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히어로즈] 07.04 - 07.09 키움 히어로즈 김웅빈
노시환과 함께 한화 이글스의 중심 타선을 이끌 것으로 기대받는 김인환은 지난해 스물여덟의 나이에 잠재력을 터뜨렸다. 2016년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래로 단 하나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던 '노망주'가 2022년 한 해 동안에만 16개의 홈런 아치를 그렸다. 육성선수로 입단해 6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한 대졸 선수는 언제 옷을 벗어도 이상하지 않은 '정리 대상'이었다. 그런데 30대까지 단 2년을 앞둔 나이에 꽃을 피우면서 150km/h 강속구를 던지는 99년생 투수와 신인왕 자리를 놓고 다투는 슈퍼루키로 급부상한 것이다.
통산 200홈런의 금자탑을 쌓은 '국가대표 1루수' 오재일은 스물아홉 살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한때 넥센 히어로즈(現 키움)의 차세대 4번 타자로 기대받던 오재일은 성장세가 지지부진한 사이 '이적생' 박병호가 먼저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입지가 좁아지고 말았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주전 경쟁에서 완패하고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으나 최준석, 호르헤 칸투, 잭 루츠, 데이빈슨 로메로 등의 타자들에 밀려 백업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30대가 되던 해에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면서도 27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고, 2010년대 KBO리그 최고의 1루수 중 한 명으로서 모두의 기억에 남았다.
요는, 지난 7년간 1군에서 보여준 것이라고는 2할 5푼 5리의 타율과 .724의 OPS(출루율+장타율), 그리고 19개의 홈런이 전부인 후보급 타자라고 할지라도 언제든 당연하다는 듯이 홈런왕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야구선수의 나이가 아직 스물일곱에 불과하며 신인 시절 '포스트 최정'이라 불릴 정도의 잠재력을 자랑했다면 더더욱.
"(선수단) 모두가 지금 다 놀라고 있어요. 놀랄 수밖에 없는 거예요." 2016년 7월 13일, 처음 1군 무대에 나선 2년 차 고졸 신인의 첫 타석을 지켜본 이순철 해설위원의 코멘트다. 이순철 위원의 말처럼 김웅빈은 KBO리그에 데뷔하는 순간부터 모두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이날 9번 2루수로 선발 출장한 김웅빈은 첫 타석부터 상대 팀인 KT 위즈의 선발투수 장시환과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도, 고속 포크볼도 전부 끈질기게 커트했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몸쪽으로 절묘하게 파고드는 6구째 136km/h 고속 슬라이더를 기다렸다는 듯이 감아올리며 우익수 너머로 날려 보냈다. 시즌 후 사퇴를 고민하던 감독부터 시니컬하게 그라운드 위 선수들을 품평하는 해설위원까지, 모두를 흥분시킨 데뷔 첫 타석 홈런. 김웅빈의 1군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SK 와이번스(現 SSG 랜더스)의 지명을 받았던 김웅빈은 데뷔 시즌부터 '포스트 최정'이라고 불린 특급 유망주였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SK의 2015년 드래프트 지명 신인 중 유일하게 경기에 나섰다. 시즌 후반부터 실전에 투입된 탓에 많은 타석 부여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3할 타율을 넘겼으며, 퓨처스 올스타 게임에 선발되는 영광 또한 누렸다.
2차 드래프트에서 넥센의 지명을 받아 이적한 이듬해에는 퓨처스리그 81경기 336타석 동안 5할 이상의 장타율과 .883의 OPS를 기록했다. 13개의 도루를 기록할 정도로 발도 빨랐다. 삼진(45개)이 볼넷(28개)보다 다소 많았지만 중장거리 타자에게 어느 정도의 삼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군에서도 첫 타석부터 홈런포를 신고하는 등 초특급 선수가 될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그의 앞길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인 듯했다.
하지만 모든 미완의 대기가 그렇듯 김웅빈의 야구 인생 역시 의도한 대로 풀리지 않았다.
