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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l 25. 2023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 뛰는 게 꿈이었죠"

[지난주 히어로즈] 07.21~07.23 키움 히어로즈 로니 도슨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이들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창작 행위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 프로 스포츠 선수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전업 운동선수로서 오롯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경기를 뛰는 모습에 열광하며 기꺼이 그라운드에 돈을 흩뿌리는 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운동선수로서의 기량뿐만이 아니라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역량 또한 요구된다. 제아무리 운동선수로서 3할 타율과 30홈런-30도루가 동시에 가능한 천재적인 재능을 갖췄어도 퍼포머로서의 점수가 0점이라면 '재미없다'는 혹평과 함께 외면받는다. 반면 화려한 쇼맨십을 갖춘 슈퍼스타는 흥분한 관중들을 텔레비전과 매표소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프로리그 경기 또한 가수들의 콘서트, 배우들의 연극 및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공연예술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모든 운동선수가 수천,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자신의 기량과 끼를 뽐낼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매년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졸업하는 유망주는 쏟아져 나오지만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열 명 남짓으로 한정되어 있으니까. 메이저리그와 같이 전 세계의 모든 야구 천재가 모여 경합을 펼치는 세계 최고의 무대가 목표라면 무대에 서기 위한 난이도는 훨씬 높다. 미래의 4번 타자나 에이스라는 찬사를 받는 선수라도 4~5년의 담금질을 거친 뒤에야 데뷔할 수 있다. 대부분은 그보다 훨씬 오래 마이너리그 생활을 전전해도 메이저리거가 되지 못한다.


열흘 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계약에 서명한 로니 도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빅리거의 꿈을 안고 고향으로부터 1,800킬로미터 거리의 도시로 떠났던 그의 메이저리그 기록은 4경기 9타석이 전부다. 대학 졸업 후 7년간 철저히 무대 뒷편에 있었기 때문일까. 도슨의 KBO리그 데뷔 소감은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하는 꿈을 이뤄 기쁘다"였다.




관중석이 비어있다시피 한 대학 야구장의 그라운드를 질주 중인 오하이오 주립대학 시절의 도슨. (사진 출처 : ohiostatebuckeyes.com)

아마추어 시절의 도슨은 100만 달러가 넘는 계약금을 품에 안을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많은 관중이 응원하는 경기장'과는 인연이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미식축구도 병행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았던 도슨은 그의 고향인 오하이오주의 명문대인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다. 미국 내 최상위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분류될 만큼 학구열이 높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은 각 종목의 고교 유망주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스포츠 명문 대학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특히 미식축구팀의 경우 2022년에 경기당 10만 명이 넘는 평균 관중을 동원할 정도로 NFL에 버금가는 인기를 자랑했다.


하지만 도슨이 소속된 야구팀의 인기는 형편없었다.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ntic Association, 전미 대학 체육 협회) 공식 통계에 의하면 오하이오 주립대학 야구부는 도슨이 뛰었던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단 한 번도 평균 관중 수 50위 이내에 들지 못했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각 시즌별 평균 관중 50위 팀은 경기당 1,206명, 1,405명, 1,357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편 10만 명의 관중을 가볍게 동원하는 미식축구팀의 홈 경기장은 도슨이 뛰었던 Buckeye Field로부터 고작 1.9k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를 목표로 한 대학생 도슨은 봄부터 초여름까지의 NCAA 정규시즌이 끝나면 하계 대학리그에 자원함으로써 경기 감각을 유지했다. 인기 팀의 경우 경기당 6000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했지만 도슨의 소속팀 이야기는 아니었다. 2014년에 뛰었던 Chillicothe Paints는 경기당 1,756명의 관중을, 2015년에 소속되었던 Orleans Firebirds는 경기당 1,083명의 관중을 불러 모았다.




