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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y 22. 2023

학사 THE ROCK!

[지난주 히어로즈] 05.16 ~ 05.21 키움 히어로즈 김성진

타선과 마운드는 개막 시리즈부터 계속해서 엇박이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까지만 해도 지난 6년과 마찬가지로 뜨겁던 이정후의 방망이는 개막 직후 6주 가까이 침묵했다. 수비도 투수들과의 호흡이 안 맞았다. 18승 24패, 1위와 9게임 차 단독 8위. 윈나우를 천명했지만 5위권에 드는 것조차도 한참은 멀어 보이는 경기력. 하지만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이들 모두 이대로 시즌을 끝내버리긴 싫을 테다. 적어도 '학사 투수'의 오른팔은 그렇게 소리치는 듯했다. 




● 107명 중 20명,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학사 투수'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키움 히어로즈는 지난 10년간 드래프트에서 107명의 신인 선수를 지명하는 동안 총 20명의 대졸 선수를 호명했다. 김성진은 5월 22일 현재 그 중에서 유일하게 키움의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졸 드래프티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경쟁력은 절대적 약세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빼어난 기량의 고등학생 선수들이 대학 졸업장을 따는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버는 길을 택하면서, 대학야구의 입지가 '패자부활전' 수준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야구의 전반적인 기량이 떨어졌다고 평가받았던 2010년대 전후에 무수한 대졸 선수들이 구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기고 사라지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각 구단 또한 군 복무 문제와 짧은 서비스 타임을 감수하며 많은 대졸 선수를 뽑으려 하지 않았다. 이는 2015년까지만 해도 절반을 웃돌았던 대졸 지명자의 비율이 20% 미만까지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즉전감보다는 잠재력이 큰 유망주를 선호하는 키움은 지난 10년 동안 10개 구단 중에서도 가장 적은 수의 대졸 선수를 뽑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됐으며, 대부분의 선수들이 5년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방출 통보를 받았다. 주전은커녕 백업으로서 입지를 다진 선수조차 아무도 없었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부터 2023년 신인 드래프트까지 키움의 지명을 받은 대졸 선수 중 가장 높은 누적 s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쌓은 선수는 2020년과 2021년에 1군 불펜에서 추격조 역할을 담당하며 38경기 동안 46.1이닝을 던지고 2승 2홀드 평균자책점 5.63을 기록했던 임규빈이다(0.41).


김성진은 이러한 '고졸 천국 대졸 지옥' 키움의 부름을 받은 몇 안 되는 대학 졸업자 중 하나다.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창단 이후로 범위를 확장해도 7명밖에 안 된다는 '히어로즈 출신 상위 라운드 대졸 선수'이기도 하다(2021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데뷔 시즌인 2021년부터 지난 21일 광주 KIA전까지 총 86경기에 출장한 그는 '히어로즈 대졸 지명자 투수 최초 1군 통산 1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팬들은 이 남자를 경외의 마음을 담아 '학사 투수'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 투심·스위퍼 장착하고 '대졸 유망주'에서 '학사 히어로'로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지난 2년 동안의 김성진은 빠른 공과 평범한 제구력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리는 '대졸 유망주'였다. 겨우내 투심 패스트볼과 스위퍼를 장착하고 돌아온 2023년의 김성진은 이승호·문성현·김태훈·원종현의 공백을 메우는 '학사 히어로'로 거듭났다.


계명대학교 재학 시절 평균 144km/h, 최고 151km/h의 강속구를 던지며 이름을 알린 김성진은 2021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대졸 최대어로 평가 받았다. 드래프트 직후 이상원 스카우트 팀장이 "3라운드에서 지명한 것이 행운"이라며 기쁜 내색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까지의 성적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데뷔 시즌부터 1군에서 중용 받았지만 2년간 69경기서 63.1이닝 71피안타 55실점에 그쳤다. 대학 시절 강점이었던 강속구가 프로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2022년 김성진의 포심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4할 4푼 4리였다.


어쩌면 그저 1년 내내 운이 나빴던 것일 수도 있다. 데뷔 시즌에는 포심의 피안타율이 2할 8푼 9리로 2022년보다 2할 가까이 낮았던 반면, 지난해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비율)은 3할 9푼 4리로 데뷔 시즌보다 1할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김성진 또한 정규시즌 종료 후 인터뷰에서 "공의 빠르기나 구위는 올해가 더 좋았다"며 "아픈 곳은 없었는데 던질 때마다 '왜 이렇게 안 풀리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김성진은 2023년을 앞두고 운에 기대는 대신 과감한 변화를 택했다. 자신에게 프로 유니폼을 선물해 준 포심을 포기하고 투심과 스위퍼를 장착한 것이다. 


