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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y 15. 2023

혜성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졌냐고? 천만에!

[지난주 히어로즈] 05.09 - 05.14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필승조 김태훈을 내주며 데려온 이원석의 방망이가 차갑게 식었다. 20억 타자 이형종은 34경기서 6개의 병살을 기록한 끝에 주말 3연전에서 벤치를 달궜다. 이정후의 타율은 여전히 멘도사 라인이다. 그 모든 if가 최악으로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지난 일주일의 밤은 무섭지 않았다. 김혜성이 키움 히어로즈의 주전 2루수니까.




● 지난 일주일의 밤은 무섭지 않았다, 김혜성이 키움에 있기에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023년의 김혜성은 명실상부한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중 하나다. 5월 15일 현재까지 35경기에 출장해 142타수 50안타 12도루 28득점 타율 3할 5푼 2리를 기록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만들었음은 물론 일요일 경기에서의 멀티히트로써 KBO리그 타자들 중 처음으로 정규시즌 50안타의 고지를 밟았다. 타율과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리그 2위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26타수 11안타 4타점 5득점 타율 4할 2푼 3리,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983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팀 내 타자 중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쳐냄은 물론 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손아섭, 권희동과 함께 최다 안타 공동 1위였다.


안타로써 루상에 출루하면 혜성과 같은 주루 플레이로 선수단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12일 고척 NC전에서는 7회말 2대 2 동점 상황에서 중견수 앞 안타로 출루한 뒤 후속타자 에디슨 러셀의 좌익수 왼쪽 안타가 나오자 홈까지 질주했다. 박재상 3루 주루코치가 양손을 번쩍 들어 멈춤 싸인을 보냈으나 이를 모른척한 김혜성은 홈으로 쇄도함으로써 리드를 가져왔다. 이튿날 경기에서는 한 점 차로 앞선 3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이어지는 러셀의 좌중간 안타를 틈타 득점했다. 이날 키움은 NC의 영건 에이스 송명기를 상대로 3회에만 3득점 하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굳혔다. 현역 시절 '대도'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대형 해설위원은 김혜성의 주루 플레이에 대해 "주력 자체만 보면 A급이지만 턴 동작과 슬라이딩은 리그 최고"라고 극찬했다.


한 가지 슬픈 점은,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김혜성의 야구를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같은 팀 동료 이정후, 안우진과 함께 해외 스카우트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예비 메이저리거이기 때문이다. 지난 지난 2년간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2루수와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모두 수상한 김혜성은 2020 도쿄 올림픽과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또한 모두 출전하며 전 세계 야구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 혜성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졌냐고? 천만에!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여기까지만 보면 김혜성을 처음부터 그저 찬란히 빛나던 스타 플레이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김혜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신인 시절부터 동갑내기 선수들과 같은 포지션의 선배들의 후광에 가려졌다. 신인 선수라면 응당 저지를 법한 실수도 남들과 비교당하며 지독히 비난받았다. 모두가 꺼리는 궂은일은 전부 '막내'인 그의 몫이었다. 그 모든 실수와 고난이 있었기에 오늘의 단단한 김혜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넥센 히어로즈(現 키움)의 지명을 받은 김혜성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특급 기대주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정후와 함께 2017년 드래프트 신인으로서 소속팀의 마무리 캠프에 참여할 정도였다. 데뷔 첫해부터 2군 팀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찬 김혜성은 퓨처스리그에서 3할 타율과 19개의 도루, 0.8의 OPS로 맹활약했다. 


신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출발이었다. 유일한 문제라면 넥센의 키스톤 콤비가 리그 최고의 교타자였던 20대 후반의 서건창과 만 22세의 나이에 3할-20홈런-100타점 고지를 밟은 김하성이었다는 것이다. 지명 당시에만 해도 3년 전 김하성이 그랬던 것처럼 이정후의 '차세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위협할 것처럼 보였던 그는 화성에서 드래프트 동기가 '신인왕 0순위'로 맹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김혜성은 2017년 1군 16경기에서 16타수 3안타, 타율 1할 8푼 8리에 그쳤다.


