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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Dec 13. 2023

행정사 프리랜서 첫걸음

문과생 생존기

오늘 새벽에 꿈에서 사람들이 지하에서 선착순 놀이를 하고 있었다. 놀이에서 제일 늦은 사람은 벌칙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지하는 벽으로 구분된 공간이 끝없는 미로처럼 이어졌고 문을 열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놀이는 공간을 바꾸며 계속 되었고 참가자들은 점점 줄었다. 나는 놀이에서 살아남았고 처음 줄서서 기다렸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창백한 형광등이 깜빡거리는 그곳에서 첫째가 다른 아이들과 줄서서 끔찍한 놀이를 기다렸다. 첫째는 놀이에서 탈락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것인지 훌쩍 자랐다. 첫째를 꼭 껴안고 괜찮은지 물었다. 첫째는 평소에 장난칠 때처럼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아빠 사랑해요. 괜찮아요."

"그래. 여기에서 나가자. 걱정하지 말거라."


첫째를 품에 안고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을 통솔하는 관리자가 있었다. 관리자는 나와 함께 선착순 놀이에서 살아남았던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알겠다고 빨리 나가라고 대답했다. 첫째를 번쩍 들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우리 차를 찾았다. 첫째의 카시트가 있는 오른쪽 뒷문을 열고 첫째를 앉혔다. 꿈에서 안도하는 순간에 꿈에서 깨어났다.


최근에 불면증으로 고생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이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일년 정도 행정사사무소에서 선배 밑에서 일하다가 최근에 독립했다. 원래는 그만둘 마음이 없었고 계속 함께 일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선배가 불법을 반복해서 계속 저질렀고 결국에는 조사까지 받는 상황이 되었다. 조사실에서 그는 모든 잘못을 체류자격 변경을 의뢰했던 외국인에게 돌렸다. 심지어 관할청에서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명자료를 위조하고 계속 불법을 저질렀다. 


그동안 몰라서 선배의 지시대로 일했지만 조사를 받은 후에는 더이상 그와 함께 일할 수 없었다. 언젠가 나에게 잘못을 전가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 행정사가 되었다.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선배의 잘못을 고백할 수 없었고 강제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사람은 빌려준 돈과 밀린 급여도 주지 않다가 신고한다고 말하니까 그제서야 돈을 보냈다.


어느 새벽에 선배는 만취해서 뒤로 넘어져 머리가 깨졌다고 응급실에서 전화했다. 그는 이혼해서 보호자가 없었고 간호사들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아냐고 병원장을 부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렇게까지 일했는데 솔직히 생계를 위해서 공범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만류했고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다. 선배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떳떳하게 일하고 싶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일해서 생활비라도 벌 수 있으려나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정직하고 친절한 행정사로서 의뢰인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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