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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roes 52

Heroes#49. 김병현

세계 최고의 핵잠수함 'BK', 대한민국에 상륙하다.

by 채성실
20250201.png (원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김병현은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다. 그는 2012년 박찬호와 함께 KBO리그에 깜짝 데뷔하면서 한국 프로야구의 7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것만으로 '선수 파는 꼴찌 팀'에 불과했던 키움 히어로즈의 이미지를 단번에 뒤집어버리기도 했다.




■ 'Born to K', 세계 최고의 핵잠수함으로 군림하다

461373295.jpg.0.jpg 메이저리그 특급 마무리 시절의 김병현. (사진 출처 : azsnakepit.com)

목동 야구장 마운드에 상륙하기 전까지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보냈다. 고교 시절 투타 양면에서 특급 활약을 펼쳤던 김병현은 3학년 때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3억 4,000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받았다. 대치 은마아파트를 두 채는 구매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김병현은 해태의 오퍼를 거절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


김병현은 대학교 2학년 때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6.2이닝 15탈삼진으로 대활약하며 군 면제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자퇴서를 냈다. 그의 국제대회 활약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병현이 애리조나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22만 달러(한화 약 27억 원).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역대 투수 중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


1999년, 김병현은 루키 리그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단 한 경기를 뛰고 나서 두 단계 높은 레벨의 리그인 더블A로 승격됐다. 3개월 후, 마이너 최상위 레벨 리그인 트리플A에서도 11경기 30이닝 40탈삼진 평균자책점 2.40의 압도적인 성적을 남겼다. 정규시즌 개막 2개월 만에 빅리그로 승격된 김병현은 데뷔전에서 1이닝 1탈삼진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며 빅리그 주전 멤버가 됐다.


데뷔 2년차였던 2000년, 김병현은 애리조나의 마무리 투수가 됐다. 2003년 시즌 중 애리조나를 떠날 때까지 4년간 218경기 295.2이닝 20승 16홀드 69세이브 평균자책점 3.29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소속팀 애리조나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함께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고 우승한 선수가 됐다(※ 1998년 뉴욕 양키스의 WS 우승 멤버였던 이라부 히데키는 시리즈 내내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Born to K'(삼진을 잡기 위해 태어난 사람)는 김병현의 강렬한 플레이 스타일을 상징하는 애칭이었다. 당시 김병현은 언더핸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94마일(151.2km/h)의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질렀다. 횡으로 큰 각을 그리는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업슛 또한 김병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잠수함 투수의 더러운 구위와 정통파 투수의 구속을 겸비했던 그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무수한 삼진을 잡아냈다.




■ 만년 셀링 클럽의 우승 도전 신호탄이 되다

130522M2002_20130523012229.jpg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키움 시절의 김병현.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012년, 김병현의 KBO리그 상륙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한화 이글스 입단, 일본 프로야구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하던 '라이온 킹' 이승엽·'별명왕' 김태균의 한국 리턴과 더불어 야구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해외 무대에서 슈퍼스타로 군림했던 이들을 보려는 관중들로 연일 입장권이 매진됐고, 프로야구 출범 이래 처음으로 연 7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김병현의 한국 무대 상륙이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한 또 다른 이유는 '키움이 김병현을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우리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창단한 키움은 2011년까지만 해도 만년 적자에 시달리는 셀링 클럽이었다. 타 구단과 달리 모기업이 없어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않았고, 여윳돈이 없으니 외부 영입은커녕 내부 자원도 팔아치우는 형편이었다. 있는 살림도 알아서 거덜 내는 판에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기업은 '선수 팔이 팀'으로 유명한 구단에 쉽사리 후원하려 들지 않았고, 결국 재정이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 키움이 2012년 정규시즌을 앞두고 김병현을 16억(연봉 5억, 계약금 10억, 옵션 1억)에 영입했으니, 모두가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 본인조차 입단식에서 "넥센 하면 선수도 많이 팔고, 밀린 가입금도 못 내던 팀으로 알고 있었다. 구단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넥센이라는 팀에 대해 잘못된 편견과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키움의 김병현 영입은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만년 셀링 클럽이 정말 진지하게 우승에 도전하려나 보다'라는 기대감을 심어 놓았다. 이러한 기대감은 오늘날까지도 파격적인 계약으로 평가받는 창단 최초 FA 영입(이택근·4년 50억),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가 확인하러 가겠다"라던 김시진 전 감독의 미디어 데이 발언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2012년, 키움은 서건창-장민석-이택근-박병호-강정호로 이어지는 리그 최상위권의 상위 타선을 앞세워 단독 3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뒷심 부족으로 인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창단 이래 가장 높은 승률(4할 6푼 9리)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삼성, 한화, KIA 타이거즈보다 많은 평균 관중을 동원했을 정도로 인기도 크게 늘었다.


2013년, 김병현은 15경기 중 14경기를 선발투수로 나서며 75.1이닝을 던지며 5승을 올렸다. 키움은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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