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역사상 최후의 토종 좌완 10승 투수가 되다.
이현승은 키움 히어로즈의 마지막 토종 좌완 10승 투수다. 그는 마일영, 장원삼과 함께 좌완 선발 트로이카를 결성하며 초창기 키움의 선발진을 이끌었다. 그러나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소속팀의 사정에 의해 예상치 못하게 버건디 유니폼을 벗어야만 했다.
200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지명된 이현승은 인하대학교를 졸업한 2006년부터 KBO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대학리그 최고의 좌완이었던 그는 데뷔 시즌부터 1군에서 중용됐다.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70G)에 나서, 홀드 3위(19개)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전 마지막 경기를 필승 계투로써 함께하기도 했다.
2008년, 이현승은 선발투수로서 마운드에 오르기 시작했다. 우승 감독 출신인 이광환 신임 감독의 눈에 들어온 덕분이었다. '드래프트 동기' 장원삼의 대활약을 은근히 의식했던 이현승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20이닝 6승, 평균자책점 4.57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해 23승을 합작한 장원삼, 마일영과 함께 '장마리(장원삼-마일영-이현승) 트리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리그 최고의 토종 좌완 선발진으로 군림했다.
2009년, 이현승은 장원삼과 마일영을 제치고 팀의 1선발로 우뚝 섰다. 전반기에만 무려 11승을 거두면서 유력한 다승왕 후보로 꼽혔다(최종 13승, 4위). 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이닝(170IP)을 던졌을 정도로 이닝 소화력도 좋았다. 소속팀 키움은 올스타 투수로 성장한 이현승의 활약에 힘입어, 마일영과 장원삼의 동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까지 4강권 경쟁을 벌였다.
2009년 시즌 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키움은 이현승을 두산 베어스에 내주고 현금 30억 원과 좌완 투수 금민철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장원삼과 마일영 또한 불펜 투수 3명 포함 47억 5,000만 원을 대가로 처분했다. 키움은 2010년부터 2024년까지 15년 동안 단 한 명의 좌완 선발투수도 육성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