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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n 27. 2023

한 유망주를 키우는 데 온 야구단이 필요하다

[지난주 히어로즈] 06.20 - 06.25 키움 히어로즈 장재영

키움 히어로즈의 '특급 파이어볼러 유망주' 장재영이 자신의 개인 통산 여덟 번째 선발 등판 경기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5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2021년 4월 6일 1군 무대를 밟은 이후 808일 만에 일궈낸 기록이었다. 고교 시절 최고 157km/h를 던졌던이 대형 신인이 선발투수로서 처음으로 제 몫을 하기까지의 과정에는 감독부터 갓 20대 중반이 된 동료 선수들까지 같은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모두의 배려가 있었다.




● 화려한 등장, 어두웠던 첫 2년

입단 직후 스프링 트레이닝 속에서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캐치볼을 진행중인 장재영.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덕수고등학교 시절의 장재영은 이미 1학년 때부터 신인 드래프트 전체 1번이 예상되는 '특급 유망주'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2개월 만에 최고 149km/h의 빠른 공을 던지더니 2학년 때는 가뿐하게 150km/h의 벽을 넘었다. 3학년 때는 타격상과 타점상, 홈런상을 석권하며 타자로서도 찬란한 재능을 뽐냈다. 그를 지명할 것이 유력하던 키움은 이 서울 출신의 오타니 쇼헤이가 혹여나 KBO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를 선택할까 전전긍긍했다. 키움에 입단하며 받게 된 9억 원의 계약금은 한국 프로야구 37년 역사상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언론의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정작 지난 2년간 보여준 모습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최고 150km/h 중반의 빠른 공은 좀처럼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지 않았다. 고교 시절 자신 있는 변화구라고 이야기했던 슬라이더와 커브의 제구력은 엉성했다. 하염 없이 볼 카운트만 늘려나가다 연거푸 볼넷을 내주거나 빠른 공만 노리고 들어온 타자의 방망이에 혼쭐 나는 나날이 계속됐다. 데뷔 시즌에 1군에서 19경기 동안 17.2이닝을 던지며 15개의 안타와 24개의 볼넷, 3개의 사구를 허용하고 18실점 했다. 이듬해 성적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퓨처스리그에서도 74.2이닝 86볼넷 평균자책점 6.42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신인' 장재영의 부진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고교 시절 관리를 받고 부상까지 겹쳤다 하더라도 3년간 58.4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을 정도로 실전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다. 3학년 때만 50.2이닝을 던지며 고교야구를 평정했던 안우진의 강속구도 받아놓고 치는 곳이 프로야구였고, 만 19세의 안우진보다 미숙했던 장재영은 더 손쉬운 먹잇감이 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아직 어려서', '경험이 부족해서'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장재영을 한국 야구계를 끌고 갈 인재라며 추켜세우던 언론은 그가 부진하자 '9억팔'이라는 별명을 붙인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초특급 유망주의 추락을 보도했다.




● 속상하다고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아직 젊고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선수 생활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비시즌 휴식을 포기하고 호주까지 공을 던지러 떠났던 장재영. (사진 출처 : 질롱 코리아 공식 SNS)

장재영도 잘못 끼운 첫 단추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 부족한 실전 경험을 채우기 위해 비시즌 중 질롱 코리아에 합류해 호주 프로야구 리그(이하 ABL)의 마운드에 올랐다.


호주행을 제안한 것 자체는 구단이었지만 이후의 노력은 오롯이 선수 본인의 몫이었다. 가슴팍 아래에 K 이니셜을 새기고 버건디에서 남색 유니폼을 갈아입은 장재영은 이국땅에서 "마음 편히 먹자는 생각을 갖는 대신 평소보다 더욱 간절하게 야구를 했다." 투구폼을 교정하고 체인지업, 포크볼 같은 변화구도 연마했다. 공을 던지다 손 껍질이 벗겨져도 굳은 살이 배길 때까지 피 묻은 공을 던졌다. 감독과 코치가 이미 너무 많이 던졌다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만류해도 꿋꿋이 공을 던져 이닝을 마무리 짓고 포효했다. 연고지 빅토리아 주 질롱 인근에 아름다운 바닷가와 동물원이 있었지만 근처에도 안 갔다. 시내에서 한국인 사장님이 구워준 고기를 먹은 것이 전부였다.


