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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l 25. 2019

야구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선수의 기준은 '팀성적'인가?

현역 시절의 브랜든 나이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KBO리그의 골든글러브 및 MVP 수상은 거의 매년마다 빠지지 않고 논란이 되어왔다. 동일 분야의 경쟁자가 수상자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수가 상을 타지 못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는 각 포지션별로 한 명씩을 뽑아 상을 수여하는 골든글러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2년의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였다. 당시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후보로 이름을 올린 선수는 브랜든 나이트(넥센), 류현진(한화), 박희수(SK), 장원삼, 미치 탈보트, 오승환(이상 삼성), 스캇 프록터(두산)였다. 당시 나이트는 2007년 다니엘 리오스(234.2이닝)와 류현진(211이닝) 이후 5년 만에 200이닝 이상을 넘기는 등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며, 방어율 또한 2.20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그리고 이 해 골든글러브는 방어율 리그 16위(3.55)의 다승왕 장원삼이 나이트를 일곱 표차로 제치고 수상했다. 당시 장원삼이 나이트보다 앞서는 성적은 승수(17승·나이트 16승)와 탈삼진(127개·나이트 102개) 정도였다. 장원삼이 황금 장갑을 타간 것에는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나이트는 외국인이었다(과거 KBO리그는 유독 외국인 선수에게 상을 짜게 주는 경향이 있었다). 둘째,장원삼은 다승왕이었다. 셋째, 나이트는 6위 팀 선수였으며 장원삼은 2년 연속 통합우승을 거둔 구단의 에이스였다!

  나이트 골든글러브 수상 실패 사건 전후로도 논란이 된 MVP·골든글러브 수상은 많았다. 당장 당해에만 해도 서건창이 도루와 득점 기록을 제외하면 안치홍보다 뛰어난 성적 지표가 없었음에도 방출·신고선수 신화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인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거의 매년마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상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들에게 한 표씩을 던지는 기자·해설위원 등의 야구계 관계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상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을까? 매년 터지는 논란들을 보면 일단 성적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리고 낮은 성적의 후보군에게 한 표를 주는 아웃사이더(?)들에게도 매년 투표를 하는 만큼 자신들만의 정립된 기준이 있을 것 아닌가?




올해 신인왕 경쟁은 사실상 정우영과 원태인의 2파전 구도이다. (사진 출처 : LG 트윈스/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올시즌은 이제 겨우 올스타 브레이크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 골든글러브나 MVP를 예측하기에는 어렵다. 다만 신인왕의 경우 후반기에 누군가가 각성해서 20 홈런을 치거나 10승·20 홀드를 올리지 않는 이상 정우영과 원태인의 2파전이 예상된다.

  201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에서 LG 트윈스에 지명된 정우영은 150km/h에 육박하는 묵직한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이다. 1년 차 고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팀 불펜진의 핵심으로 자리잡음으로써 전반기 동안 52이닝을 소화하면서 3점대 초반의 방어율과 4승 10 홀드를 올렸다. 비단 좋은 성적뿐만 아니라 192cm의 큰 키와 우월한 기럭지로 대변되는 몸매, 훈훈한 외모의 보유자이기도 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태인 또한 지난 신인 드래프트 때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을 받은 고졸 1년 차 신인이며, 데뷔 시즌부터 선발진에 안착해 2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순항 중이다. 총 13번의 선발 등판 중 10경기에서 5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6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사실상 팀의 선발진을 이끌고 있는 소년가장이라고 해도 다름이 아니다.

  두 선수 모두 앞으로가 기대되는 영건 자원이지만, 아직 자신의 잠재력을 완벽히 터뜨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리그 전체 구원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52이닝)을 소화한 정우영은 어린 나이에 혹독한 일정을 소화한 탓인지 최근 들어 실점하는 빈도가 잦아졌으며, 원태인은 구단 차원에서 등판 간격을 조절해주는 등 관리를 받아 소화 이닝이 많지 않다(78.2이닝). 때문에 아직 둘 중 누구에게 신인왕 표심이 기울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올해 유력 후보는 정우영(LG), 원태인(삼성)이다. 두 명 모두 2019년 지명된 순수 고졸 신인이다. 해설위원들은 팀 내 전력상 비중과 기여도를 고려해 정우영(LG)쪽으로 표심이 기울었다. 13명 해설위원 중 12명이 정우영에게 몰표를 줬다. - LG 정우영, 12년 만의 순수 고졸투수 신인왕 ‘두근두근’ [기획-해설위원 13인 설문]


