무도 육성하지 못한 키움의 외야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 동안 잠실야구장과 고척 스카이돔에서 키움의 타선을 이끈 두 타자의 활약이 팬들의 마음을 헤집어놓았다. '내년부터는 당분간 하위권에서 탱킹이나 하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에 빠졌던 키움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최근 다섯 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바람의 손자'보다 OPS(출루율+장타율)나 안타 수가 더 많았던 이들의 이름은 각각 박주홍, 임병욱. 이정후와 마찬가지로 키움의 1차지명을 받았던 사내들이다.




■ '나는 포스트 강정호, 너는 포스트 박병호'... 그들을 기다린 것은 끝없는 터널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임병욱은 '포스트 강정호'였다. 드래프트 지명자의 평균 신장이 182.7cm였던 시절에 180cm 중·후반의 우월한 신체 조건을 십분 활용해 고교야구를 폭격했다. 원래 성남고등학교의 '5툴 플레이어 외야수' 배병옥(現 배정대)를 지명할 예정이었던 키움은 1차지명 직전 방침을 선회해 임병욱의 이름 석 자를 불렀다. 지명 직후 인터뷰에서는 임병욱에 대해 "강정호의 대를 이어줄 차세대 유격수"라고 콕 집어 이야기했다. 


임병욱의 주가는 끝을 모르고 상승했다. 1차지명 직후 열렸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4할 7푼 4리의 타율과 1.108의 OPS, 3개의 도루로 덕수고등학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3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는 .333 .450 .515 1홈런 8타점 4도루의 아름다운 성적을 올림으로써 한국 대표팀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베스트9에 선정되었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4년에는 시범경기에서 SK 와이번스(現 SSG 랜더스)의 우완 에이스 윤희상을 상대로 쓰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는 잘 치고 잘 달렸다. 수비는 느낌표가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으니 괜찮았다. 강정호가 해외로 떠나고 나면 임병욱이 1군 주전 유격수로 고정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갓 고등학교 교복을 벗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길은 마냥 부드럽고 상냥한 꽃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후 9년간 임병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단길이 아닌 가시밭길이었다. 프로무대에서의 첫 안타를 대타 쓰리런으로 장식한 임병욱은 닷새 뒤 발목 골절상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그 사이에 '차기 유격수' 자리는 드래프트 동기 김하성이 가져갔다. 어느새 190cm를 넘겨버린 장신으로 인해 내야 수비를 보기도 어려워 외야로 전향했다. 2016년에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주전으로 자리 잡나 싶었더니 2017시즌 개막을 앞두고 또다시 장기 부상을 끊었다.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사이에 '팀내 최고의 외야 유망주' 타이틀마저 3년 후배 이정후가 가져가버렸다. 


2018년에는 주전 중견수로 뛰면서 어느 정도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눈앞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재야의 고수'라고 불리던 덕 래타에게 겨우내 개인 교습을 받았다. 덕 래타는 사기꾼이었다. 이듬해 임병욱은 30홈런 100타점 대신 무홈런 100삼진을 기록했다. 아마도 절치부심했을 2020년에도 장기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합격해 지난 2년간 퓨처스리그 경기를 뛰며 병역의 의무를 수행했다. 지난해에는 키움의 외야 뎁스가 어느 때보다 부실한 상황에서 임병욱의 시즌 말 전역 후 합류가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전역 20일 전에 손 부상을 당하며 그대로 2022년을 마감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박주홍은 '포스트 박병호'였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383 .548 .716의 슬래시라인과 다섯 개의 홈런으로 고교야구를 폭격하면서 일찍이 초고교급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펀치력은 물론이요, 발도 빠른데 32 4사구 7삼진의 볼넷·삼진 비율을 기록할 정도로 선구안까지 뛰어났다. 도저히 망할려야 망할 수 없어 보였다. 2023년 현재 장현석, 황준서 등의 유망주에게 '한현석(한화+장현석)', '두준서(두산+황준서)' 같은 별명이 붙어있듯, 당시 박주홍의 또한 '엘주홍'이라고 불렸다.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서울 구단 중 제일 먼저 1차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LG 트윈스의 팬들이 박주홍의 LG행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LG는 구단의 유구한 약점인 홈런 문제를 해결해줄 박주홍 대신, 드래프트를 앞두고 가치가 급상승한 휘문고등학교의 우완 파이어볼러 이민호를 지명했다. 그렇게 박주홍은 '큠주홍'이 되었다.


당시 키움에는 1군은 물론 2군까지 샅샅이 찾아봐도 풀타임 2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거포 유망주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팬들이 박주홍에 대해 거는 기대는 작지 않았다. 마침 KBO리그는 3년 연속으로 1년 차 고졸 신인을 신인왕으로 배출한 상황이었다(2017년 이정후 - 2018년 강백호 - 2019년 정우영). 고형욱 스카우트 상무(現 단장)은 "이정후와 강백호의 장점을 섞은 느낌"이라며 "둘의 신인왕 계보를 이을만한 타자"라고 칭찬했다. 박주홍 또한 "잘하다 보면 주전도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인왕도 한번 노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당찬 포부를 밝혔다. 지금도 그렇지만 3년 전에도 키움의 외야는 이정후의 한 자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확고한 주전이 없는 '기회의 땅'이었다. '고교야구 오티즈' 박주홍에게 큰 기대가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박주홍은 프로 데뷔 이후 성공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퓨처스리그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외야 뎁스가 워낙 부실한 탓에 매년 1군에서도 기회를 받았으나 공·수 양면에서 아직 시간이 필요함을 피력했을 뿐이었다. 지난 3년 동안 키움에는 퓨처스리그를 폭격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합격한 이주형, 데뷔 시즌부터 1군에서 펀치력을 과시한 박찬혁 등 여러 거포 유망주가 등장했다. 그 사이에서 박주홍은 유독 제자리걸음 중인 것처럼 느껴졌다.




