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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l 26. 2019

우주의 기운이 모였다... 영웅들은 우승을 노린다

[전반기 히어로즈]

  모든 프로야구단의 궁극적인 시즌 목표는 우승이다. 하지만 우승을 향한 각오를 다진다고 해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KBO리그에는 수십 년째 우승을 하지 못한 프로야구단이 여럿 존재하며, 2008년 창단한 신생팀 키움 히어로즈 또한 1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안타까운 팀 중 하나이다.

  다른 팀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수십억의 FA 선수를 영입하면서 우승을 위해 발악해온 다른 구단들과는 달리, 키움은 이택근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외부 FA 하나 영입해본 적이 없으며, 외국인 선수 또한 가성비를 고려한 영입을 주야장천 해왔고, 여기에 팀의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팔아치우면서 스스로 우승과의 거리를 멀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몇 년 전에는 이장석 전 대표의 구단 자금 횡령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팀은 우승이 아닌 경영진의 사리사욕을 위해 만들어진 팀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는 팬들 또한 적잖이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올시즌은 이러한 팬들의 의문을 해소함과 동시에 12년째 이루지 못하고 있는 궁극적인 시즌 목표를 이루는 역사적인 시즌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모임으로써 팀의 약점으로 지적받던 포지션들이 1년 만에 두터운 뎁스를 유지하게 됐으며, 장점들은 더욱 강화되어 우승을 노리는 팀이 되었기 때문이다.




● 넝쿨째 굴러온 이지영 당신... 비시즌부터 모인 우주의 기운


  지난 몇 년간 키움 팬들은 스토브리그 때마다 사무쳐오는 찬바람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리그 최강의 타선으로 창단 첫 한국 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까지 이뤄냈던 2014시즌이 끝난 뒤, 감히 동 포지션에서 비교할 상대가 없던 '국가대표 유격수' 강정호가 포스팅을 통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5시즌이 끝난 뒤에는 마치 목동 히어로즈의 해체를 예고하듯 박병호와 유한준, 앤디 밴 헤켄, 손승락이 한꺼번에 이적했다. 심지어 빈약한 투수진의 기둥 역할을 해주던 한현희와 조상우마저 캠프 도중 부상을 입으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2017년 스토브리그 때는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마저 션 오설리반, 대니 돈과 계약하는 최악의 한 수를 뒀고, 이는 결국 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지영.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문제는 2018년 박병호와 로저스를 영입하는 행보를 보이며 완화되었으며, 특히 지난 비시즌에는 예기치 못한 행운까지 얻어걸리며 2019시즌이 '우주의 기운이 모이고 있는' 시즌임을 보였다. 비슷한 스타일의 이정후와 김규민에게 포지션 경쟁에서 밀리며 자리가 애매해진 고종욱을 SK 와이번스의 김동엽과 트레이드하려던 중, 키움과 마찬가지로 거포 자원이 부족한 삼성 라이온즈가 이지영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KBO리그 출범 이래 최초의 삼각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당시 키움은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던 박동원의 복귀가 불투명한 데다가 2018시즌 주전 포수로 활약했던 김재현이 상무에 입대해, 최악의 경우 주효상이 주전 포수를 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트레이드로 최고의 백업 포수를 영입하고 박동원도 시즌 시작 전 무혐의 처분을 받아 시즌 초반부터 1군에 복귀해, 결과적으로 창단 이래 최고의 포수진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지영 영입 효과는 단순히 '좋은 포수가 생겼다'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선 경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포수가 두 명이나 됨으로써, 과거 장정석 감독이 몇 번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전담포수제가 전반기 내내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선발투수들은 포수들이 자신들과의 게임 준비를 좀 더 밀도 있게 함으로써 한층 더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두 포수도 출장하는 경기가 적어지니 자연스럽게 체력이 안배돼, 전반기 내내 큰 페이스 저하 없이 좋은 타격을 보였다. 전반기 막판에는 박동원과 이지영 두 명 모두 타격감이 올라오면서 한 경기에 동시에 기용되기도 했다. 16일 고척 삼성전에서 각각 6번 포수와 8번 지명타자로 기용돼 3안타 2타점을 합작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리그 최고의 타자와 차세대 좌완 에이스를 모두 얻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외국인 선수 영입 또한 매우 성공적인 비시즌이었다. 키움은 2014년부터 작년까지, 지난 5년간 2015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 외인 선수의 부상 및 부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단 한 명의 외인도 교체하지 않은 2015년 또한 라이언 피어밴드와 브래드 스나이더가 기대치를 100% 충족했다고 보기능 어려웠다. 결국 키움은 외인 선수 보유 제한이 3명으로 늘어난 2014년부터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외인 구성을 이룬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올시즌은 2012년의 브랜든 나이트와 앤디 밴 헤켄 이후 최고의 외국인 선수 영입이 될 전망이다. 제리 샌즈는 리그 전체 타자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1위라는 점에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대활약을 펼침으로써 전반기 박병호를 대신해 팀 타선을 이끌었으며, 에릭 요키시는 6월부터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요키시, 6월 1일부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리그 방어율 1위·이닝 3위·삼진 5위·WHIP 2위·피OPS 1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에이스로 격상해 앤디 밴 헤켄 이후 오랜만에 성공적인 좌완 외국인 투수 영입이 될 예정이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올시즌 키움의 포수 뎁스는 웬만한 FA 선수는 잡지 않는 구단의 운영 기조를 생각했을 때, 내년에 주효상의 포텐이 갑작스레 터지지 않는 한 당분간 꿈도 못 꿀 확률이 높다. 외국인 선수 영입 또한 마찬가지이다. 샌즈는 창단 초기 팀 타선을 이끌었던 클락과 브룸바가 방출된 이후 무려 다섯 명(알드리지, 로티노, 스나이더, 대니돈, 초이스)을 거친 끝에 영입한 '성공적인' 타자 용병이다. 나이트를 떠나보낸 이후 브리검이라는 우완 에이스를 뽑기까지는 3년간 코엘로와 맥그레거, 오설리반이라는 걸출한(?) 선수들을 거쳐왔으며, 요키시 이전에 밴 헤켄의 대체자로 지목됐던 라이언 피어밴드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좌완 용병의 자리가 다시 밴 헤켄에 의해 채워졌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샌즈의 나이가 33세로 그리 젊지 않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지난겨울은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모두 모인 비시즌이었으며 올해야말로 우승 적기임을 알 수 있다.