퓨처스리그에서 훌륭한 성적을 올린 정도로는 1군에서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넥센의 내야는 KBO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200안타를 기록한 서건창과 훗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주전 유격수로 성장한 김하성, 국가대표 내야수 김민성, 그리고 잠재력이 만개한 거포 내야수 윤석민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퍼 루키'에게 10경기 15타석의 기회만을 내준 염경엽 감독은 그해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김웅빈을 포함했다. 그러나 단 한 경기에도 내보내지 않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김웅빈에게도 타석이 돌아오기는 했다. LG 트윈스에 1승 2패로 몰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 한 점 차로 뒤진 9회초 투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나흘 내내 더그아웃에서 묵묵히 방망이만 돌렸을 고졸 2년차 신인 김웅빈은 삼진 아웃으로 물러나며 자신의 손으로 넥센의 2016년을 마무리 짓고 말았다. 이날 김웅빈은 자신이 어째서 쓰라린 좌절을 맛봐야 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염경엽 감독이 경기 종료 직후 미리 작성해 온 사퇴문을 읽은 뒤 고척 스카이돔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차기 감독으로 선임된 장정석은 포스트시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번호"라며 준플레이오프의 기억을 곱씹고 있었을 김웅빈의 등번호 40번을 빼앗았다. 본인이 생각해도 멋쩍었는지 김웅빈에게 특혜를 주겠다고는 했지만 이와 별개로 넥센의 내야는 여전히 굳건했다. 퓨처스리그를 3할 5푼 7리의 타율로 폭격했지만 1군에서는 대타 전문 요원으로서 제한된 기회를 받는 데 그쳤다.
군 복무 이후 사실상의 첫 시즌이었던 2020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팔뚝 부상을, 정규 시즌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정규시즌의 절반을 재활로 허비하고 말았다. 2021년에는 체중 감량을 위해 야식까지 끊는 등 시즌을 앞두고 절치부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년도보다 부진했다. 출루율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 오히려 전반적인 타격 성적이 하락한 탓이었다. 지난해에는 9시즌 동안 주전 1루수 자리를 지켰던 박병호가 KT 위즈로 이적하면서 풀타임 주전 1루수로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 예상됐다. 그런데 시범경기 때 또다시 부상을 입었다. 정규시즌 개막까지 겨우 며칠을 앞두고 당한 전치 8주짜리 부상이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갈수록 더욱 엉망이 되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끝을 모르고 반복되는 부상과 부진에 자포자기한 김웅빈은 재활 기간 동안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운동선수로서는 어쩌면 흡연보다 더한 최악의 자해였다. 시즌 중 급격히 체중이 증가하며 밸런스까지 깨졌으니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대부분의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등의 배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내며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말았다.
시선을 돌려 15년 후 배트를 내려놓고 제2의 인생을 보내다 인터뷰에 응한 김웅빈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어느 정도의 커리어를 보내다 은퇴했든 간에, 그에게 "20대 초·중반의 선수 생활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도 고난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 한마디가 함께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젊었어요. 고작 스물일곱이었잖아요."
시범경기서 단 한 타석의 기회도 받지 못할 정도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던 김웅빈은 지난 25일까지 퓨처스리그에서 3할 3푼의 타율을 기록했다. 규정 타석을 소화했다면 북부리그 3위, 팀 내 1위에 해당됐을 성적이다. 전체 안타 35개 중 8개가 2루타, 6개가 홈런이었다. 안타 2개를 치면 하나는 장타일 정도로 절륜한 파워를 자랑한 셈이었다. 커리어 내내 선구안이 지적받던 타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데뷔 이후 가장 좋은 볼넷/삼진 비율을 기록했다(0.93). 이제는 2군 경기를 더 뛰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정도의 경지에 통달한 것이다.
1군 성적은 아직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낮은 타율은 물론이고 장타도 많지 않다. 하지만 7월 성적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7G .350 .391 .450 5타점). 특히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3할 6푼 8리의 높은 타율과 팀에서 가장 많은 타점(5개), 세 번째로 많은 안타(7개)를 기록했다. 에디슨 러셀과 이원석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형종이 부진하며 클린업 타순에 배치된 상황에서 부담을 이겨내고 올린 호성적이었다.
지금의 뜨거운 타격감이 이번 주에도 그대로 이어질지는 모른다. 어쩌면 지난 한 주는 그저 으레 있는 '아름다운 일주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김웅빈이 오늘 경기에서도 안타를 치고 그다음 경기에서도 안타를 치다가 10월까지 한 시즌을 온전히 완주한다면, 이는 분명 눈물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일 테다. 강한 타구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다 낮은 출루율로 인해 대타 요원에 그쳤던 신인 시절, 선구안에 신경 쓰다 전반적인 타격 성적 하락을 겪었던 2021년, 그리고 "가장 마음 아팠던" 2022년이 그를 단단히 만들어 준 덕일 테다.
쉼 없이 달리는 데 지쳐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왜 당신의 시간 가운데에 공백기가 있냐고 물어보는 시대다. 어떤 이에게는 공백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실은 나 자신을 단단히 다졌던 시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웅빈도 그렇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1군 313경기, 864타석을 낭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모두의 기대처럼 오랜 기간 리그를 폭격하는 '좌타 거포'가 되기 위해 조금 시간을 들여 자신을 단단히 만들었을 뿐이다.
스물일곱. 갑자기 홈런왕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