  그렇기 때문에 며칠 전 올라왔던 기사의 내용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스포츠경향에서 13명의 해설위원(허구연, 안치용, 장성호, 이순철, 정민철, 최원호, 이종열, 김재현, 김정준, 안경현, 이용철, 심재학, 봉중근)에게 전반기 기준 신인왕을 물어본 결과 13명 중 12명이 정우영을 지목했다. 이는 당연하지만 압도적인 표차이이다.


이용철 KBS N 해설위원은 “박빙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임에도 1군 이탈없이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정우영은 후반기에도 LG 불펜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재현 SPOTV 해설위원도 “고졸 신인이 첫 해에 중간계투로 타이트한 경기를 책임지면서 세부 지표가 좋은 성적까지 내지 않았나”고 칭찬했다. 심재학 MBC 스포츠+ 해설위원은 “유연한 투구폼으로 만들어내는 직구·변화구 조합에 경쟁력이 있다. 신인답지 않은 대담한 투구도 칭찬할 만하다”고 말했다. - LG 정우영, 12년 만의 순수 고졸투수 신인왕 ‘두근두근’ [기획-해설위원 13인 설문]


  정우영을 전반기 신인왕으로 뽑은 이유를 살펴봐도, 원태인이 해설위원들 간의 투표에서 12표 차이로 밀릴 만한 이유가 시원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용철 위원의 이야기는 "원태인이 별다른 이탈 없이 선발로 활약하고 있으며 후반기에도 삼성 선발진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말로 반박이 된다. "고졸 신인이 첫 해에 경기를 책임지면서 세부 지표도 좋다"는 김재현 위원의 칭찬 역시 원태인에게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신인답지 않게 대담한 투구를 한다"는 심재학 해설위원의 말도 마찬가지다. 정우영에게 신인왕의 자질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 하나 거대한 표차이를 이해시켜주는 설명이 없어 아쉽다는 것이다.

  골든글러브, MVP 수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시즌 중반 신인왕 모의 투표까지 팬들에게 납득이 가는 이유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며칠 전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업으로 먹고사는 이들에게, 과연 '좋은 선수'를 선별하는 객관적인 기준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사실 그냥 자기 마음에 든 인상적인 선수에게 아무런 이유나 만들어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같은 생각이 말이다.




(사진 출처 : 페이스북 '세이버메트릭스 실험실' 그룹)

  이런 상황에서 김정준 위원이 SNS에 게시한 글은 야구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일, 그러니까 스포츠경향에서 해설위원들에게 전반기 성적 기준 신인왕을 물어본 지 하루 뒤였다. 야구 관련 페이스북 그룹인 '세이버메트릭스 실험실'에 김정준 해설위원의 글이 올라왔다. 다름이 아니라 정우영이 원태인에 비해 신인왕 경쟁에서 앞서는 근거를 답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글이었다. 해설위원이 일개 야구팬들 커뮤니티에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것은 악플러들에게 '전문가씩이나 되는 사람이 페이스북에 도와달라는 말이나 한다'라고 공격당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자신의 명예(?)를 거는 용감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세이버메트릭스 실험실' 페이스북 그룹)

  재밌는 것은 해당 게시글에 달린 김정준 위원의 댓글이었다. 댓글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인용해 말하자면, 김정준 위원은 "그를 중심으로 팀 경기력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 연장선에 리그의 판도까지 바뀌었다", "올해 LG의 전반기 결과는 투수력 덕분을 논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투수력 덕분안에는 정우영, 고우석을 또 논하지 않을 수 없기에..."라는 이유로 정우영을 뽑았다. 즉 '정우영의 존재로 인해 팀의 경기력(=성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클릭 시 사진 커짐. (사진 출처 : '세이버메트릭스 실험실' 페이스북 그룹)