● 승승장구, 그리고 잠깐의 위기

5월 8일 고척 LG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이승호가 기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훌륭한 비시즌을 보낸 영웅들은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팀이었다. 시즌 초반 테이블세터와 하위타선이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중심타선의 힘으로 버텨냈다. 박병호와 김하성이 출루하면 샌즈와 장영석이 타점을 쓸어 담았다. 어떻게든 8회까지만 경기를 끌고 가면 조상우가 불같은 강속구로 뒷문을 걸어 잠갔다. 이정후와 서건창의 타격감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박병호가 4번으로 타선을 옮긴 뒤에는 야구가 한층 더 쉬워졌다. 타선이 더 많은 점수를 냈고, 투수진이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꾸역꾸역 막아낸 뒤 조상우가 뒷문을 걸어잠궜다. 투타 무엇 하나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별다른 구멍 없이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었고, 확실한 승리 공식이 있었다. 키움은 이 승리 공식으로 4월 초부터 5월 초까지 10연속 위닝 시리즈를 기록했다. 이렇다 할 연승은 없었지만, 오히려 한 번 불타오르고 침묵하는 팀들보다 더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타팀 감독들로부터 '가장 무서운 팀'으로 지목받았다. 그야말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위기 또한 존재했다. 5월 들어 박병호가 끝없는 부진에 빠졌고(박병호 5월 타율 2할 4푼 2리), 활활 타오르며 주전 3루수로 자리 잡나 싶던 장영석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장영석 5월 OPS .570). 철벽 마무리 조상우는 5월 7일 LG전에서의 블론을 시작으로 5월에만 8점을 내리 실점하며 '믿을 수 없는 투수'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즌 초반 팀의 골칫덩어리였던 하위타선과 필승조는 여전히 살아날 낌새를 보이지 않으며 팀의 하락세를 저지하기는커녕 선두 경쟁 탈락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결국 kt 위즈와의 주말 3연전에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삐끗'한 것을 시작으로, 키움은 밥 먹듯이 스윕과 루징을 당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4월까지만 해도 두 경기 차였던 1위 팀과의 승차는 5월의 마지막 게임이 끝난 시점에서 7.5게임 차로 벌어졌다. 아직 떨어질 곳은 많았기에, 남은 시즌 동안 영웅들이 나아갈 길이 어둡게만 느껴졌다.




● 위기를 극복하기에 영웅(英雄)이다.

전반기 오주원은 그야말로 히어로즈의 불펜진을 지탱한 영웅이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이 악당에게 몰릴 대로 몰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저력을 발휘해 형세를 뒤집듯이, 히어로즈도 선수들이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리그의 판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버리고 말았다.