투심은 투수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다. 포심보다 움직임이 심해 범타를 유도하기에는 좋지만 빠르기 자체는 2~5km/h 정도 느리다. 제구가 안 돼 한복판에 들어오면 같은 코스에 포심을 던졌을 때보다 장타를 맞을 가능성도 높다. 스위퍼는 일반 슬라이더보다 좌·우 움직임이 두 배가량 크며 뜬공 유도율 역시 슬라이더보다 높다. 그러나 공의 속도가 슬라이더보다 5km/h 정도 낮기 때문에 제구가 안 되면 플라이볼이 아닌 홈런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실제로 스위퍼의 유행을 이끌고 있는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또한 140km/h의 고속 스위퍼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MLB 데뷔 이후 가장 높은 피홈런 비율을 기록 중이다.


김성진은 이 모든 리스크를 짊어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150km/h 강속구를 던질 것으로 기대받던 파이어볼러 유망주는 이제 평균 143.7km/h의 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 지난해 134.5km/h였던 슬라이더의 평균 구속은 스위퍼 장착과 함께 4km/h 이상 떨어졌다. 대신 구속을 제외한 모든 지표가 좋아졌다. 1.15의 평균자책점, 1.15의 WHIP(이닝 당 안타 및 볼넷 허용률), 2할대 피장타율과 2.87의 BB/9(9이닝당 볼넷 허용률) 모두 커리어하이다. 안타는 물론 장타 허용률 또한 극적으로 줄어들었으며, 컨트롤이 어려운 구종을 구사함에도 오히려 제구력이 좋아졌다.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다. 지난 주말 3연전에서는 19일과 21일 경기에 출장해 두 경기 모두 1이닝 동안 2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특히 21일에는 7회말 1대 0의 매우 타이트한 상황에서 고종욱-황대인-이우성으로 이어지는 강타선을 막아내며 홀드를 챙겼다. '3년차 대졸 유망주' 김성진이 부상으로 이탈한 문성현·이승호, 트레이드로 이적한 김태훈의 공백을 메우는 '데뷔 3년차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 김성진 THE ROCK!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포항제철중학교 시절까지 내야수로 활약했던 김성진은 고등학교 진학 후 투수로 뛰고 싶다는 이유로 1년을 유급했다. 170cm, 60kg의 작은 체격이었던 그를 마운드 위에 올려주는 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년간 체격을 키우는 데만 집중해 179cm·63kg의 몸을 만들고 전학까지 하면서 염원하던 투수 글러브를 왼손에 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부산정보고등학교의 주전 투수로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3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치며 미지명되고 말았다. 대학 진학 이후 첫 시즌에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한 것으로도 모자라 마지막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재능이나 실력이 부족하다며 주저앉는 대신, 여태 해왔던 것보다 훨씬 독하게 운동했다. 매일 6~8끼니씩 식사했고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으로써 체중을 12kg 늘렸다. 훈련을 모두 마친 뒤에도 일본의 야구 동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투구폼을 교정했다.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상원 팀장의 극찬을 받으며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받은 '대졸 최대어' 김성진이 탄생한 비결이다.


대학 시절 '강속구 투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항상 그를 따라다녔던 '성실함'은 프로 입단 이후에도 여전하다. 팀 동료들이 김성진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도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김성진은 최근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창민 선배님이 항상 '네 볼이 제일 좋다'라고 말씀해주신다. 선배 덕에 조금씩 마인드가 바뀌고 있다"면서 "내가 궁금한 것이 많아서 누구에게든 많이 물어보는데 다들 방향을 잡아주려 한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어쩌면 10년 전 작은 체구를 탓하며 투수의 꿈을 포기할 수도 있었던 고등학교 1학년은 스스로 단단해지고 단단해진 끝에 1군 1점대 불펜투수의 자리까지 왔다. 감정은 전염된다. 언제나 '이대로 끝나기는 싫다'라고 외치는 듯한 그가 지난 21일 경기에서 보여준 쾌투 또한 8위까지 몰린 히어로즈 선수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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