2년 차 스프링캠프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운 김혜성은 1군 백업 내야수로 시즌을 시작해 풀타임 주전 2루수로 2018년을 마쳤다. 만 19세의 나이에 1군 144경기 중 136경기에 나서며 기록한 2할 7푼의 타율과 31개의 도루는 분명 굉장한 성과였다. 그러나 같은 해 데뷔한 강백호가 역대 고졸 신인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며 신인왕 타이틀을, 이정후가 국가대표 선발과 국가대표 선발의 영예를 누리며 스포트라이트를 전부 가져갔다. 이 2년은 아쉬움은 '잠깐의 불운'이 아닌 '수난의 시작'이었다. 


2019시즌 서건창이 부상을 털고 돌아오면서 2루와 유격수 자리를 오가야 했던 김혜성은 이듬해 급기야 센터라인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외국인 타자 문제 때문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테일러 모터가 10경기 만에 방출당하며 생긴 3루 공백을 메워야 했다. 여름부터는 대체 외국인 선수로 '유격수' 에디슨 러셀이 영입되며 내야에서 뛸 자리를 잃었다. 2021년에는 만 22세의 나이에 KBO리그 역대 최연소 주장이 됐다. 박병호가 부진과 부담 속에서 주장직을 내려놓고, 선수단이 차기 주장 투표에서 김혜성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였다. 


지난해에는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직후였음은 물론 선수 본인 또한 유격수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구단의 권유로 2루수로 전향했다. 정규시즌 개막 이후에는 테이블 세터가 아닌 '4번 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3번 타자 이정후를 제외하면 득점권에서 타점을 올려줄 선수가 아무도 없는 빈약한 타선 때문이었다. 




● 그 모든 실수와 고난은 오늘의 성공을 위해

김혜성이 걸어온 길은 키움의 다른 신인급 선수들에게 매우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프로 유니폼을 입은 직후부터 계속된 '억까'에 대해 김혜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기구한 신세를 한탄했을까. 아니면 자신을 혹사시킨 소속팀을 원망했을까. 그의 속마음이 정확히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김혜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신인 시절부터 그랬다. 선배들의 타격 훈련을 보며 타구 질에서 커다란 차이를 느꼈지만 프로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프로의 몸을 만들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1군 16타수 3안타에 그치며 프로의 벽을 실감한 뒤에도 스프링캠프 룸메이트 박병호를 롤모델로 삼으며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욱 매진했다. 그 결과 '힘의 차이를 느꼈다'던 고등학생은 근력 운동에서 홈런왕과 비견될 정도의 근육맨이 됐다. 수많은 포지션을 옮겨가며 풀타임으로 뛰는 혹사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던 배경에는 분명 치킨과 라면 등의 음식을 끊어가며 웨이트에 매진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센터라인을 오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외야 수비까지 소화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볼멘소리를 내는 대신 "내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며 웃었다. 감독이 '상징성보다 실용성'이라는 말을 꺼내가며 지시한 2루 전향 또한 자존심이 상할 법했지만 이를 표출하는 대신 어느 포지션에서든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로 목표를 잡았다. 김혜성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내·외야 모두 소화 가능한 수비 능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KBO리그 최초 유격수·2루수 골든글러브 동시 수상의 진기록 또한 그의 가치를 높였다.


데뷔 이후 6년간 무수한 일을 겪고 단단해진 김혜성은 이제 그 누구와 비견해도 뒤쳐지지 않는 KBO리그 최고의 선수가 됐다. 등장곡의 가사 일부를 빌리자면 이름 그대로 '혜성이 되어 날아'다니다시피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은 다른 저연차 선수들에게도 매우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모두가 이정후처럼 완벽하게 커리어를 시작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프로의 벽 앞에서 좌절하다 사라지는 이들도 많다. '1할 타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꾸준한 우상향 끝에 지금의 위치에 오른 김혜성은 완벽한 롤 모델이다.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됐지만 김혜성의 두 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3년 연속 골든글러브는 이제 '꿈'이 아니라 '당연히 이뤄야 하는 목표'다. 타격은 물론이고 수비면에서 2021년 35개에 달했던 실책을 2022년 11개로 줄였음에도 "리그 최정상의 선수가 되려면 공·수 모두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당장 올 겨울에 포스팅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정후에게 가려졌지만 김혜성도 타격 포인트를 앞당기는 등의 변화를 줬다. 김혜성의 롤모델은 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네 번째로 높은 OPS를 기록 중인 공수 겸장 2루수 김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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