■ 1,658일 만의 홈런, 데뷔 첫 1군 3안타 경기... 치타 한 쌍이 달리기 시작했다

"병욱단, 점호 시작."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빠르다고 하는 경주견이라고 해봐야 야생의 치타에게는 고작 개일 뿐이다. 그는 현재 치타처럼 고고하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경주견들은 직감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5년 전 이대호가 개막 직후 잠시 부진할 무렵, 롯데 자이언츠 팬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이다. 당시 분노한 팬에게 치킨 투척 테러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던 이대호는 몇 달 뒤 언제 부진했냐는 듯 37홈런 111타점 OPS .987의 훌륭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023년 4월, 연거푸 덮쳐오는 실패의 파도 속에서도 끝끝내 방망이를 내려놓지 않았던 두 치타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사실 부상을 당하면 어느 선수들이나 다들 많이 힘들다. 다시 감도 찾아야 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다시 일어서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한 게 제일 안타깝다. 지금은 부상이라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 부분을 꾸준함으로 채우고 안정감이 생길 수 있도록 하다 보니 부상에 대한 생각도 사라졌다."


겨우내 철저히 몸 관리에 임했던 임병욱은 비시즌 기간부터 시범경기까지 아무런 부상 없이 건강한 몸 상태로 전역 후 첫 풀타임 시즌을 맞이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시범경기 때 31타석 31타수 5안타 11삼진의 성적에 그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런데 주전 외야수 한 명이 허리 통증으로 선발 출장을 하지 못하면서 빠르게 1군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스타팅 라인업에서 제외된 선수는 6년 전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개막 엔트리에 승선했던 이정후였다.


이번에는 부상이나 부진으로 허무히 기회를 날리지 않았다. 전역 후 첫 1군 경기 출장이었던 4월 5일 고척 LG전에서는 무안타로 부진했으나, 이튿날 곧바로 전역 후 첫 안타를 신고했다. 지난주에는 거의 매 경기마다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특히 15일 고척 KIA전에서는 신인왕 유력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슈퍼루키' 윤영철의 슬라이더를 가볍게 걷어 올려 1,658일 만에 담장을 넘겼다. 


경기 후 임병욱은 약 5년 만의 홈런에 대해 "투수와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했는데 받아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쳤는데 그렇게 멀리 갈 줄 몰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임병욱에게는 아직 얼떨결에 방망이를 휘둘러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단상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단상 인터뷰를 언제 해볼까 했는데 오늘 하게 돼서 정말 기분 좋다. 잠깐 잘해서는 안 되고 꾸준하게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준비 잘해서 매일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


박주홍은 재작년 겨울부터 부던히 시즌을 준비했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타격으로는 자신의 수비 능력이 용납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비시즌 내내 박정음 코치와 함께 외야 수비 훈련에 매달렸다. 그 결과 1군에서 외야수로 기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난해 정규시즌이 끝난 뒤 질롱 코리아 선수로서 파견됐던 호주리그에서는 프로 입문 후 선구에 과하게 집중하던 모습을 버리고 매 타석마다 과감하게 방망이를 돌렸다. 고교 시절의 좋았던 타격감을 되찾으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그리고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다. 퓨처스리그에서도 한 시즌에 5개 이상 넘겨본 적이 없는 홈런을 짧은 기간 동안 3개나 만들어낸 것이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는 홍원기 감독에게 "임병욱과 함께 기량 향상이 눈이 띄었다"라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 


이제는 그 노력 결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아직 8경기 21타석으로 표본이 매우 적지만 .294 .381 .412의 비율 스탯은 분명 좋은 스타트다. 특히 현재까지 기록한 5안타 중 3안타가 14일날 KIA의 외국인 에이스 아도니스 메디나의 평균 148km/h 고속 싱커를 받아쳐 만든 안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 창단 첫 우승? '임-박' 듀오의 임박한 50홈런 합작과 함께한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지난 시즌의 키움 히어로즈는 두산 베어스와 함께 리그에서 '스탑갭 자원'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팀이었다. 부족한 외야 백업 자원과 내야 유틸리티 백업 요원은 다른 구단의 방출생(김준완, 강민국)으로 메웠다. 주전 1루수는 KIA에서 10억 원,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박동원 트레이드의 반대급부로 넘어온 백업 요원 김태진이었다. 이지영과 수비이닝을 양분하던 박동원의 공백은 2018년 이후 1군에서 200이닝 이상을 소화해본 적 없는 김재현의 출장을 늘림으로써 해결(?)했다. 


이들이 타격면에서 모두 대체 요원 수준의 성적을 올리는 가운데 리그 MVP급 타자인 이정후와 국가대표 내야수 김혜성, 그리고 A급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의 방망이만으로 시즌을 이끌어갔다. 그야말로 극한의 가성비 전략으로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세 번째 준우승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올해는 설상가상으로 'A급 외국인 타자'까지 불미스러운 일로 팀을 떠났다. 물론 애디슨 러셀이 A급 성적을 올릴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이 크다. 키움 입장에서는 이정후가 떠나기 전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사람 몫을 하는 타자가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형종에게 4년 20억의 거금을 안겨가며 버건디 유니폼을 입혔다. 그리고 임병욱과 박주홍을 계속해서 스타팅 멤버로 기용하는 중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들은 각각 '포스트 강정호', '포스트 박병호'로 기대받던 이들이다.


영웅군단의 방망이로부터 홈런의 씨가 마른 지도 너무 오래됐다. 이제는 포텐 폭발이 임박한 '임-박 듀오'와 함께 리그 최고의 강타선을 다시 구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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