  이후에도 김정준 위원은 '팀 성적'을 꾸준히 언급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 댓글을 요약하자면, 김정준 위원의 주장은 비슷한 성적이라면 팀 성적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선발 전향 후 경기만 따졌을 때 규정이닝을 소화하며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함으로써 무너진 선발진을 지탱한 원태인의 활약은 삼성 라이온즈의 팀 성적(7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아니었으며, 정우영의 활약은 LG 트윈스를 페넌트레이스 4위에 올려놓는 데 영향을 끼쳤기에 정우영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팀 성적! 간단명료하면서도 명확한 이유이다. '선수의 활약이 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느냐'는 기준은 2012년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간단히 설명해준다. 사실 성적만 놓고 따질 것이라면, 2012년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나이트와 류현진의 싸움이 될 것이었다. 당시 나이트는 방어율·이닝·승수 등 클래식 스탯에서 압도적이었으며, 류현진은 WAR, FIP(Fielding-Independent Pitching, 수비 무관 투구 기록) 등의 세이버 스탯에서 나이트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 해 류현진은 골든글러브 경쟁에 끼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는 김정준 위원의 논리대로 생각할 시 간단히 설명된다. 류현진의 피칭은 '소속팀 한화 이글스의 성적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에', 골든글러브 후보로 진지하게 논해지는 일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의 골든글러브 투표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2017년 김민식은 음수의 WAR을 기록하고도 양의지와 대등한 표를 얻었으며(양의지 68표·김민식 54표), 2014년에는 6할대의 OPS를 기록한 이지영이 규정이닝을 채운 포수들 중 가장 높은 OPS(.840)를 기록했던 양의지와 비슷한 표를 받기도 했다(양의지 118표·이지영 103표). 이들의 공통점은 당해 우승팀 포수였다는 것이다. 또한 2017년에는 리그 전체 1루수 중 압도적인 성적(홈런·WAR·타율·장타율·출루율·OPS 1위)을 기록했던 윌린 로사리오가 이대호에게 밀려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해 또다시 외국인 선수 차별 논란이 일었는데, 한편 우승팀 KIA 타이거즈의 로저 버나디나는 무난히 외야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하면서 팀 성적에 대한 기여도는 국적도 초월함(?)을 보여줬다.


  결국 비교 선수의 성적이 비슷(?)할 때, 야구인들이 최우선으로 보는 사항은 팀 순위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




(사진 : 뉴스 캡쳐)

  으면 참 좋겠지만, 10개 구단 감독 및 주장 스무 명이 뽑은 전반기 최고의 외국인 타자 기사(링크)를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물론 제이미 로맥과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또한 좋은 타자다. 하지만 리그 전체 외인 타자들 중 WAR·득점·2루타·타점·출루율·장타율·OPS 1위를 기록함으로써 소속 구단인 키움 히어로즈가 창단 이후 전반기 최고 승률(.602)을 올리게끔 만든 제리 샌즈가 단 세 표밖에 못 받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샌즈가 도대체 개인 성적과 팀 성적 둘 중 뭐라도 놓친 것이 있는가?




이정후.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여기까지 쓰고 나니 지난 시즌 이정후가 타격왕 김현수, 40 홈런+우승 프리미엄 한동민, 중견수 최초 40홈런 멜 로하스 주니어, 팀을 11년 만에 가을야구로 보낸 제라드 호잉 등의 경쟁자를 밀어내고 외야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던 게 떠올랐다. 팬심 한 스푼 더해서 이정후가 장차 KBO리그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성장할 것이라고 해도, 당시 이정후가 골글을 탔던 것은 그가 인기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밖에 없었다. 이는 사실상 '우리들은 성적이야 어찌 됐든 그냥 우리 맘에 든 선수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아닌가?




  원래는 김정준 해설위원의 말을 빌려 '야구인들은 신인왕, MVP, 골든글러브 투표 때 팀 성적을 보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샌즈가 전반기 최고 외국인 투표에서 단 3표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방향이 130도 바뀌었다. 결국 길기만 하고 요점 없이 맹맹한 글이 돼버렸다. 아마 주방 싱크대 위에 있는 우유 식빵이 이 글보다는 덜 밋밋할 것이다.

  부디 기자 및 아나운서 및 해설위원님들께서 신인왕, MVP, 골든글러브 같이 자신들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분야에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만으로 투표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해설위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기자님들도 자신들이 생각했을 때 자격이 없다 생각하는 기자를 SNS 및 기사로 공공연히 비판하시던데, 그런 명철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한 두뇌로 당연히 팬들에게 납득이 되게끔 하는 투표를 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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