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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ity Aug 28. 2019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지난 교양 시간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배우면서 '목적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교수님께서는 목적이 없다면 어떨까에 대해 물어보셨다. 학생들은 목적이 없어지면 의욕 없이 살 거 같고, 방황할 거 같다고 답했다. 억지로 목적을 만들어낼 거 같다는 답변도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목적 없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좋지 않나?'


교수님께서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칸트는 가능성을 통해 목적 없이도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고 했어. 신기하지 않니?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느라 매일이 전쟁인데 말이야(웃음).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일까? 목적 없이 어떻게 목적에 부합한다는 걸까?"


"형식의 원인들을 의지 안에 두지 않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그것들을 하나의 의지에서 이끌어냄으로서만 그 가능성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 그러하다", "하나의 목적을 놓지 않고서도, 적어도 관찰할 수 있으며, 대상들에서 비록 반성에 의해서일 분이지만 인지할 수가 있다" (판단력 비판, 10절)



목적 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목적이 없는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목적이 없다면, 인생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면,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 날의 수업을 듣고 나서는 다시금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목적을 위한 삶이 나 스스로를 목적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태엽시계로 만든 건 아닐까.


뉴필로소퍼 3호에서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가디언> 기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올리버 버크먼의 말이다.


인생은 늘 지금뿐이다. 그런데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한 노력은 '행복한 인생'에 대한 집착만큼 현재라는 순간의 밖으로 우리를 내모는 듯 보인다. 현재라는 순간은 실제 내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난 행복해지고 싶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내일은 더 나은 삶을 살 거야'라는 다짐을 늘 했다. 어쩌면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현재의 행복을 무시하고 앞으로의 행복에 집착하다 보니 나를 잃었다. 행복해질 거라는 내 욕망은 나 자신을 '매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의 의미를 찾아 목숨 걸고 있다.


그렇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종종 이런 글을 읽고 또 이런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금세 또 행복을 찾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행복이란 건 없는데 말이다. 행복이란 건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감정 그 자체니까. 비현실적인 감정이란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저 나는 행복하고 싶다. 본능적으로 행복해지고 싶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런 내 행복론에 반하는 대가가 있다. 바로 김연아 선수다. 김연아 선수의 영상을 보면 항상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이런 대단한 선수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피겨 스케이팅은 그 자체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아사다 마오나 안도 미키 선수를 보면서는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김연아 선수에게는 '아름답다'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그 아름다움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즐기는 김연아 선수의 여유와 예술적인 면모에서 나타났다. 우승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보다, 목적을 떠나 그 상황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김연아 선수에게서 목적 없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풀고 있는 김연아 선수에게, 취재진이 "스트레칭이나 훈련할 때 무슨 생각하면서 하세요?"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김연아 선수는 의외의 말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죠...


화질이 안 좋지만, 볼 때마다 눈물 나는 연습 영상


뭔가를 할 때 계속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을 많이 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역시 대가는 다른 걸까?  나는 어떤 일이든 부담스러운데 말이다. 뛰기도 전에 넘어지는 생각부터 한다. 그러다 보니 몸은 그 일을 하면서도, 속은 하기 싫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니 그 일이 점점 더 벅찼고, 실패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안 하는 게 가장 낫지 않나...' 하며 하던 일을 그만두곤 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그냥 했다. 점프에 성공해서 연습을 끝내지도 않았고, 점프에 실패해서 연습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잘 안되면 화도 내고, 울기도 했지만 끝까지 연습 시간을 채웠다. 오로지 피겨에 몰두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고 발을 빼는 나와는 달랐다. 내 신경은 온통 목적, 목표의 달성에 있었으니까.


교양 수업 중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은 이런 나의 암울한 루틴에 큰 힘이 됐다. 목적 없이도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는 칸트의 말, 그리고 김연아 선수의 영상. 이를 보고 들은 이후의 나는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했다. 목적 없이도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 보면, 목적을 떠나서 그 일을 즐기게 된다. 목적에 얽매여서 정작 나를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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