절치부심한 결과가 곧바로 나타났다. ABL 22/23시즌에 선발투수로 여섯 경기에 나선 장재영은 30이닝 동안 9개의 볼넷만을 허용하고 3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3.3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자신의 최고 157km/h 강속구가 싱글A~더블A 타자들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깨닫자 빠르게 영점을 잡으며 자신의 제구 불안이 메커니즘 문제가 아님을 증명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커브까지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수 있게 되니 타자들은 감히 장재영의 공을 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8이닝 무사사구 10탈삼진 2실점으로 대활약했던 6라운드에서는 쟁쟁한 마이너리거 유망주를 제치고 최고투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 2002년생에게 모든 짐을 지울 수는 없다, 그래서 온 선수단이 나섰다

홍원기 감독의 요청으로 키움의 스프링캠프 현장에 찾아와 장재영을 지도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아직 노는 게 더 좋을 나이인 2002년생이 "여기서도 못하면 팬들이 기대하지 않으실 것 같아 더 간절하게 했다"며 비시즌 휴가까지 반납했는데 감독과 코치, 선배들이 마냥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키움 구단은 최근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구로구 고척동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홍원기 감독은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스프링 캠프를 진행하던 도중 '친구 찬스'를 썼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캠프지로 초청한 것이다. 장재영이 메이저리그에서만 124승을 거둔 대투수에의 지도를 받으며 하나라도 더 배웠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틀간 장재영의 불펜 피칭을 지켜본 박찬호는 직접 시범까지 보여가면서 장재영의 투구 메커니즘과 멘탈 문제를 손수 교정했다. 대선배의 조언을 들은 장재영은 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시뮬레이션 게임,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도합 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코리안 특급이 다녀간 뒤에는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KBO리그 최고의 타자 이정후가 멘토를 자처했다. 스프링 캠프 동안 장재영의 룸메이트였던 이정후는 "패스트볼만 놓고 보면 장재영이 안우진보다 낫다"며 매일 밤 장재영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가 지켜본 장재영은 안타 하나만 허용해도 마운드 위에서 자신의 직전 투구에 대해 자책하는 성격이었다. 더욱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며, 변화에는 위험이 동반함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정후는 "지나간 것보다 다가온 것을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장재영의 마인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한국 최고의 파이어볼러 에이스인 '3년 선배' 안우진도 장재영을 밀착 지도하고 있다. 평소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최고"라며 불펜 피칭 때의 모습이 실전에서 발휘되지 않는다며 후배의 부진을 안타까워 =했던 안우진은 장재영이 시즌 초 부진하며 2군으로 내려가자 직접 전화를 걸어 피드백을 해줬다. 신인 시절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롤 모델의 뼈 있는 조언을 들은 장재영은 다시 1군에 올라온 이후 단 한 경기에서도 3개 이상의 볼넷을 허용하지 않았다.


정찬헌과 최원태는 최근 경기 시작 전 장재영의 주위를 맴돌면서 이런저런 노하우를 전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홍원기 감독과 노병오 투수코치는 장재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히 선택해 가며 말한다. 무심코 제구력이나 볼넷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가 장재영의 멘탈이 흔들릴까 걱정하는 마음에 그렇다. 


장재영은 지난 한 달 동안 1군 4경기서 14.1이닝을 던지며 6볼넷 13탈삼진 3실점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유난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장재영이 류현진이나 선동열처럼 프로가 되자마자 잠재력의 115%를 발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테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학생 시절 타구가 너무 멀리 뻗어서 학교 유리창을 여러 번 깨 먹었다던 어느 거포 유망주는 심리적인 문제와 코치의 잘못된 지도 속에서 은퇴까지 생각했다가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날개를 펼쳤다. 고교 시절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눈물 왕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어떤 강속구 투수는 은퇴까지 선언하는 등의 깊은 방황 끝에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타자의 모습으로 1군 땅을 밟았다. 전자는 21세기 KBO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 박병호, 후자는 시즌 전 키움과 4년 무옵션 20억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이형종이다. 


고교 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던 유망주 대부분이 프로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이전에 도움을 받아 가며 걸음마를 뗀다. 모두 '프로'이기 이전에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이다. 장재영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모두의 도움 속에서 겨우 일어섰으니 이제 한 걸음씩 더 나아가며 1군 선발투수로서의 걸음마를 깨우친 뒤 지난 2년칸 넘어졌던 만큼 달려 나가면 된다. 그렇게 사회 초년생을 벗어난 다음 수년 뒤 자신이 도움받았던 만큼 후배에게 도움을 주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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