  5월까지만 해도 '피어밴드 시즌 2'인 것만 같았던 요키시가 볼 배합을 공격적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부터 1선발로 각성하며 선발진의 기둥 역할을 해냈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브리검도 6월 들어 자신의 폼을 되찾으며 요키시와 함께 이상적인 원투펀치를 이뤘다. 4·5선발로 낙점된 이승호와 안우진이 점점 하락세를 보이다가 봉와직염과 어깨 염증으로 이탈했고 대체 선발 김동준마저 부상을 입으며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으나, 한 자리는 신재영이 대체 선발로 등판한 다섯 경기동안 2.41의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훌륭하게 메웠으며, 다른 한 자리는 불펜데이와 대체 선발 김선기 카드가 모두 통하며 위기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시즌 초 좋은 모습을 보이던 김성민과 윤영삼이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굳이 필승조 투입의 강수를 두지 않아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추격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강팀이 되었다. 시즌 초반 동반 부진으로 조상우의 부담을 가중시켰던 김상수와 이보근, 한현희가 6월 들어 다함께 살아나면서 '누가 필승조인지 분간이 불가능한' 강력한 불펜진이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오주원의 각성이었다. 부상으로 한 달간 자리를 조상우를 대신해 마무리로 등판하기 시작한 6월 11일부터 15경기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결국 조상우는 전반기 막판 1군에 복귀해 2경기 동안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음에도 마무리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전반기 팀 방어율 4위(3.79), 선발진 방어율 4위(3.97)·이닝 1위(548.2이닝), 불펜진 방어율 3위(3.49)·이닝 5위(322이닝). 선발진이 긴 이닝을 소화하면서 앞에서 이끌어줬고, 이 덕분에 혹사를 당하지 않은 불펜진이 든든하게 뒷문을 지켰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전반기 막판, 팀의 기대에 부응한 김혜성.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기복 없이 방패 역할을 착실히 해준 투수진 덕에 키움은 형세 역전을 호시탐탐 노릴 수 있었고, 타선이 불타오르면서 이에 보답했다. 박병호의 기약 없는 부진으로 4번 타순의 부담감을 짊어져야 했던 샌즈는, 날이 갈수록 오히려 방망이가 더욱 불타오르면서 6월부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10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김하성과 박동원이 같은 기간 동안 일곱 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샌즈의 앞뒤를 받쳐줬던 것은 덤이다. 해설위원에게 자신을 '날이 뜨거워질수록 타격감도 뜨거워지는 불꽃 남자'라고 소개해달라고 했던 이정후도 자신의 별명에 걸맞은 타격감을 뽐내면서, 키움은 박병호 없이도 좀처럼 식지 않는 상위 타선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지난 시즌 주전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팀의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었던 김혜성과 송성문의 부활이었다. 시즌 초반 공수 양면에서 골칫덩이로 전락했던 둘이었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즈음에는 상위타선에 둬도 모자람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김혜성 7월 타율 .405, 송성문 7월 OPS .980).

  6월부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39경기를 치르는 동안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점수를 뽑아냈다(206득점). 전반기 팀 타율 1위(.283)·출루율 1위(.354)·OPS 1위(.773). '큠벤저스'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투타 모두 불안 요소가 산재했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6월부터 전반기 종료까지 약 두 달의 기간 동안 28승 11로 승패마진 +17을 기록했다. 순위 경쟁을 하던 다른 팀들(두산·LG·NC)이 주춤하면서 순위도 세 단계 상승해 2014년 이후 5년 만에 전반기를 2위로 마감했으며, 창단 후 처음으로 전반기 승률 6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영웅의 진면모이다.




● 목표는 단 하나, 창단 첫 우승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최고의 스토브리그를 보냈고, 최고의 전반기를 보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영웅군단의 힘이 아직도 남아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4할대의 월간 승률을 기록하며 부진하던 시기에도 "한번쯤은 기회가 온다"며 조급해하지 않았던 장정석 감독이다.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에서의 좌절을 맛보았기에 더욱 철저히 관리 야구를 했고, '승부처에서도 너무 관리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남아도는 힘으로 전반기 2위를 함으로써 자신이 옳음을 증명해냈다. 남은 것은 이제 후반기에 '한번쯤 오는 기회'를 잡아내고, 가을야구 때 관리야구의 결실을 맺는 것 뿐이다.

  선수들 또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후반기에도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커리어하이 시즌을 갱신할 것이 유력해보이는 김하성은, MBC 스포츠 플러스와의 24일 인터뷰에서 "해마다 우승을 목표로 시즌을 준비했지만, 올해는 동료들 모두가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한 바 있다. 선수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올해야말로 '우승 적기'라는 것을 말이다.

  5월 들어 부진했던 박병호가 손목 주사를 맞은 후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조만간 서건창 또한 부상에서 회복해 1군에 복귀할 전망이다. 안 그래도 김동준과 조상우, 이영준의 복귀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안우진과 이승호가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1군에 등록돼, 장정석 감독이 투수진 운용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핑곗거리는 없다. 우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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