마이너리거 시절의 도슨. 포수 바로 뒷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단 두 명의 관중만이 렌즈에 잡혔다. (사진 출처 : Cincinnati Reds 공식 SNS)

대학 시절의 빼어난 활약에 힘입어 루키리그를 건너뛰고 로우 싱글 A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도슨은 2017년 129경기서 2할 7푼 8리의 타율과 .800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14홈런 18도루를 기록하면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MLB 파이프라인>에 의해 팀내 19위 유망주로 선정되었으며, 빅리그에서 단일 시즌 20홈런-20도루가 가능한 타자로 평가받았다.


더블A로 승격된 2018년에는 상위 레벨에서 한 뼘 더 향상된 성적을 올리며 팀내 유망주 순위를 15위까지 끌어올렸다. 2019년에는 정규시즌 개막 전 처음으로 휴스턴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받았다. 그해 <MLB 파이프라인>은 도슨을 휴스턴 내 유망주 순위 13위에 랭크하며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좋은 배트 스피드와 파워를 가졌으며 꾸준히 뜬공 타구를 만들 수 있다면 매년 20개에서 25개의 홈런을 만들 수 있다'는 평을 남겼다.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뛰고 싶었던 도슨의 꿈은 이렇게 조금씩, 그러나 착실히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빅리그를 향한 길은 영화처럼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2019년 처음으로 트리플A에 승격된 도슨은 10경기서 1할 4푼 7리의 타율과 .407의 OPS에 그쳤다. 2020년을 팬데믹으로 인한 마이너리그 폐쇄로 날려버린 그는 이듬해 트리플A에서 풀타임 시즌을 뛰었으나 2할 5푼도 안 되는 낮은 타율에 허덕였다. 원래도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 타자가 아니었던 만큼 홈런 또한 두 자릿수를 넘기지 못했다. 신시내티로 이적한 2022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2023시즌 전 마이너리그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도슨은 이번 시즌 키움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그가 몸담았던 Lexington Counter Clocks는 이번 시즌 1,645명의 평균 관중을 기록했다.




이제 겨우 두 경기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10개 구단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도슨.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유튜브)

에디슨 러셀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된 그는 계약 발표 당시 10개 구단 팬들에게 심심한 놀라움을 선사했다. 총액 8만 5천 달러의 계약 금액은 제아무리 60~70경기 출장에 그치는 대체 선수임을 고려해도 매우 염가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초라한 트리플A 성적을 이유로 키움이 사실상 순위 경쟁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리고 토요일 사직 롯데전부터 시작해서 이제 겨우 두 경기에 나섰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10개 구단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타석에서 8타수 4안타 1홈런 1도루 3타점 4득점으로 대활약함은 물론 수비에서도 코너 외야와 중견수 자리를 모두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마이클 초이스, 제리 샌즈의 뒤를 잇는 가성비 외국인 타자 신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데뷔 무대를 강렬하게 만든 것은 극적인 순간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는 쇼맨십이었다.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나갈 때마다 에너지 넘치는 세레머니를 선보임으로써 8연패에 젖어 있던 더그아웃과 응원석의 분위기를 북돋았다. 일요일 경기서 KBO리그 데뷔 첫 홈런을 쏘아 올린 직후에는 선수단이 '무관심 세레머니'를 펼치자 아랑곳않고 홀로 더그아웃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홈런을 자축했다. 수비이닝 때도 역동적인 모션과 손가락 사인으로 끊임없이 신스틸러가 되었다.


현재 키움에는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분위기 메이커가 많지 않다. 간판타자 이정후는 지난 주말 시리즈에서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하며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이정후와 함께 타선의 주축인 김혜성은 경기 중 역동적인 쇼맨십을 보이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기대받았던 송성문은 안타깝게도 2018년 이후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키움 구단에 있어 야구선수로서의 역량과 함께 '퍼포머'로서의 가능성 또한 보여준 도슨의 등장은 반갑기만 하다. 성공 가능성을 엿보인 도슨의 '5툴'과 그의 끝을 모르는 긍정 에너지가 시너지를 일으킨다면, 젊고 잠재력 있는 선수단이 많은 키움은 후반기 KBO리그 최고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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